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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종혁 Dec 15. 2018

흔들리는 꿈을 꾼다는 것

난 꿈이 있는데... 이루고 싶은데... 뭔가 가끔은 이게 내가 진짜 바라는게 아닌거 같구... 어떻게 이룰지도 잘은 모르겠구... 노력은 하는거 같은데... 가끔은 또 아닌거 같구... 내가 진짜 원하는지 잘 모르겠는데 노력하려니 어려운거 같기도 하고...

드라마 <으라차차 와이키키>

동구는 영화감독이 꿈이다. 영화 일을 받을만한 경력도, 영화를 만들만한 돈도 없다. 그래서 돌잔치 촬영을 한다. 하루는 아기의 성장 동영상을 만드는 일을 받아온다. 세상 꾸욥게 만들어야 할텐데, 정자의 여정부터 시작하는 대서사시 다큐를 만들어 사장한테 깨진다. 두식이는 작가가 꿈이다. 인터넷에 이소룡이 부활해 미국 대통령과 싸우는 소설을 쓴다. 보는 사람이 없어 조회수를 직접 올린다.


하지만 드라마 <으라차차 와이키키>에서 그들의 꿈은 계속된다. 아무도 인정해주지 않아도, 비난받아도, 돈이 없어도 그들은 굴하지 않는다. 그들은 유쾌하게 도전한다. 아, 이게 얼마나 멋진 일인지. 나도 저렇게 되고싶다. 하나의 꿈에 미친 듯이 노력하고 싶다....


...라곤 하지만 사실 나는 저런 용기가 없다. 내가 꾸는 꿈이 정말로 내가 원하는 것인지 잘 모르겠다. 뭐가 우선인지도 모르겠다. 돈 많이 주는 개헬직장 있으면 꿈정도는 포기할 수 있지 않을까. 내가 하는 노력이 되고 싶은 것에 정확히 맞아 들어가는지도 모르겠다. 하나도 보이지 않는 이 암흑 속에서... 와이키키 친구들은 내게 말을 건다. 정말 좋아하는게 있다면, 정말 간절히 노력한다면 너도 할 수 있어! 꿈꾸는 청춘 힘!내!


아뇨. 사실 저는 제가 꾸는 꿈이 맞는지도, 제가 그거 달성하면 행복할지 안할지도 모르겠다는... 열심히 노력하면 뭐가 된다구요? 안되면 어떡해요?


쫄리면 뒈지시던가?

나는 갖고 싶은 직업이 있다. 이 일을 하면 재미있다. 하지만 두렵다. 내가 이걸 이뤄낼 수 있을지. 성취를 하면 인생이 그래서 행복해지는지. 잘 모르겠다. 비전이 막 있는 것도 아니다. 돈도 잘 못벌고 고생만 하다 경력이 끝날 수도 있을텐데 그러면 어떡할지. 그래서 꿈을 자꾸 의심하고 망할 것을 대비해 보험을 알아본다.


물론 누군가가 답을 내줄 수 없다는 것을 잘 안다. 나도 나를 잘 모르겠는데 남들이라고 더 나을까. 내가 꿈에 부칠 때, 다른 사람들이 할 수 있는 이야기란 그저 “너의 모든 것을 걸어서 함 해봐” 정도일 것이다. <와이키키>를 위시한 온갖 청춘드라마들과 인터넷 검색창에 꿈 명언 따위를 치면 나오는 대부분의 온갖 미사어구들은 “가즈아”를 외친다. 어짜피 꿈은 도박이라고. 하이 리스크 하이 리턴이라고. 실패하면 어떻냐고. 다시 일어서면 된다고.


뭐, 뻔하지만 모르고 하는 소리다. 실패는 나에게서 많은 것을 앗아갈 것이다. 우리 사회가 실패에 관대한 사회도 아니고. 지금 이 시간에도 수많은 사람들이 꿈을 포기하고 안정적인 미래를 선택한다. 그리고 그 안정적인 삶마저도 점점 이루기 힘들어진다. 사정이 이런데 어떻게 내 모든 것을 걸라는 말을 그렇게 쉽게 하는지. 그렇게 야속할 수가 없다.

제가 왜 손모가지를 걸어야 하죠?

누군가는 꿈을 자꾸 의심하는 내가 나약하단다. 너가 그래도 지금까지 여기에 투자한 게 얼만데, 이렇게 노력해서 성공한 사람도 있는데 넌 왜 자꾸 흔들리냐고. 제딴엔 나를 채찍질 비슷한거 해보려고 하는 이야기였겠지마는, 내 생존이 달려있는 문제를 고민하는게 나약하다면 이 세상에서 살아남은 사람들은 대체 누굴까. 강하고 멋있어서 꿈만 좇아 돌격하다가 장렬히 망할 바엔 나약한게 나아 보인다.


아 왜, 꿈을 꾸는건 난데 꿈은 나를 계속 돌려 세울까. 꿈은 어떤 높은 곳에서 나를 얄밉게 내려다본다. 나를 가지려면 오만가지의 노력과 피땀이 필요한데 하는 둥 마는 둥 하면서 날 의심한다고 욕한다. 꿈으로 올라가는 길 주위에는 많은 사람들이 모여 “가즈아”, “쫄리면 뒈져라”를 복창한다. 그 길에서 내가 넘어지거나 다치기라도 하면 그들은 가장 먼저 나를 떠날 것임에도. 두려우면 지는 것 같아서, 두렵지 않은 척 빨간약 가득 복용하고 길로 발걸음을 내딛어도 쓸쓸히 망해버릴 수 있다는 것. 그것이 정말 두렵다.


제 꿈은 제가 알아서!


이 모든 것들 때문에 꿈을 포기하지는 않았다. 매일 매시간 이런 걱정을 하지도 않는다. 가끔 빨간약을 복용한다. 그래도 잘 되겠지, 꿈을 이루는 데는 크게 도움 안 되도 내 인생엔 도움이 되겠지. 하면서. 하지만 여전히 가즈아는 못하겠다. 내게는 보험이 필요하다. 그래서 최소한이라 생각하는, 내가 망할 것을 대비한 수단을 끼고, 조금 타협해서 다시 노력해 볼 생각이다.

가즈아는 못하겠다.

이 비교적 긴 하소연의 결론은 자명하다. 결국 꿈은 내가 꾸는 것이다. 내 꿈에 대한 타인들의 지배적인 조언에 맞춰 내 자신을 제단할 필요는 없다. 필요한 정보가 있으면 찾고 배울 것이 있으면 배워야겠지만, 그것 역시 내가 판단하는 것이다. 사람들의 “가즈아”식 채근은 나를 이해하고 있다기엔 누구한테나 할 수 있는 너무 쉬운 말이다. 세상 사람들이 다 같은 방식으로 성공하는 것도 아니다. 스스로가 더욱 편한 환경에서 더 효과적인 노력의 방법을 찾는 것 역시 성취에 도움이 되는 것 아닐까.


내 진단과 처방은 내가 한다. “너의 모든 시간을 검열하고 오직 한 우물만 파야 성공할 수 있다.”라는 말은 충분히 희망적인 꿈이라는 단어마저 답답한 매뉴얼 속에 가둬버렸다. 나는 그런 말을 듣지 않기로 했다. 안 그래도 불안한데, 그런 말에 내 행동을 검열하며 더 불안해지고 싶지 않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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