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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선불 Sep 03. 2020

밤에 들어요


해가 진 뒤에 듣기 좋은 음악이 있다. 깜깜한 밤에 불도 끄고 가만히 누워 눈을 감은 채로, 혹은 뜬 채로 어둠을 바라보며 듣기 좋은 음악이 있다. 사시사철 아무 때나 들어도 좋지만 꼭 맞는 때에 들어야 더욱 좋은 그런 음악이 있다. 이를테면 단골 카페의 좋아하는 자리에 앉아 이미 어두워진 바라보고 있을 때 가장 듣기 좋은 곡을 나는 몇 곡이나 고를 수 있다. 아무리 노력해도 잠이 오지 않을 때 벗 삼아 새벽을 맞이할 수 있는 음악도 몇 곡이나 알고 있다. 그런 때가 되면, 세상에 나와 음악만 존재하는 듯하여 어떤 걱정도 10분 전까지의 고민도 다 잊을 수 있는 시간을 맞이할 수 있다. 


매일매일이 버겁지만 또 한편으로는 힘내서 살아야지 살아야지 하던 때 나는 어떤  음악을 많이 들었다. 창문으로는 가로등 불빛도 들어오지 않고 길고양이 소리만 들리던 그런 밤에, 또 멀리서 들려오는 기차 소리를 들으며 내일을 생각하던 그런 밤에 이 음악을 들었다. 화려하지 않다고 소박하기만 한 것도 아니고 고요하다고 마음에 품은 열정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지, 하며 이 음악을 자주 들었다. 


그리고 어느 쌀쌀한 가을밤에 나는 이 곡을 다시 들었다. 어떤 음악은 낡지를 않고 그저 깊어지기만 할 뿐이라, 연주자가 늙어가는 것만큼 세월을 끌어안고 더욱 아름다워지기만 한다. 노쇠하여 힘이 빠지거나 타이밍이 어긋나는 것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 소리 하나하나에 시간이, 마음이, 그리고 그들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마음이 쌓여 시공간을 바꾼다. 매일 밤 혼자 듣던 음악은 이제 모두의 음악이 되어 잊을 수 없는 추억을 남긴다. 그러나 나는 낮에 들었다면 달랐으리라 생각한다. 이 음악은 조금 쌀쌀하더라도, 햇살이 쨍쨍한 한낮이 아니라 밤에 들었어야 어울린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 어울리는 때를 만나 기쁜 마음을 가득 안고, 한편으로는 -언제나 재즈가 그렇듯 - 단 하나뿐인 이 퍼포먼스는 온전히 재현할 수는 없으리라는 생각에 아쉬워하며 밤 기차를 타고 집에 돌아왔다. 


이 음악은 언제 들어도 좋지만, 밤에 들으면 더 좋다. 그냥 그런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Carla bley - Lawns

https://www.youtube.com/watch?v=kOKpuPEPgO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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