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가 시작되고 얼마 안돼서 있었던 일이다. 그즈음 첫째가 흥이 나면 춤을 추고 쿵쿵 걷는 통에 늘 노심초사하며 "아랫집에서 쿵쿵 소리 너무 시끄럽다고 하겠다. 살금살금 춤추자"라고 어르고 달랬다. 당연히 매트도 깔고 밤늦게 춤추는 일도 없었지만, 그래도 윗집 입장에선 늘 신경이 쓰이는 일이었다.
거실과 주방, 안방에 깔린 매트.
심지어 연초라, 둘째가 태어난 지 얼마 안돼서 밤낮이 없고 울어 재끼는 일이 많아서 더욱 눈치가 보였다. 그렇게 설날이 됐고, 나는 아랫집에 인사와 함께 죄송하다는 말을 전해야겠다고 마음을 먹었다. 설 앞둔 주말이라 떡국떡을 사고 과일도 샀다. 첫째에게 "딸~ 아래층에 가서 엄마가 인사하면 너도 따라서 해야 해. 그리고 쿵쿵 소리 내서 죄송합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라고 말도 하고" 그러자 딸아이는 "알겠어! 내가 꼭 말할게!"라고 밝게 답했다.
두근거리는 마음을 붙잡고 아랫집 벨을 눌렀다. 한번 눌렀는데 인기척이 없어 또 눌렀다. 노크도 해보았다. 그러나 아무도 없는 듯했다. 나와 딸은 다음날 다시 아랫집을 찾아갔다. 벨을 눌렀더니 이내 누구세요라는 목소리가 들렸다. "네 아랫집이에요 드릴 말씀이 있.."
덜컥. 소리와 함께 아랫집에 사시는 중년의 남성 분이 나왔다. 나는 곧바로 "저 안녕하세요 위층 000호에 사는데요. 저희 딸이 요즘 너무 춤을 많이 추고, 흥이 날 때면 뛰기도 해서요. 매트를 깔았어도 쿵쿵 소리가 들릴 듯해서.. 죄송해서 인사드리러 왔어요. 죄송합니다."라고 속사포랩처럼 멘트를 했다.
그리고 딸에게도 "00아 너도 드릴 말씀 있지?"라고 토스했다. 그러자 "죄송합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라고 준비한 멘트 중 가장 중요한 핵심만 잘 말했다.
이윽고 어떤 대답이 돌아올까. 표정은 어떨까. 등등 여러 생각이 드는 채로 약간의 침묵이 있었다.
아랫집 주인분은 웃으시며 "아이고! 얘가 뛰어봐야 얼마나 뛰겠어요. 뛰어도 괜찮아요. 그렇게 애들 큰 거지"라며 "괜찮다. 꼬마야."라고 하시는 게 아닌가.
아파트에 살며 층간소음이란...
정말 쿨하게 괜찮다고 해주시는 통에 잔뜩 긴장했던 나도, 첫째도 마음이 조금은 편해졌다. "감사해요. 그래도 정말 아이 조심시킬게요. 아 이건 별건 아니고 설이라 떡국떡이랑 과일이에요."라며 수줍게 소핑백을 건넸다. 그리고 인사하고 돌아서려는 찰나.
"잠깐! 잠깐만 기다리세요"라며 황급히 집안으로 들어가시는 게 아닌가. 순간 무슨 일이지, 뭐지, 왜 그러시지 라는 생각을 했다.
이내 돌아오시더니 딸아이에게
"새해 복 많이받으렴"이라며 만원을 쥐어주시는 게 아닌가.
"어머 아니에요. 정말 괜찮습니다. 다윤아 다시 돌려드려"라고 손사래를 쳤지만, "이런 건 받는 거야. 잘 가렴"이라며 극구 다시 받지 않으셨다.
층간소음 양해를 드리러 갔는데, 돈을 받아오다니..
걸어 올라오는 계단에서 이걸 받아도 되는 건지 싶었다. 일단은 이해해주는 마음과 딸아이에게 괜찮다고 해주신 점이 정말 감사했다.
이 감사한 마음 때문인지, 만원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ㅎㅎㅎ 아랫집에 다녀온 후 더욱더 딸아이에게 발소리가 안 나도록 주의를 시키게 됐다. 딸아이도 뭘 아는지 "아! 알겠어 엄마"라며 조심한다.
요즘 뉴스를 보니 층간소음으로 별의 별일이 다 생긴다. 코로나19 양성 판정을 받은 아랫집 주부가 위층에 올라가 윗집 아이의 자전거에 침? 콧물?을 묻혔는데, 그 이유가 '층간소음 때문에 홧김에 그랬다'였다.
층간소음. 겪어보지 못한 사람은 그 스트레스를 감히 상상도 하지 못한다고 한다. 나는 지금껏 딱 한번 층간소음으로 스트레스를 받은 일이 있다. 몇 해 전 살던 아파트 윗집에 살고 있는 사람들이 새벽 2시 넘도록 가구를 옮기는 거다. 가구를 끌고 들었다가 쿵 내려놓고. 와. 정말 그 가구 끄는 소음이 얼마나 심한지, 잠도 못 잤다. 정말 그 새벽에 가구를 옮기는 게 맞는지, 내가 오해하는 건 아닐까 해서 그 새벽에 윗집에 가서 현관문에 귀를 대보기도 했다.
그때 희미하게 들리는 소리 "아 오빠 위치 거기 말고 저기 저쪽으로 어쩌고 저쩌고 쿵쿵 드르륵"
하아. 역시나 가구를 옮기는 게 맞았다. 나는 집으로 돌아가서 쪽지를 썼다. 새벽에 문을 두드리고 항의를 하는 건 내 작은 마음으론 할 수 없었기 때문. 약간은 부들거리는 마음을 붙잡으며
"아랫집입니다. 새벽 내 가구 옮기는 소리에 잠을 자지 못했습니다. 사실 요 며칠 동안 가구 끄는 소리가 들렸지만 그냥 넘겼는데, 새벽 내내 가구를 끌고 쿵 하고 내려놓는 소리는 정말 힘드네요 어쩌고 저쩌고 조심해주세요"라고 써서 집 앞에 붙여두고 왔다.
쪽지가 붙었는지 알 리 없는 윗집은 한참 동안이나 더 가구를 옮겼고 나는 선잠을 잤다. 그리고 그다음 날부터 한동안 윗집에서 가구 끄는 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암튼 나는 1층에 살지 않는 이상, 또 아파트에 사는 이상, 지금처럼 계속 아이들에게 공동주택 예의를 상기시키며 조심하며 살 생각이다. 나도 아랫집이다라는 마음으로.
22. 5. 16.
아랫집 주인분을 도통 엘리베이터에서 만나지 못하고 있어서 인사를 드리지 못함이 못내 아쉬운 나와 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