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래드 멜다우와 이안 보스트리지의 공연을 보다
브래드 멜다우의 앨범 [Places] 에는 'Schloss Elmau' 라는 곡이 있다. 휴양지로 유명한 곳이라던데, 아마도 멜다우가 아니었으면 평생 알지도 못했을 동네일 것이다. 실은 나는 저 곡을 아주 좋아하는 편인데, 지난 2월에 어쩌다 보니 다녀온 스페인 여행의 원인이 되어버렸다는 놀라운 이야기를 지금부터 하려고 한다.
사건의 발단은 이러하다. 한참 전에, 영국의 테너 이안 보스트리지가 브래드 멜다우와 함께 일을 할 거라는 소식을 보았다. 클래식은 문외한에 가깝지만 보스트리지의 이름은 몇 번 들어서 알고 있었는데, 가령 '인터미션 때 졸았는지 머리에 새집을 짓고 나왔다' 라거나, '겨울 나그네를 너무 좋아해서 책을 썼다' 라거나, '사실은 사학과 출신으로 박사학위도 있다'라는 음악과 크게 관련 없는 시답잖은 이야기를 들은 정도였다. 주변에 팬이 있어서 괜히 그런 이야기만 기억에 남은 건지도 모르겠다. 실은 사학과 출신으로 박사학위도 있는데 음악을 하는 사람이라고 하니 이력이 재미있다고 생각은 했고, 나 자신이 사학과 출신이다 보니 괜히 내적인 친밀감이 쌓인 것 역시 부정은 못하겠다.
뭐 그러려니 하고 있었는데, 작년에 이들이 유럽 몇몇 도시에서만 공연을 한다는 소식을 들었다. 이번에도 역시 특이한 프로젝트로는 한국에는 안 오겠거니, 하고 체념할 뻔했는데, 어쩌면 해외여행을 이 구실로 가 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고, 결과적으로 이번 여정으로 나를 이끌어 주신 분의 강력한 푸시 덕분에 실제로 공연을 보고 돌아오기까지 했다. 지금 생각하니 공연 하나 보자고 비행기를 열두 시간 가까이 타고 타국에 날아갈 결심까지 하다니 나도 참 유별난 인간이구나 싶다.
이제부터는 쉴로스 엘마우가 과연 이 사건에 무슨 영향을 미쳤는지를 이야기할 차례다. 브래드 멜다우와 이안 보스트리지가 함께 공연하겠다고 한 곡은 'The Folly of desire'라는 제목의 성악곡이다. [After Bach]의 원안이 된 'Three Pieces After Bach '처럼, 이 곡도 몇몇 예술극장의 커미션을 받아서 작곡했다고 하는데, 이안 보스트리지를 염두에 두고 만든 곡이라고 했다. 그리고 두 사람의 공연은 쉴로스 엘마우에서 시작되었는데, 전 세계 초연을 앞두고 진행하는 프리뷰 느낌의 공연이었다. 그리고 이 장소는 두 사람이 처음 만나 친분을 쌓기 시작한 곳이라고 한다. 물론 나는 이곳에 가지는 않고, 투어 장소 중 바르셀로나로 가는 것을 선택했다. 별 이유는 아니고, 바르셀로나는 밥이 맛있다는 이야기를 들었기 때문이다.
여행의 목적은 공연 관람이었고 다른 도시를 돌기엔 일정도 열의도 약간 부족했던지라 (나의 모든 관심은 공연 관람에만 있었음을 고백한다) 바르셀로나에만 쭉 머물기로 결정했다. 그리고 공연 당일이 되어, 중심가를 살짝 벗어난 위치에 휑하니 자리 잡은 공연장에 도착했다. 공연장 근처에는 뭔가 수상한 냄새가 났고, 이상하리만치 인적이 드물었다. 심지어 공연을 알리는 포스터조차 붙어있지 않아서 나와 일행은 혹시 날짜를 착각한 것은 아닌지 매우 당황했다. 다행히도 공연 시작시간이 되니 사람들이 몰려들었고 안도의 한숨을 쉬며 목표 달성을 위해 움직였다.
이미 알려진 바와 같이, 이번 공연의 프로그램은 'The folly of desire'와 슈만의 '시인의 사랑'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공연에서 선보일 곡의 노랫말을 인쇄하여 배포했는데, 예이츠, 셰익스피어, 괴테, 브레히트 등 잘 알려진 서구의 문필가를 포함해 e.e. 커밍스 같은 이번에 새롭게 알게 된 작가의 글이 실려있었다. 또한 '시인의 사랑'과 함께 노래할 가곡의 가사도 독일어와 카탈루냐어로 실려있었다.
1부는 신곡인 'The folly of desire'로 시작되었다. 사랑하는 마음, 어떠한 대상을 흠모하거나 경배하는 마음속에 담긴 인간의 욕망을 이야기한다고 밝힌 작곡 의도처럼, 노랫말에는 아름답거나 때로 폭력적인 욕망의 이야기가 담겨있었다. 멜다우의 피아노는 불안하게 어긋나는 듯 시작하여 아마도 멜다우의 솔로 작업물을 자주 들어온 청자에게는 익숙할 몇몇 모티브들을 확장해 인간이 무언가를 갈망하는 마음의 아름다움과 격렬함을 함께 표현하였다. 보스트리지는 노랫말의 내용을 마치 연극으로 표현하듯 다양한 표정과 제스처, 그리고 목소리의 강약을 통해 노래의 뉘앙스를 보다 풍성하게 만들었다. 멜다우가 오랫동안 천착해 온 주제인 '길고 긴 갈망'에 무척 어울리는 곡이라는 생각도 했고, 동시에 보스트리지를 염두에 두고 만들었다는 것도 이해가 되었다. 이날의 테너는 노련하면서도 열정적으로 노래를 표현했고 두 사람은 마치 오랜 파트너처럼 서로를 서포트하며 훌륭한 무대를 꾸몄다.
2부는 슈만의 '시인의 사랑'과 몇몇 가곡으로 구성되었다. 멜다우가 평소 슈만을 좋아하긴 하지만, 클래식 연주는 어떨까 조금 불안한 점이 있었는데 생각보다 훨씬 재미있는 연주였다. 공연 전에 줄리어스 드레이크와 보스트리지의 녹음을 미리 들어놓고 갔는데, 클래식 피아니스트들의 단정하고도 깔끔한, 그리고 단단하게 여문 소리 대신에 멜다우는 특유의 약간 무딘 듯하면서도 섬세하게 감정을 담은 터치로 조금 특별하게 슈만을 표현했다. 보다 감정이 풍부하고, 노래의 감정에 많이 흔들리면서도, 보컬과 서로 대등하게 악기로서 주고받는 느낌이 훨씬 강했는데, 아마도 멜다우가 평소 사이드맨으로 다른 사람들의 작업에 참여하는 일이 많았기 때문에 늘 하던 대로의 연주를 한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물론 문외한인 내가 듣기에도 중간에 틀려서 대충 뭉개고 넘어가는 부분이 들려서 조금 우스웠다.) 전해 듣기로 보스트리지도 어떤 연주자든 잘 맞춰가면서 공연을 하는 타입이라고 하던데, 과연 분명 평소에 함께 하던 피아니스트와 달랐을 텐데도 서로 잘 어우러지는 훌륭한 무대를 보여주었다. 사실 가장 걱정한 건 두 사람의 합이 맞을까 하는 부분이었는데, 그런 걱정 따위 남김없이 날려버린 좋은 공연이 된 것은 역시 서로의 소리를 잘 들을 줄 아는 두 사람이 만나서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다.
본 공연이 끝나고, 앙코르로는 무려 재즈 스탠더드 넘버를 두 곡이나 선보였다. 모두 콜 포터의 곡으로, 'Everytime we say goodbye'와 'Night and day'였다. 보스트리지는 당당하고 품위 있는, 그리고 리듬을 멋지게 타는 목소리로 클래식 음악가가 재즈에게 보여주는 존중과 사랑을 표현했다. 아마 보스트리지의 팬들에게도 특별한 시간이 아니었을까 싶었다. 그리고 나의 여행의 가장 중요한 목표를 달성하며 여정은 마무리되었다. 그들은 돌아오는 5월에 각각 다른 공연으로 한국을 찾을 테지만, 이번 공연은 찾아가지 않았으면 볼 수 없는 아주 특별한 경험이 되었다.
공연이 끝나고 숙소로 돌아오는 길에, 그리고 귀국하는 길에 'The folly of desire'의 주된 모티브인 불안하게 떨리는 멜로디가 종종 생각났다. 원초적인 욕망이란 예술의 아주 오래된 주제이자 지금도 꾸준히 변주되고 재창조되는 주제이다. 욕망은 불안하게 떨리면서도 때로 아름답게 피어나고, 폭력적으로 휘몰아치기도 때로는 하룻밤 사이에 죽어버리기도 한다. 사랑과 폭력은 왜 함께 등장하곤 하는 것일까? 삶과 죽음은 왜 동전의 양면과 같을까? 멜다우가 음악을 통해서 오랫동안 던져왔던 질문이 또 한 번 던져졌고, 나는 그다음을 주목한다. 낭만적 사랑이 죽어버린 것 같은 시대에 우리는 사랑과 욕망을 어떻게 바라보아야 할까? 대답은 아직 빈칸으로 남겨둔다. 해답을 찾아가는 여정이 원래 가장 즐거운 법이니까, 그리고 이번에는 음악으로 그 대답을 찾아가게 되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