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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선불 Nov 04. 2020

당신의 왼손에게

아픈 가족과 함께 하는 삶, 그리고 위안이 되어  준 음악 이야기

사람의 몸 어딘가에 말썽이 생기는 건 생각보다도 흔한 일이다. 하지만 그 흔한 일 때문에 누군가의 일상이 완전히 달라져버려 다시는 회복할 수 없다는 사실을 생각하는 사람은 드물다. 그리고 그 흔한 일이 단순히 이상이 생긴 부분에 국한되는 게 아니라 몸 이곳저곳에 동시에 말썽을 일으키는 결과를 불러오는 것을 생각하는 사람 역시 드물다.


우리 집에는 환자가 있다. 사람의 뇌는 아주 복잡하고 중요한 기관이라서, 아주 작은 말썽이 생겨도 몸 전체에 영향을 미친다. 내 가족은 뇌에 문제가 생겨서 왼쪽 몸을 거의 쓰지 못하게 된 지 6년이 되었다. 흔히 사람들이 '중풍' 이라고들 부르는 병, 뇌졸중이다. 사실 그동안 가족의 건강에 대해서 걱정을 안 한 것은 아니었고, 전조가 없었다고는 못 하겠지만 나는 알아채지 못했다. 병은 서로 소홀했던 사이 어느 날 갑자기 찾아왔고, 하루아침에 우리의 일상은 망가졌다. 그 가족은 나의 엄마이다.


병원에 입원한 첫날, 엄마는 응급실을 거쳐 중환자실에 입원했다. 병원에서는 오른쪽 뇌에 작은 출혈이 생겼다고, 일단은 약물 치료만으로 괜찮을 거라고 말했다. 사람의 뇌가 고장 나면 여러 가지 많은 문제가 생기는데, 엄마의 경우 왼쪽 몸을 쓰지 못하는 것과 더불어 얼굴에서 감정표현이 완전히 사라졌었다. 그래도 나와 다른 식구들은 금방 좋아지리라, 재활을 하면 남들처럼 다시 생활할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하지만 안 좋은 일은 연달아 찾아오는 것인지, 며칠 만에 엄마는 상태가 악화되어서 두 번의 큰 수술을 하게 되었다. 수술 직전 주치의 선생님은, 환자가 살 수 있을지, 깨어난다면 의식을 찾을 수 있을지, 혹은 그 결과가 어떤 안 좋은 모양을 하고 나타날지 아무것도 모른다고 했다. 수술은 다행히도 성공했지만,  결국 엄마는 뇌의 오른쪽이 수행하는 기능 중 상당수를 잃게 되었다. 몇 년간 재활을 했음에도 아직도 엄마는 스스로 걷지 못한다. 그것이 현재의 결과이다.


방송에 나오는 사람들은 뇌졸중이니 뇌경색이니 하는 병을 앓고도 훌륭하게 자신의 삶을 되찾은 모습을 보여준다. 하지만 그건 그저 '예후가 좋아서' 방송에서 보여줄 수 있는 그림이 나오기  때문에 더더욱 드러난다고 생각한다. 아직도 많은 사람들은 병원에서 조금씩 재활을 하며, 혹은 그저 눈을 깜빡이거나 소리를 치는 정도의 의사표현만을 할 수 있는 상태로, 혹은 그조차도 하지 못한 채로 살아간다.


나와 엄마는 생존했으니 그저 성공한 경우이고, 그  사실을 받아들이는 데에는 참 오랜 시간이 걸렸다. 벌어진 일은 벌어진 일이고, 앞으로 헤쳐나가야 할 일은 헤쳐나가야만 한다고 생각을 하더라도 -  돌이킬 수 없는 변화가 일어난 엄마의 몸과 우리가 다시 찾을 수 없는 삶의 모습은 오랜 시간 천천히 우리를 괴롭혔다. 특히나 환자 자신에게 그 변화는 받아들이기가 힘든 일이었다. 하지만 어쨌든 일어난 일은 일어난 일이다. 그렇게 생각하고 우리의 남은 삶을, 변화에 적응하기를 택했다. 그게 벌써 6년쯤 된 일이다.


엄마가 아프기 시작한 이후, 영구적으로 손상을 입은 신체상태를 가진 사람들에 대해서 조금 더 관심을 갖고 그들의 고통에 공감하게 된 것 같다. 그리고 나는 얼마 전, 재즈 피아니스트 키스 자렛이 뇌졸중 때문에 피아노 연주를 하지 못하는 상태라는 기사를 보았다. 키스 자렛은 양 손뿐 아니라 온 몸을 모두 이용해 연주하는 사람이었다. 그런데 그런 그가 왼쪽 몸을 쓰지 못한다고 한다. 연주를 하려고 노력해 보았지만 잘 되지 않는다고 했다. 가슴이 철렁하고 떨어지는 것만 같았다.


바로 올해 설날까지만 해도, 나는 엄마가 입원한 요양병원에 매주 주말마다 찾아가서 간단한 운동을 도와주고 휠체어에 엄마를 앉혀놓고 같이 바람을 쐬거나 간식을 먹고 이야기를 했다. 어느 봄날에 바깥에서 햇살을 받으며 키스 자렛의 연주를 같이 들은 적이 있는데,  우리가 누릴 수 있는 몇 안 되는 즐거운 시간 중의 하나였다. 아픈 사람과 그의 가족에게 위안을 주었던 사람이 하필이면 나와 엄마에게 찾아온 그 병 때문에, 엄마처럼 왼손을 쓰지 못하게 되었다는 사실을 마주하니 여러가지로 착잡한 기분이 들었다. 아마도 나 말고도 수많은 사람들이 힘들고 외로웠던 시간을 그 덕분에 이겨냈을 터인데, 그런 사람이 맞이하게 된 운명 치고는 너무 가혹한 게 아닐까? 사람 일이라는 게 이렇게  참 말도 안 되는 구석이 있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다시 한번 아프고 힘든 사람들이 비록 고통스럽더라도 생의 의지를 놓지 말았으면, 하고 생각하게 되었다. 그리하여 나에게 위안을 주었던 어떤 음악가 역시, 살아갈 용기와 희망을 갖고 다시 멋지게 일어나게 되기를. 다시 한번 아프고 지친 사람들에게 용기를 줄 수 있기를. 또한 세상 모든 아픈 사람들이 살아갈 용기를 잃지 않고 잠에서 깨어나 내일 하루를 또 살아갈 수 있기를 조심스럽게 소망한다.


그리고 엄마의 아픈 왼손에게, 어떤 피아니스트의 아픈 왼손에게, 또 다른 아픈 이의 왼손에게 부탁한다. 용기를 내요.  세상은 영영 변해버렸지만 우리는 살아있다고, 살아있는 한 웃을 일은 앞으로도 더 많다고. 지금까지 나쁜 일만 있었다면 아마 더 좋은 일도 있을 거라고. 그러니까 우리에게 주어진 오늘과 내일을 더욱 열심히 살아보자고. 그렇게 부탁한다. 사랑을 가득 담아서.


https://www.youtube.com/watch?v=sBCpMrPeHBc

* 첨부한 곡은 keith jarrett이 연주한 I'm through with love 입니다

https://www.ecmrecords.com/shop/143038751572/the-melody-at-night-with-you-keith-jarret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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