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학교 1학년 때 일이다. 미술 실습시간에 각자 그림을 그리고 나서 선생님이 등급을 매겨 점수를 주었다. 선생님이 지나가며 불러주는 등급에 따라 같은 등급을 받은 아이들과 한 벽면에 섰다. 누구는 A, 누구는 B, 누구는 C. 하나둘 자신의 등급에 맞는 벽에 자신의 그림을 들고 나가 섰다. 저쪽부터 다가오던 선생님은 내 앞에 서서 그림을 보더니 "너 A" 짧은 멘트를 남겼다. 예상하지 못한 좋은 점수를 받은 나는 약간은 어리둥절한 체 그림을 들고 교실 뒤로 향했다. A를 받은 다른 친구들의 그림을 보고 나서는 더욱 궁금해졌다. 선생님은 왜 내 그림을 보고 A라고 생각한걸까? 내 그림은 A를 받은 다른 친구들의 그림에 비하면 한참이나 부족해 보였기 때문이다. 그래도 나에게 A를 준 선생님은 뭔가 이유가 있겠지 라는 생각에 손을 들었다.
"선생님"
선생님은 뭔가 당황한듯했다. 점수를 매기는 중에 자신을 부르는 학생은 없었기 때문이었을까?
"제가 왜 A에요?"
나의 짧은 질문에 예상하지 못했던 선생님의 대답이 이어졌다.
-----
이 상황이 학교가 아니라 회사였다면 어떨까? 대부분의 기업에서는 인사평가를 진행하고 있다. 인사평가 시즌에는 평가자와 피평가자간의 소통이 이루어진다. 10년쯤 전에는 '면담'이라고 불렀던 것 같은데 이제는 '1on1'이라는 세련된 이름으로 바뀌었다.
모두가 좋은 평가를 받고 싶어한다. 하지만 아쉽게도 그럴순 없다. 절대평가든 상대평가든 자신의 업무결과에 따른 평가를 받는데 대체로 피평가자들은 자신이 생각했던 평가보다 낮은 평가를 받곤 한다. 자신이 생각한 자신의 평가보다 낮은 평가를 받을 확률은 의외로 높다. 그리고 그럴 땐 어떻게 해야 할까?
아래의 아티클에서는 평가에 대한 명확한 기준과 소통방식을 잘 보여준다.
https://www.wanted.co.kr/events/21_08_s01_b05
아티클에서는 피평가자가 자신에게 후한 점수를 주는 이유는 '명확한 근거'가 없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래서 피평가자는 자신을 평가함에 있어 아래 4가지 기준을 살펴봐야 한다고 말한다.
① 해당 조직의 전체 목표와 달성해야 할 성과를 명확히 알고 있는지
② 본인의 업무 결과가 조직 목표와 얼마나 연계되어 있고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를 인지하고 있는지
③ 다른 팀원들은 어떤 수준으로 업무성과를 만들어내고 있는지
④ 업무 QCD(Quality, Cost, Delivery) 를 골고루 고려하여 업무를 수행하고 있는지
그리고 평가자는 아래의 4가지를 고려해야 한다고 한다.
① 구성원의 역량 수준에 따른 목표가 설정되었는가?
② 구성원과 목표 설정 및 평가기준을 명확하게 협의했는가?
③ 수시/정기로 성과 관리와 중간 피드백을 제대로 했는가?
④ 평가면담 시 구성원과 공감대를 충분히 형성하며 진행을 했는가?
개인적으로는 '구성원의 역량 수준에 따른 목표 설정'이라는 부분이 평가자와 피평가자 사이에서 가장 첨예하게 대립할 수 있는 부분일거라 생각한다. 팀 구성원간 역량 차이가 명확할 때, 다른 구성원보다 월등히 나은 성과를 보인 구성원이 더 잘하지 못해서 좋은 성과를 받지 못한다면 해당 구성원은 이 상황을 어떻게 받아들일 수 있을까?
실제로 이런 상황에 처하게 된다면 능력이 뛰어난 구성원에게 평가 이외의 또 다른 관점의 동기부여 요소가 주어져야 할 것이다. 외부 교육이나 더 많은 성장의 기회를 제공해주거나 함께 성장할 수 있는 동료를 선발해주거나.
이 부분 외에는 대체로 누구나 납득할만한 기준들이라 생각한다. 내가 한 일이 조직의 목표에 어떻게 연결되어 있고, 실제로 내 업무의 성과가 조직에 어떻게 기여했는지가 명확해야 한다. 또한 내가 한 일이 나 혼자 잘 끝낸 것이 아니라 타인에게 잘 전달되고 있는지도 중요하다.
평가자 입장에서는 구성원(피평가자)와의 수시 커뮤니케이션을 통해 공감대를 형성하는 것도 매우 중요하다. 1년 내내 아무 말이 없다가 평가 시즌이 되어서야 긍정 또는 부정의 결과를 내어놓는다면 구성원에게는 성장이나 개선의 기회를 주지 않는 것이기 때문이고, 이런 소통의 끝에 받게 되는 평가는 대체로 납득하기 어려운 경우가 많다.
이 시점에 내 중학교 미술 선생님이 나에게 했던 대답을 공개한다.
"너 이쉐끼! D!"
정말 기대하지 못한 답이었다. 내 평가에 대한 근거와 이유를 알고 싶었는데 질문을 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A에서 D를 주다니. 그때의 일은 너무 충격적이어서 30년이 지난 지금도 잊혀지지 않는다. 우리나라가 질문을하고 질문을 받는다는 것에 얼만큼 경직되어 있는 사회인지를 잘 보여주는 사례라는 생각도 든다.
그러니 평가자들이여, 구성원의 질문에 노여워 하지 말자. 질문은 질문일 뿐이다. 질문을 했다면 질문의 내용에 귀기울이고 이성적인 대답을 해주자. 근거를 물었다고 화를 내는건 30년 전 오래된 교육방식에 익숙한 사람들이나 하는, 지금은 누구에게도 받아들여지지 않는 행동이다.
-----
+)
아티클에 나온 내용 중 또 하나 흥미로운 것은 '더닝 크루거 효과'라는 것이다. '사람들은 보통 자신의 능력을 제대로 평가하지 못하는데 실제역량(경험, 지식 등)이 나쁠수록 자신의 수준을 과대평가하는 경향이 있다' 고 한다.
나도 가장 경계하는 부분은 '스스로에 대한 평가'인데, 누군가 나에게 성과를 물어볼 때면 객관적인 근거를 들거나 답변을 피하려고 한다. 평가란 내가 할수록 과대평가 될 수 있고, 실제로 내 업무에 대한 만족도는 상대가 하는 것이 맞다는 생각 때문이다. 그러니 혹시라도 스스로 무언가를 '잘한다'고 생각한다면 진짜로 잘하는지 여러 방면에서 객관적으로 살펴보는 노력을 하는 것도 필요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