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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종혁 Dec 20. 2018

너머의 환상

수능이든 군대든 뭔가 "큰게" 끝났다면

인생을 살면서 항상 어떤 “챕터”를 넘어갈 때가 있다. 오랫동안 준비해왔던, 집중하고 수행해왔던 몇가지 일들이 갑자기 끝나는 순간. 수능이 끝나거나, 졸업을 하거나, 전역을 하거나, 빚을 다 갚거나 하는 식으로 말이다. 흑염룡을 봉인한 왼팔마냥 참고 참고 참았다가 이 날만 오면 정말 기쁘겠다고, 오기만 해봐라 진짜 놀다 죽을거라고 동네방네 떠들고 다니는 그 날. 익숙했던 삶의 자욱이 지워지고 이때 우리는 이 “너머”를 맞이하게 된다. 



고3이었던 2014년 말, 수능을 준비했다. 수능만 끝나면 진짜 미친듯이 놀아버려야지 계속 되뇌이면서 책상에 앉기 싫어도 앉았고, 졸려도 참았다. 하늘이 감동할 정도는 아니었지만 열심히 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결과는 아쉬웠다. 9월 모의평가 성적에서 정확히 4개를 더 틀린, 상대적으로 “망해버린” 성적표를 받았을 때 기분은 너무나 찝찝했다. 더군다나 물수능이었는데. 아무 부담도 없을 거라고, 이제 행복과 광란의 파티만 있을거라고 생각했던 나의 수능 너머는 행복하지 못했다. 일단 남들 다 노니까 놀기야 놀았지만 기분은 항상 불안해서, 잘 놀 수도 없었다. 게다가 12월 초에 수시모집에서 다 떨어져버려 기분과 처지는 바닥으로 떨어졌다. 단톡방에서 친구들이 전하는 합격 소식에 너무 부러웠고, 방에 혼자 누워 천장을 보고 있으면 답답함이 밀려왔다.


 “나 그동안 뭐했지?” 그동안 꽤 했다고 생각했는데…. 그동안의 노력을 한번의 시험으로 말아먹은 내가 정말 미웠고, 머릿속엔 정말정말 하기 싫었던 재수 생각밖에 없었다. 그러다 보니 머리가 돌아가고 있는게 싫었다. 이제 뭐할지 생각하고, 망했다고 생각하고, 부끄럽고 아쉽다는 생각만 계속 하다보니 깨어 있는 시간마저 고통스워서 그냥 잠을 많이 자버렸다. 새벽 세, 네시쯤에 자서 정오 쯤 일어났다. 일어나자마자 하는게 핸드폰으로 오르비(수능 커뮤니티) 보는거였다. 오르비 네임드들이 쓴 개념글들 <재수를 생각하는 현역이 꼭 봐야할 글>, <5수만에 무슨무슨대학교 붙었습니다>이런 글이나 읽었다. 그렇게 점심도 안 먹고 두세시간 보다가, 엄마가 밥먹으라고 부르면 저녁먹으러 가고. 다시 누워있고… 하여튼 생산적인 건 1도 안 한 시절이었다.


결국 정시모집으로 대학을 가긴 했지만, 14년 12월과 15년 1월은 내겐 정말 고통스러웠다. 이게 겨우 수능 “너머”라니. 그냥 헛헛함과 잉여스러움 뿐이었던 나의 두 달. 너머의 기대가 컸기에 실망도 미친듯이 컸다. 그래서 그때부터 “너머”를 의심하기 시작했다. 뭐든 엄청나게 기대하면 안되는구나. 인간지사 존나 고통이구나. 하긴, 내가 수능을 이것보다 잘 봤어도 그렇게 미친듯이 행복하지는 않았겠구나 싶었다. 다시 그때로 돌아가서 뭘 어떻게 하든 수시 다 떨어졌을 수도 있고, 정시 원서를 쓰기 위해 하루에 열시간 넘게 컴퓨터만 하면서 수험생 커뮤니티를, 모의지원을 뒤적거리는 잉여로움은 똑같았을 것이다. 나보다 대학을 잘 간 친구들에 대한 부러움도 똑같았을 거고… 심정이 이따구인데 놀면 뭐했을까. 아;; “너머” 진짜 별거 없구나. 



수능이 끝나고 4년이 지났다. 전역을 했다. 전역하기 직전은 정말 기분이 좋았던 걸로 기억한다. 말년 휴가 복귀하고 한 5일정도를 부대에서 지냈는데, 이때가 기분은 최고조였다. 곧 정말 집에 가버릴 사람이라 아무도 터치하지 않았다. 동기와 함께 전역하면 이제 군대에서 하지 못했던 것들 이것 저것 할거라고!!! 방방 뛰면서 지냈다. “전역하면 얼마나 좋을까?” 란 말 계속 되뇌이면서 나가는 날에 부대 앞에서 막걸리 인당 5병씩 하고 가자고 동기랑 약속도 했다. 전역으로 들뜬 최고참을 보는 후임들은 부럽게 나를 쳐다봤다. 


전역하는 날 아침에 예비군 마크를 달고 집 근처 기차역에 내렸을 때의 기분은 정말….(차시간 때문에 막걸리를 먹진 못했다ㅜㅜ) 잉? 그저 그랬다. 그냥… 정말 갑자기 별 생각이 안 들었다. 갑자기 기쁨을 느끼는 회로가 정지된 것 마냥. 그냥 갑자기… 군인이었던 시간동안 느꼈던 짜증남이나 답답함, 그리고 지난 2년, 이런 것들이 갑자기 한번에 없어진 느낌이었다. 기억이 머릿속에서 희미해지고, 더 이상 군인의 관점에서 군생활이 느껴지지 않는 느낌이랄까. 


사람이 참 간사하구나 느꼈다. 민간인 됐다고 바로 군인이었던 거 까먹기 시전해버리는 이… 편리한 기억력… 그 다음부턴 그냥 기쁘지도 슬프지도 않았다. 그냥.. 아 맞네, 나는 닝겐이구나. 이상도 이하도 아닌… 근데 생각해보니까 너무 당연하다. 전역하는게 나에게만 이벤트지…. 어짜피 사람들은 다 이 바깥세상에서 그냥저냥 살아가는거니까. 그런 삶이 디폴트니까. 난 대체 무슨 기대를 가지고 디폴트적인 삶을 찬양했던 것인가… 나오기만 하면 이렇게 당연해 빠져버린 삶을 말이다. (사실 군대가 그렇게 만든거긴 하지만..)  


뭐.. 전역했으니까 친구들이랑 술 좀 먹고, 좀 놀고, 서울도 가고 그러다가 대학생 친구들은 기말고사 기간에 돌입했고, 그때부턴 또 외톨이가 되었다. 그래서 그냥 혼자 뒹굴댄다. 혼자 있다 보니 생각도 많아져서, 복학하면 어떻게 지내야 할지, 학점은 어떻게 매꿔야 할지, 벌써부터 불안감만 가득 쌓인다. 일단 빨리 복학이라도 했으면 그냥 부딪히는거니까 정신 없는 상황에서 불안마저 잊었을텐데, 지금이야 갑자기 쓸데없이 생각할 시간이 너무 늘어나서… 그냥 생각만 하고, 그림을 그리고, 글을 적는 중이다. 전역 너머도 별건 없더라. 



몇 개의 너머를 경험하고 확실해진 건… 사람 삶에 그렇게 오래 지속되는 커다란 환희나 기쁨 같은 건 많이 없다는 거다. 그런 기쁨을 느꼈다고 해도 사람이 간사해서 그 기쁨에도 너무 빨리 적응해버리고, 감정에 싫증을 내 버린다. 난 이제 기뻐하기도 싫다는 듯이. 그리고 자연스레 다음 문제로 넘어간다. 취업난에 취직을 했으면 되게 기뻐할만한 일인데, 출근하는 다음날 부터는 그냥 박박기는 막내사원인 것처럼. 근데 기대는 오지게 한다. 이게 참 언밸런스다. 뭔가가 끝날 때가 다가오면 “쏴리질러~~~~~~”식으로 기대 엄청하고 기분 엄청 좋았다가, 막상 끝나면 미친듯이 실망하고 다음 무언가를 고민하게 되는 “너머의 환상”. 너머. 그 너머엔 참.. 별것이 없더라…. 


속지말자 종혁아… 그냥 기쁘고 싶을 땐 맛있는 거 먹고 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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