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곳은 여러 포유류가 야만성(savage)을 극복하고 진보한 문명을 이룩한 사회, 화려함이 압도하는 도시이다.
경찰이라는 부푼 꿈을 꾸는 주인공 주디는 가녀린 여자 토끼이다. 그는 다른 포유류들에 비해 신체적 한계가 뚜렷한 종 특성을 극복하고 엄청난 노력을 해 결국 주토피아 경찰(ZPD)로 발령을 받게 된다. 주토피아는 누구나 원하는 것을 이룰 수 있는 곳일 것이란 믿음을 갖고 명랑하게 출발한다. 하지만 돌아오는 것은 가족의 걱정, 동료들의 무시와 주차단속이 전부인 업무.
악조건에도 좌절하지 않고 자신의 장점을 살려 주차단속을 하던 주디는 파트너가 될 여우 닉을 만나게 된다. 주디는 처음엔 여우라는 이유만으로 닉을 의심하였지만 이내 여우가 받는 사회적 차별에 동정을 하게 된다. 토끼가 아닌 존재가 토끼에게 귀엽다고 하는 것을 거부하는 주디와는 달리 닉은 그러한 차별대우에 화도 내지 않고 순응해 살아가는 현실적이며 슬픈 캐릭터. 여우는 교활할 것이라는 편견 때문에 교활하게 살게 되는 닉은 다분히 풍자적인 설정이다. 사실은 닉도, 우리도 수없이 많은 불합리속에서 자신과 타인을 정신의 감옥에 가두고 있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닉은 주디를 더욱 공감할 수 있는 파트너가 되어간다.
지루한 업무 도중, 주디는 도둑을 만나 추격전을 펼치며 갈증을 해소한다. 도둑은 쥐들이 사는 미시세계로 도망쳐버린다. 이때 주디가 거인국에서 소인국으로 넘어간 듯한 화면 전환은 환상적이다. 주디는 쥐의 세상에서 추격전을 벌이며 쥐들을 밟지 않게 조심하기도 하고 넘어가는 집들을 떠받치며 위기에 빠진 쥐를 살려주기도 한다. 토끼가 작거나 약하다는 것은 어떤 상대적인 기준에 따른 것이고 세상이 달라진다면 그것은 반대가 될 수 있다. 쥐의 세상에서 토끼는 슈퍼맨과도 같은 강하고 거대한 존재이다.
주토피아 경찰서장은 매사에 최선을 다하는 주디를 탐탁지 않게 여기며 불가능한 미션을 준다. 어떠한 기술도 인력도 지원받지 못하며 48시간 안에 완수하지 못한다면 사직하는 조건으로. 주디는 모두가 불가능하게 여길만한 상황에서도 노래 가사처럼 다시 그저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할 뿐이다. 아무런 실마리도 없으며 일말의 계획이 있는 것도 아니다. ‘더 나은 사회를 만드는 진짜 경찰’이 되고 싶다는 일념만으로 단서들을 하나씩 찾아내기 시작한다. Steve Jobs 의 표현처럼 찍어나간 점들이 필요한 시점에 기적처럼 연결이 된다. 마지막 남은 시간, 수많은 늑대들의 보안이 삼엄한 곳에 잠입하게 된다. 건장한 늑대 무리 속의 여우와 토끼는 나약해 보이도록 그려진다.
Malcolm Gladwell은 저서 다윗과 골리앗에서 비슷한 상황을 묘사하고 있다. 골리앗은 져 본 적이 없는 무패의 거인, 그에 맞서는 다윗은 징집되지도 못할 나이의 작은 어린이. 첨단의 중무기로 무장한 골리앗 앞의 다윗은 주머니에 겨우 돌 다섯 뿐. 하지만 거인병에 걸린 골리앗은 사실 머리가 약점이었고, 다윗은 가벼운 몸으로 민첩하게 뛰어 거리를 유지하며 그의 머리에 돌팔매질을 해 쓰러뜨렸다. 힘에 의존하는 전통적인 전투 방식을 벗어나자 골리앗의 모든 장점들은 치명적인 약점이 되어버렸다.
늑대 무리 속에서 주디는 한순간에 판을 바꾸어 버린다. 주디가 늑대의 울음소리를 흉내 내자 늑대들이 갑자기 포효하기 시작한 것이다. 주디의 전환으로 육중한 늑대들이 순식간에 바보가 되어버렸다. 중요한 것은 전통적인 방식의 거부와 순간의 천재적인 기지인 것이다. 이러한 기지는 영화 속 결정적인 순간들에서 문제를 해결하는 능력이 되는데 닉은 이것을 hustle이라고 부른다. 닉의 여우 캐릭터는 이 hustle을 잘 살려 절체절명의 상황에서도 태연히 연기를 하며 유쾌하게 문제를 해결해버린다.
기지 외에도 토끼와 여우의 신체적인 조건은 잠입과 탈출에 용이해 중요한 성공 요인이 되기도 한다. 히어로물이나 007, 미션 임파서블 등 액션 영화의 액션 씬들이 애니메이션으로 구현된 것도 큰 볼거리이다. 숨 막히는 다리에서의 추락씬, 기차 위의 전투씬 등에서 토끼의 빠르고 민첩한 신체는 액션 효과를 더욱 극적으로 느껴지게 해준다. 속도감 충만한 씬들에서 강함은 절대 근육의 무게로 결정되지 않는다.
다양한 캐릭터들의 특성과 조합이 매우 짜임새 있다. 관객은 타인의 고정관념에 힘들어하며 극복하려는 주디의 모습이나 그저 체념하고 살아가는 닉에 동정하는 한편, Mr. Big의 너무나 조그마한 모습이나 Flash의 과장된 느림의 모순적인 장면에 폭소하는 스스로의 입체적인 모습을 발견하게 된다. 마치 주토피아의 수많은 입체적인 캐릭터 중 하나가 된 것처럼. 주인공 또한 커다란 실수를 하는 장면에서도, 그리고 현실에서도 선악은 쉽게 구분되지 않고 고정관념은 깨기 어려운 것이다.
영화는 정답이 없는, 아니 답이 없는 혼란스러운 사회에 섣불리 대안을 제시하지 않는다. 주토피아는 유토피아도 디스토피아도 아니다. 그저 현실이다. 현실은 유토피아보다 비교할 수 없을 만큼 가깝기 때문에 더욱 무겁게 다가온다. 주토피아에서 새로운 세계가 시작된 것 같지만 구태는 완고하며 달라진 것은 껍데기뿐이다. 선악은 불분명하며 모두는 실수를 통해서 배우는 불완전한 존재이다. 어떠한 결과도 미리 알 수 없으며 계획할 수도 없다. 대중을 통제하기 위해 공포를 이용하는 조직적인 상대에 맞서, 그저 '끝날 때까지 포기하지 않을 거야. 끝나면 다시 시작하지'라는 메시지는 디즈니사의 애니메이션으로서 매우 신선하며 파격적이다.
작은 스타트업에서 일하는 미미한 존재로서 눈 앞의 거대한 골리앗에게 유쾌한 기지를 발휘할 수 있기를. 최선을 다해 점들을 찍어나가고 있다, 잘 연결하길 바라면서. Welcome to Zootopi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