싱가포르 판단 밸리에서의 기억
뉴욕 박사생의 삶은 '뉴욕'이란 화려한 이름과는 다르게 매우 단조롭고 적막하다. 나의 하루는 아침 3-4시에 시작한다. 아침에 눈을 뜨면 약 30분 간 멍을 때리며 잠에서 깨고, 물 한 모금을 마시고 커피부터 내린다. 커피가 없으면 피곤에 절어 전혀 이성적인 판단을 할 수 없다. 커피를 마시면서 메일이나 아주 기본적인 할 일을 마치고, 논문을 읽거나 쓴다. 그리고 1~2시간이 지나 커피를 다 마실 때쯤(보통 6~7시) 운동을 하러 간다. 헬스장과 집의 거리는 약 1km이다. 걸어가기엔 조금 멀고, 버스를 타기엔 좀 가까운 거리. 그래서 운동시간을 줄일 겸 헬스장까지 뛰어갔다 온다.
헬스장에 가는 길엔 2층 주택가가 밀집해 있다. 우리가 미국 드라마나 시트콤에서 볼 법한 평범한 가정들로 가득한 곳이다. 쾌적한 아침 햇살을 만끽하며 뛰다 보면 1층 현관에서 유독 락스 냄새가 강하게 나는 집이 있다. 그 락스 냄새는 싱가포르에서 지낼 당시, 판단 밸리 12층 아파트에서 맡던 락스 냄새와 정확하게 일치한다. 공교롭게도 내가 아침 일찍 아파트 헬스장에 갈 때마다 가사도우미들이 아파트를 청소하고 있었기에 그 당시의 상황과도 일치한다. 그 집을 지나칠 때면 종종 싱가포르에 대한 감상에 젖곤 한다.
8년 전, 나는 3년 간 만나던 여자친구와 헤어지고 1년 간의 공백기를 가졌다. 이별의 충격에 좀처럼 헤어 나오지 못했고, 겨우 정신을 차릴 때쯤, 정말 우연히도 그녀와 연락이 다시 닿았다. 나도 나름대로 새로운 사람을 만나보려 노력을 했었고, 그녀도 그랬던 것 같다. 그러나 신기하게도, 외적으론 아무리 괜찮아 보이는 사람들을 만나도 마음음 좀처럼 움직이질 않았고, 그런 경험들이 하나, 둘 쌓이자 그녀에 대한 확신이 더욱 생겼던 것 같다.
당시에 나는 싱가포르 교환학생을 준비하고 있었다. 건축학과 특성상, 학교를 5년을 다녀야 했고 굳이 1년을 더 학교 다니는 것이 억울한 마음에 교환학생을 1년 다녀오기로 결심했다. 그리고, 운이 좋게도 출국이 확정되었다. 그즈음, 정말 우연히도 그녀와 연락이 닿았다. 그런데, 알고 보니 그녀 또한 싱가포르 회사와 인터뷰가 진행되고 있었던 것이다. 1년 만에 재결합한 우리는 자연스레 첫 해외 생활을 함께 그리게 되었다.
그녀와 함께 생활할 수 있다는 것은 너무도 설레는 일이었다. 부모님의 눈치를 보며 밤늦게 집에 들어오지 않아도 되었고, 버스나 지하철 막차 시간을 고민하지 않아도 되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우리의 데이트가 곧 일상이 되는 것이었다. 싱가포르 출국 당시, 부모님께는 학교 기숙사에 거주한다고 거짓말을 하고, 도착하자마자 한 방에 18명이 자야 하는 작은 게스트하우스에 두 달간 머물며 그녀와 함께 살아갈 집을 여기저기 알아보았다.
그녀와 감당할 수 있는 월세와 그녀도 만족할 만한 퀄리티의 집을 나름대로 까다롭게 알아본 끝에 결정한 곳이 판단 밸리에 위치한 아파트다. 내가 다니던 학교와 그녀의 직장이 위치한 오차드 거리와 가까운 곳이었고, 아파트는 조금 낡았지만 나름 깔끔했다. 수영장, 헬스장, 1층 슈퍼, 인근 대형마트, 산책로 등등 콘도미니엄으로서 갖출 건 모두 갖춘 곳이었다. 무엇보다 마음에 들었던 것은 조용하고 차분한 분위기로, 주말에 함께 휴식을 취하기 좋아 보였다. 방을 마련하고 나서 머지않아 그녀는 싱가포르로 도착했고, 우리는 첫 해외 생활을 시작했다.
그녀와의 생활은 퍽 낭만적이었다. 때론 그녀의 직장을 찾아가 근처 음식점에서 함께 점심을 먹기도 하고, 집 근처 홀란드 빌리지에서 저녁을 먹기도 했다. 밤엔 산책로를 함께 걷기도 하고, 늦은 밤 고민 끝에 아이스크림을 사 먹으러 가기도 했다. 주말엔 함께 커피빈이나 스타벅스에 가서 시간을 보내기도 했고, 멋진 보타닉 가든을 걸으며 여유를 만끽하기도 했다. 때론 칼랑 테니스장에서 처음으로 함께 테니스를 즐기기도 했고, 맛있는 호커센터를 찾아다니기도 했다. 둘 다 마음이 울적할 땐, 마리나 베이 샌즈를 걸으며 분수쇼를 보기도 했고, 거기에 있는 화려한 빌딩들을 보며 함께 미래를 그려보기도 했다. 문득 김치가 먹고 싶을 땐 야심 차게 양상추 김치를 만들어보기도 했고, 며칠 지나지 않아 망한 것을 깨닫고 울상으로 버리기도 했다. 아침엔 함께 G7 커피와 카야토스트를 먹으며 하루를 시작하곤 했고, 늦은 밤엔 부둥켜안고 서로 간지럽히다 지쳐 잠들기도 했다.
아침에 락스 냄새를 맡을 때면 싱가포르에서 있었던 모든 일들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간다. 지금은 너무도 생생하지만, 하루하루 흐릿해져 가는 기억들. 부둥켜 끌어안고 놓고 싶지 않지만, 더 이상 끌어안을 이유가 없어져 버린 기억들. 만약 끌어안을 이유가 단 하나 있다면, 그건 아마도 미련일 것이다.
연애 기간에 따라 이별의 무게는 조금 다르다. 3년 간의 연애 끝에 겪는 이별은 서로에 대한 무지와 오해, 혹은 권태일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9년 간의 연애를 하면 이미 감정의 사계절을 서너 번은 겪은 상태이고, 상대를 세상 그 누구보다 잘 알게 된다. 그런 상태에서 이별을 고한다는 것은 더 이상 사랑하지 않는다는 말 이외에는 그 어느 것도 변명이 되지 않는다. 3년 연애를 한 상황이라면, 상대가 나를 잘 모르거나 오해할 가능성이 있기에, 어떻게든 오해를 바로잡아 붙잡고 싶은 욕심이라도 생긴다. 그러나 9년을 연애한 상황이라면, 나를 세상 그 누구보다 잘 아는 사람이기에 더 이상 오해의 소지가 없다. 그저 나의 조건이 마음에 안 들고, 그걸 끌어안을 만큼 사랑하지 않는다는 이유밖에 없다.
이 사실을 받아들이는데 적지 않은 시간이 걸렸다. 때론, 너무 화가 나기도 했고, 수치스럽기도 했고, 자존감이 바닥을 치기도 했다. 오랜만에 그녀로부터 연락이 왔을 땐, 그녀의 나에 대한 미련과 감정이 남아있길 내심 바라기도 했었다. 그러나 그녀는 아무리 힘든 시기를 겪고 자존감이 낮아진다 하더라도, 내게 미련이 남아있거나 감정이 남아있다는 착각조차 하지 않았다. 여기엔 내가 붙잡을 수 있는 어떠한 여지도 없었다.
이제는 이 미련과 함께 그녀와 관련된 모든 기억들을 놓아주어야 할지도 모른다. 지난 7개월 간 나를 갉아먹어왔던 기억들. 꿈 속에 나타나던 그녀가 현실로 돌아올지도 모른다는 나의 미련들. 그 시절의 그녀는 더 이상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다. 그리고 이젠 나는 그걸 받아들일 수 있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