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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진 Feb 11. 2024

0130-0211 편지 주기(週記)

지난주의 나에게.


설날 연휴만을 생각하며 버틴 한 주였습니다. 2월 말에 중요한 일이 몰려 있기 때문입니다.  주어진 기한은 짧고 준비할 시간은 없습니다. 꾸역꾸역 밤을 잘라내 시간을 만들었더니 허리가 비명을 질렀습니다. 무리한 만큼 아픔으로 돌려주는 육체의 신비. 일주일간 밤을 새우고 아홉 시간 내내 앉아서 영화를 봐도 끄떡없던 때가 있었는데,라고 했더니 도수치료 선생님이 "그때 그렇게 생활을 해서 지금 이렇게 된 거죠."라고 했습니다. 너무나 맞는 말이라 반박할 수가 없더라고요.


사람의 다정함은 시간과 체력에서 온다는 걸 아시나요. 누군가 나에게 다정하게 대해준다는 건, 그 사람이 자신의 시간과 체력을 깎아 내어주고 있음을 뜻합니다. 그러한 이유로, 누군가에게 상냥함을 요구하는 것은 때때로 폭력이 됩니다. 상대가 어떠한 상황인지도 모르고 "너의 시간과 체력을 나에게 할애해!"라고 말하는 거니깐요. 사람들이 오해하는 건, 주변에 상냥하게 대하는 사람은 당연히 본성이 그렇다 여기는 것입니다. 물론 그런 사람도 있겠지요. 그러나 본성은 그다지 상냥하지 않지만, 상냥하지 않은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성장한 탓에 나는 저런 어른은 되지 말자는 각오로 상냥함을 매일 충전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충전입니다. 본래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니라 꾸역꾸역 채워 넣어야 합니다.


나는 충전하는 인간입니다. 본래 그다지 상냥하지 않습니다. 이 사실을 일찍 인정했기에, 본성을 내보여도 되는 상대  이외에는 상냥함을 충전하고 대하기로 마음먹었습니다. 단지 내가 몰랐던 건, 상대의 상냥함을 너무나 당연하게 여기고 그것을 강요하는 사람이 이 세상에는 이외로 많다는 사실이었습니다. 그 사실을 깨닫는데 십여 년이 걸렸고, 그 사이 나는 에너지 뱀파이어들의 좋은 먹잇감이 되었습니다. 언젠가 시간이 나면 에너지 뱀파이어를 소재로 꼭 소설을 쓸 겁니다.


하지만 누군가에게는 내가 에너지 뱀파이어일 수도 있겠죠. 빙글빙글 도는 카르마.


명절은 업보를 쌓기 좋은 기간입니다. 누군가에게 말을 건넬 때 생각해 보면 좋겠습니다. 지금 하는 말에 상대의 자존감을 깎아서 내 자존감을 채우려는 비겁한 의도가 숨어있지는 않은지. 상대의 상냥함을 억지로 끌어내서 내 만족감을 채우려 하는 건 아닌지. 예를 들면 "넌 어느 대학 갔니? 우리 애는 J대에 붙었는데." 같은 말입니다. 내 자식이 J대에 간 걸 자랑하고 싶으면 순수하게 자랑을 합시다. 굳이 어느 대학에 붙었는지 말하지 않고 있는 친척 아이를 이용해서, 돌려서 자랑하지 말고. 그런 어른의 모습은 참 이외로 많이 추하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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