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라카미 하루키 <기노> in 여자 없는 남자들
누구나 마땅히 감내해야 할 이별의 상처가 있다. 술을 마신다 해서, 그리고 새로운 사람을 만난다 해서 그 고통은 부채처럼 잠시 연기되어 쌓여갈 뿐, 결코 자유로울 수 없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놀라운 능력 중 하나는 글을 담담하고 담백하게 풀어나가면서도, 이별의 상처와 그로부터 한 걸음 성장하는 과정들을 정확히 짚어낸다는 것이다. 개인적으로 꼽는 하루키의 걸작 중 하나인 <여자 없는 남자들>의 단편소설 <기노>는 이에 대한 그의 통찰을 잘 드러낸다.
소설의 주인공인 기노는 골목 안쪽에 작은 바를 운영한다. 원래는 스포츠용품 판매회사에서 러닝슈즈 영업사원으로 십칠 년 간 근무하였다. 그러나, 회사에서 제일 친하게 지내던 동료가 아내와 벌거벗은 채 침대에서 관계를 맺는 장면을 목격한 후, 곧바로 집을 나왔고 회사엔 사직서를 냈다. 마침, 기노의 이모에겐 팔리지 않은 부동산 매물이 있었고 그로부터 저렴하게 이어받아 바를 새로 운영하기 시작했다.
이상하게도 그 과정에서 헤어진 아내나 그의 동료에 대한 분노와 원망은 없었다. 물론 처음에는 큰 충격을 받았고 한동안 제대로 뭔가를 생각할 수 없는 상태였지만, 이내 '뭐 어쩔 수 없는 일이지'라고 생각하였다. 기노의 삶은 원래부터 아무런 성취도, 생산도 없는 인생이었다. 누군가를 행복하게 해주지 못하고 당연히 그 자신도 행복하게 하지도 못했다. 행복은 물론이고, 고통이나 분노, 실망, 체념, 그런 감각도 또렷하게 와닿지가 않았다. 그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깊이와 무게를 상실해버린 자신의 마음이 어딘가 맥없이 떠내려가지 않도록 단단히 묶어둘 장소를 마련하는 곳이었고, '기노'라는 작은 술집이 그 역할을 하고 있었다. 최소한 그에게는 마음이 편해지는 공간이었다.
어느 날 회색 길고양이가 찾아왔고, 이윽고 조금씩이나마 손님이 찾아들기 시작했다. 최소한 다달이 임대료를 낼 정도의 매출은 나왔다. 문을 연 지 두 달쯤 지났을 무렵, 머리를 민 젊은 남자가 손님으로 가게를 찾아오기 시작했다. 일주일에 한 번, 많으면 두 번 정도. 그는 언제나 가장 눈에 띄지 않는 카운터 제일 안쪽 의자에 앉아 처음엔 맥주를, 다음엔 위스키를 주문했다. 그리고는 말없이 두툼한 책을 읽는다. 가끔 기노와 얼굴이 마주치면 슬쩍 고개를 끄덕인다. 당신 얼굴은 기억하고 있습니다, 라고 말하듯이. 한 시간쯤 시간이 지나면 자리에서 일어나 현금으로 계산하고 떠난다.
여름이 끝날 무렵 마침내 기노의 이혼이 정식이 성립되었고, 아내와 얼굴을 마주하게 된다. 둘이 상의해서 처리해야 할 용건이 몇 가지 남아 있었고, 그녀는 아내의 대리인 대신 직접 의논하길 원해 기노의 가게에서 만났다. 용건은 곧바로 처리되었고, 두 사람은 서류에 서명하고 인감도장을 찍는다. 아내는 파란색 새 원피스를 입었고 머리는 전에 없이 짧았다. 표정도 전보다 밝고 건강해 보였고, 목덜미와 팔에 붙은 군살도 싹 없어졌다. 마치 새로운, 그리고 좀 더 충실한 생활을 시작한 것처럼. 그녀는 가게 안을 둘러보더니 꽤 멋진 가게네, 라고 말한다. 조용하고 깔끔하고 분위기도 차분하고, 정말이지 당신다워. 그리고 짧은 침묵이 있었다. 마치 '그렇지만 가슴 떨리게 하는 것은 없어'라고 말하는 듯이. 아내는 기노에게 상처를 준 것에 대해 사과한다. 그리고, 하루빨리 다 잊고 새 사람을 찾는 게 좋을 것이라고 말한다.
가을이 오자 가게에 자주 오던 회식 길고양이는 사라졌고, 뱀들이 나타나기 시작한다. 그것도 일주일 사이에 세 마리나. 어느 날 밤 그 민머리 사내가 찾아온다. 폐점할 시간이 될 즈음 계산을 마치고 기노에게 이 공간이 많은 것이 빠져버렸다며, 당분간 가게문을 닫고 멀리 떠나는 것이 좋겠다고 말한다. 물론 기노는 무슨 말인지 이해하지 못한다. 그 사내는 기노가 옳지 않은 일을 했기 때문이 아니라 옳은 일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문제가 발생했다고 말한다. 그리고 되도록 멀리 떠나고, 자주 이동해야 한다, 매주 월요일과 목요일에는 반드시 보내는 사람 이름과 메시지를 쓰지 말고 이모에게 보내야 한다, 라고 말한다.
기노는 선뜻 이해가 가지 않지만 일단 여행가방을 꾸려 긴 여행을 떠난다. 민머리 사내가 말한 대로 매주 월요일과 목요일에는 이모 이름과 주소만 써서 그림엽서를 보낸다. 열흘쯤 지났을까. 자신의 몸이 점점 무게를 잃고 피부가 투명해져 가는 것처럼 느껴진다. 그날 기노는 문득 그림엽서에 이모에게 보내는 글을 써서 보낸다. 물론 이는 민머리 사내가 엄금하는 일이었다. 그저 기노는 어딘가에서 현실과 이어지고픈 충동을 억누르지 못했을 뿐이다.
그날 밤 눈을 떴을 때 누군가가 그의 방문을 노크하고 있었다. 두 번. 연달아서 두 번. 잠시 틈을 두었다가 다시 두 번. 강한 노크는 아니지만 그 소리는 솜씨 좋은 목수가 못을 박듯 간절하고 단단하게 응축되어 있다. 문을 두드리는 게 누구인지 기노는 안다. 그 방문은 자신이 무엇보다 원해왔던 것과 동시에 무엇보다 두려워해 왔던 것이다. '상처 받았지, 조금은?' 아내가 물었을 때, 그는 '나도 인간이니까 상처 받을 일에는 상처 받아',라고 답했다. 그것은 사실이 아니다. 그는 상처 받아야 할 때 충분히 상처 받지 않았다. 진짜 아픔을 느껴야 할 때 결정적인 감각을 억눌려버렸다. 통절함을 느끼고 싶지 않아서 진실과 정면으로 맞서기를 회피하고, 그 결과 알맹이 없는 텅 빈 마음만 떠안게 된 것이다.
기노는 이불을 둘러쓰고 눈을 감고 두 손을 귀를 틀어막고 자신의 비좁은 세계로 도망쳐 그 안에 틀어박힌다. 그러나 그 소리로부터 완전히 도망칠 수 없다. 그 소리는 다른 방향에서 다른 울림으로 계속 들려온다. 마치 눈을 돌리지 말고 나를 똑바로 봐, 이것이 네 마음의 모습이니까, 라고 말하는 듯이. 기나긴 사투 끝에, 마침내 기노의 내면 깊은 곳에 있는 작고 어두운 방 한 칸에서 누군가의 따스한 손이 그의 손을 향해 다가와 포개진다. 그것은 그가 오랫동안 잊고 있었던 것이다. 그래, 나는 상처 받았다, 그것도 몹시 깊이. 기노는 스스로에게 그렇게 말한다. 그리고 눈물을 흘린다. 그 어둡고 조용한 방 안에서.
9년 간의 긴 연애를 할 당시, 1000일 정도 만날 즈음 1년 간 잠시 헤어졌던 적이 있었다. 나는 당시 스타트업에서 매일 12시간씩 근무를 강도 높은 근무에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 지친 상태였고, 그동안 꼬일 대로 꼬여온 그녀와의 갈등은 풀릴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어쩌면 서로가 안 맞다는 것을 인정하고 정리하는 것이 더 적절해 보였다. 결국 그녀와의 관계는 끝이 났다. 이상하게도 당시에는 슬픔보다는 홀가분한 감정이 더 컸다. 마치 참/거짓을 판별하는 수학 문제처럼, 맞다고 생각하는 답에 체크하고 넘어갔다. 그리고 다음 문제인 내 일에 집중하였다. 그렇게 두 달이 지났다. 그동안 나는 근무하던 스타트업을 그만두고 학교에 복학하여 새 학기를 시작하였다.
두 달이 지나자, 그동안 미루고 미뤄왔던 이별의 후폭풍이 터져 나왔다. 학교에 가니 그녀와 처음 만났던 순간이 떠올랐고, 신촌과 대학로를 지날 때면 그녀와 데이트했던 기억들이 떠올랐다. 카페를 가면 그녀가 좋아하던 커피부터 떠올랐고, 버스를 타면 그녀를 집 앞에 바래다주었던 기억이, 지하철을 타면 많은 인파 속에서 그녀와 장난치던 생각이 떠올랐다. 어디를 가서 무엇을 하던 그녀와의 추억이 남아있었고, 그 추억들은 기노의 노크처럼 내 기억의 문을 끊임없이 두드려왔다. 하루하루가 좌절이고 절망이었다.
끝내 그 고통을 참지 못하고 그녀에게 연락하기 시작했다. 문자를 보내기도 했고, 전화하기도 했다. 그리고 그녀의 집 앞까지 찾아가 무작정 기다리기도 했다. 긴 노력 끝에 겨우 그녀와 얼굴을 마주보고 식사할 기회를 얻을 수 있었지만, 그녀의 표정은 냉담할 뿐이었다. 그리고, 머지않아 그녀는 어학연수를 떠났다. 더 이상 그녀를 붙잡을 기회는 보이지 않는 것 같았다. 당시에 나는 한 교육기관에서 1년 교육프로그램을 이수하고 있었는데, 그 프로그램 졸업생은 세계여행의 기회가 주어졌다. 여행 국가는 본인이 원하는 어디든지 가능했다. 운 좋게도 나는 졸업을 하였고, 세계여행 계획을 할 수 있었다. 그런데, 그 어느 국가를 보아도 호기심이 생기지 않았다. 그녀가 있던 멕시코만 눈에 보였을 뿐이다.
기나긴 고민 끝에 나는 그녀가 있는 멕시코로 여행을 떠나기로 결심했다. 새해가 오기 전에 붙잡을 수만 있다면, 관계를 다시 회복할 수 있을 것이라는 확신이 있었다. 출국 사흘 전에 티켓을 끊고, 연락할 방법이 없던 나는 그녀 이메일에 '그쪽으로 운 좋게 여행할 수 있게 되었는데, 시간 되면 얼굴 보자'라는 메일을 보내고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막상 도착하니 대부분의 멕시코인들은 영어를 전혀 쓸 줄 몰랐고 치안도 위험한 편이어서, 차마 밖엔 나가지 못하고 숙소에서 벌벌 떨며 그녀의 답장만 기다리고 있었다. 그녀의 답장은 끝내 오지 않았다. 그리고 나는 그렇게 새해를 맞이하였다.
어쩌면 내가 당시에 견디지 못했던 것은 그녀와의 이별로부터의 고통이었는지도 모른다. 당시에 나는 우리의 근본적인 문제가 뭐였는지, 그리고 다시 만난다면 과연 그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지 깊이 고민하지 않은 채, 그저 당장의 고통을 만회하기 위해 어떻게든 재결합하려 했던 것이다. 다행히 그로부터 9개월 후 자연스럽게 연락이 닿아 다시 만나게 되었고 헤어지게 만들었던 원인들은 점차 해결되었지만, 지금 돌이켜보면 어리석고 이기적인 생각이 아니었나 생각이 든다.
5년이 지난 지금의 이별은 조금 이야기가 다르다. 단순히 감정적인 문제라기보다는 현실적인 문제에 가깝다. 그녀는 베트남에서 근무를 하다 한국에 들어왔고, 나는 그 직전에 뉴욕으로 유학길에 올랐다. 비록 1년 동안 단 한 번도 만나지 못하긴 했지만, 나는 그녀가 언제나 뉴욕을 꿈꿔왔기에 곧 뉴욕에서 함께할 수 있다는 희망을 품고 있었다. 그러나 그녀는 곧 이별을 통보했다. 연애를 시작한 후로 9년째 학생 신분에다 앞으로도 4-5년은 더 공부를 해야 하니 그녀 입장에선 내 미래가 적잖이 막막해 보였던 것이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이젠 나도 안다는 것이다. 그때처럼 일에 매몰된다 해서, 죽기 살기로 운동한다 해서, 무작정 그녀를 찾아간다 해서, 그리고 새로운 사람을 만난다 해서 그 상처로 인한 고통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는 것을. 그저 그 순간을 묵묵히 기다리고 감내해야 할 뿐이다. 한 달이 지난 지금도 그녀와 장난치던 기억이 떠오를 때면 혼자 피식 웃다가도, 그녀가 이별을 통보했던 기억엔 치를 떨다가도, 그녀의 다정한 말을 하던 기억엔 다시 아련해지다가도, 끝내 이별했다는 사실에 절망하기도 한다. 언제까지 이 상태가 반복될지는 나로선 알 수 없다. 그저 이 과정이 희미해지기를 바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