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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식부름 지나 Mar 06. 2024

운칠기삼 | 29세, 강동훈, 토요커리사장

[퇴근 후 심야식당] 1편. 토마토 커리맛집 토요커리

안녕하세요. 식부름 지나입니다.




창업을 하고 내 돈 들여, 물건을 만들었는데, 판매된 숫자는 0.

몇백만원도 아니고, 천단위의 금액이 그냥 날라갈 거 같은 위기의 순간에 어떤 선택을 하실건가요?


오늘은 그 주인공, 논현 '토요커리' 사장님, 강동훈 님의 이야기를 들어보려 합니다. 예상치 못한 위기들을 기회로 만들어온 그를 만나, 직업인으로서의 열정과 고민뿐 아니라, 식당 운영 안에서 발견한 기회에 대해 이야기를 나눠볼 예정입니다.


 






퇴근 후 야근식당 1편을 엽니다. 


이름: 강동훈

나이: 29세(96년생)

특징: 논현맛집 토요커리 사장



 


총 사회 경력은 어떻게 되나요?

총 일한 건 10년 정도 됐어요. 고등학교 때 한 바리스타 때부터 합치면요. 다찌를 사이에 두고 손님과 이야기할 수 있는 커피숍이었거든요 때 연애, 경제, 과학, 정치 기사들을 많이 봤던 생각도 나요. 그 당시 20대 중후반, 30대 중반의 형누나들과 이런저런 얘기를 들으면서, 아침 8시부터 해 떨어질 때까지 커피만 내리고, 손님과 이야기하는 겨울 방학을 보냈어요. 



고등학교때 알바를 무슨계기로 그렇게 열심히 했나요?

돈은 그냥 벌 수 없다는 생각을 해요. 그래서 적극적이어왔어요. 집 주위 카페들을 돌면서 커피를 배우고 싶다고 제 번호를 적어놓고 다녔어요. 알바천국이나 알바몬도 없을 때였거든요.


특히 요식업은 특히, 이렇게 표현하는 게 맞을지 모르겠는 데, 바닥부터 성공하는 분들이 많이 계세요. 그래서 계속 배워야 해요. 요즘 거의 매일 매팅이 있는 거 같아요. 유통처, 제조사 대표님들을 많이 만나 뵙는데, 그런 분들께서도 보통 그렇게들 직접 말씀하시더라고요. 



그러다 보면 듣는 말도 있을 것 같은데요.

젊은 친구가 정말 열심히 한다고 자주 들어요.

근데 일주일에 3일 이상은 12시 넘어야 집에 들어가요. 그때라도 들어가면 다행인 거 같아요.



아. 그동안 경제적 성과도 있었을 것 같은데요. 그 목표에 얼마나 다다랐나요?

어릴 때 꿈은 제주도에 우리 가족들 살 수 있는 집을 짓는 거였어요. 그정도는 아니지만, 지금 사는 곳은, 논현동 원룸에서, 반포의 아파트로 옮겼어요. 이렇게 바뀐 걸로는 행복하지 않아요. 요즘의 꿈은 계속 열심히 살 수 있는 환경을 마련하는 쪽에 있어요. 그리고 브랜드가 잘 커가면 행복해요. 그게 가장 크죠.



퇴근 후 심야식당에 오세요. 지금까지 시도한 브랜드는 몇개인가요?

그동안 4개의 브랜드를 했는데, 지금은 하나예요. 하나를 하고 다음으로 넘어가는 형식이었죠.



가게 오픈에는 어려움이 없었나요?

처음엔 부모님과 같이 했어요. 아버지께서 은퇴 후 운영하시던 곳에 합류한 게 시작이었거든요. 그때 제 나이는 전역했을 무렵이었죠.


부모님 가게 합류 전에는 어떤 상황이었나요.

그때는 가게가 지금보다도 꽤 큰 곳에서 하고 있었어요. 월 임대료만 1100만 원이 나갈 정도였죠.

부모님의 단골도 많았지만, 제대로 브랜딩과 업무관리가 안되어 있었어요. 그래서 제가 아버지를 설득해서, 첫 리뉴얼을 했죠. 제가 처음 한 건, 직원들에게 사표를 받는 일이었어요. 그런데, 그러자 마자 노란 봉투 5장이 날라오더라구요.


노란 봉투라면.. 어떤 걸 의미하나요?

부당해고 신고가 들어온 거였어요. 그때 크게 깨달았죠. 이건 나 혼자 하는 게 아니라, 남들을 같이 잘 설득해서 일해야 한다는 것을요. 그뿐만 아니라, 요리도 문제였어요. 정말 제가 스스로 할 줄 알아야 하는 것들을 하나씩 맞닥뜨리면서, 현실이 뼈저리게 느꼈죠. 


운영하면서 어렵게 느낀 현실이 구체적으로 궁금해요.

사실 자영업자에게, 가장 컸던 위기 요소는 코로나였어요. 저희가 그당시엔 센트럴 키친 모델의 사업을 하고 있었을 때예요. 식당이 반포인근이었고, 그 근처 아파트들에 조식을 납품하고 있었거든요.
그런데, 코로나가 터진거죠. 다행히 그때, 식당은 
더 작은 곳으로 옮기로 결정을 했어요. 그런데, 아파트 조식 서비스가 아예 멈추더라구요. 작게 옮긴 저희는 1년간 하루 매출이 40-50만 원대로 버텼죠. 



위기 요소를 어떻게 넘겼나요? 그리고 그로 새로 알게된 경험은요?

그때 배달을 뛰기 시작했어요. 가게 마감하고 매일 배달의 민촉이랑 쿠팡이츠로 일거리를 찾았어요. 차는 100만원짜리 마티즈였죠. 그러면서 사실 얻은 것들이 많은데요. 다른 업장들 세팅을 많이 보고 배울 수 있었어요. 그걸로 나중에 저희도 벤치마킹할 아이디어들을 얻곤 했죠.


그다음에는 하던 사업을 접고, 새로운 브랜드를 만들었어요. 그게, <네가 사는 그 집, 밥>이라고 해서, <니집밥>이었어요. 





 

그건 어떤 브랜드였나요.

 니집밥이니까, 정말 사람이름을 넣어, 메뉴 이름을 만들어야 겠다는 생각이 있었어요. 그래서 가장 많이 구매하는 연령대 고객의 나이에서 가장 많이 사용하는 이름을 찾아봤죠. 그리고 배달할 때면, 메뉴 이름에 맞춘, 편지를 같이 보냈어요.


재밌네요. 타깃은 누구였나요. 

그게 저희 세 번째 시도했던 브랜드예요. 저희는 1인 가정을 타깃으로, 5가지 집밥 메인메뉴를 개발했죠.고객 반응들 중 후기에 종종 본인이름이 나왔다 하신 분들도 계셨어요. 그리고 제육볶음과 김치찌개 수요가 있더라구요. 여기에 사연을 받아 그들의 이름을 넣기도 했어요.  


반응이 좋았던 거 같은데, 계속하지 않았던 이유가 궁금해요.

사실 1인 음식으로 배달을 보내는 건 객단가가 낮아 수익성이 나오지 않았어요. 타깃을 잘 못 잡았죠. 



그 겸험들 이후 어떤 결심을 하게 되었나요?

사장이 직접 해본 노하우들이 가장 중요한 거 같아요. 특히 배달시장에서는 깃발과 같은 유료 광고를 적절히 쓸 줄 알아야 기본을 할 수 있어요. 그렇지만, 그런 것들은 일시적이에요. 그보다 본질은 고객들이 좋아할 포인트를 알아야 한다는 것에 있죠.


그래서 저희는 여러가지 메뉴를 만들어봤기 때문에, 여기서 가장 반응이 좋았던 게 뭘까 고민을 했어요. 그때 커리가 떠오르더라구요, 그 다음엔 다 하지 말고, 우리 하나에만 집중해보자고 결심했죠. 이번엔 정말 브랜드를 만들어보자고요. 

게다 저희는 배달이랑 조식서비스를 경험했잖아요. 커리의 특징상 배달 시장에 정착하기 쉬운 점도 큰 장점으로 작용했어요. 배달은 조리 시간이 생명이거든요. 맛있어도, 오래 걸리면 순위가 떨어져요.






커리도 경쟁군이 많을텐데, 그 중에서도 어떤 차별점을 고안하게 되었나요?

맞아요. 사실 커리는 대중성이 있는 만큼 재주문율도 높지만, 그 사이에서도 차별점이 필요하다고 느꼈어요. 

사실 개인적인 입맛에서요. 저는  매운 걸 잘 못 먹었어요. 어릴 때 커리가 나오면 케첩을 뿌려 먹었는데, 그때의 추억을 떠올려, 컨셉을 토마토로 잡고 시작했어요.


토마토란 맛이 차별점이 된 거군요.

거기다 저흰 고기육수가 아닌 채수를 써요. 토마토에 양파와 마늘 향신료 거기에 버터로 맛을 그려낼 수 있도록 연구를 좀 했죠. 연구 과정에서 토핑도 빠질 수 없었는데요. 사실 이게 되게 중요한 포인트였어요.

업장 입장에서는 단가 높일 수도 있고, 고객입장에서는 diy 가 가능하잖아요. 


토핑과 같은 연구들은 어떻게 발전시켜나갈 수 있었는 지 궁금해요.

저희가 반은 매장도 열고 있었기 때문에, 계속 설문을 받아 넣었어요.

그렇게 해서 2021년 11월 추위가 슬슬 올라올 때

 <토요커리>라는 이름으로 오픈을 했어요. 


매장의 위치도 정말 D급상권, 계절은 비수기인 초겨울이었죠. 그날은 배달매출로 50만 원만 나와주길 기도하며 배민에 오픈했어요. 첫 아이를 유치원 보내는 심정이었달까요.(웃음)

그런데, 준비한 재료를 완판 하며, 70만 원 치를 판거예요. 그렇게 딱 3달 후 강남구, 서초구의 랭킹 5위안에 들었고 그게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어요. 



쩌다 제품으로 진출한 거였어요?

새로운 매장을 오픈하는 대신에, 토요커리를 제품으로 만들어 판매하는 게 어떻겠냐는 제의를 받았어요.

아버지 지인 중 편의점 유통사업을 하시는 분이셨어요. 그런 협업 제의에 가능하면, 정말 하는 편이에요.

근데 첫 제품화는 정말 실패로 돌아갈 뻔했어요.


처음에 시작할땐 어떤 마음이었는데요?

그때, 제품이 전단지 같은 기능을 할 거라고 생각했어요. 그럼 전국으로 전단지를 뿌릴 수 있는 거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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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지만 편의점은 신생 제품에게 명확한 유통처가 아니었던 거죠. 저희가 생산은 만 개 했거든요. 근데 반려당한거예요.


생산한 것들에 있어 직접 유통처를 찾아야 하는 게 첫번째 위기였어요. 그냥 위탁업체에 맡겼기고, 믿고만 있었더니, 제품 유통기한으로 한 달이 남았는데, 남은 재고 수량이 9,700개라는 거예요.


그때쯤, 제가 싱가포르 마켓을 듣게 된 거죠. 


거기서 필요한 건 뭐 같아요?

사실 그때는 정말 절박해서, 이게 팔릴 지 수지타산 없이, 그냥 뛰어들었어요.

어차피 남기면 다 버리는 건데, 그냥 포기해야 겠다는 마음으로 비행기 티켓을 끊었어요.


그럴때 마음 속 되새기는 말이 있나요?

제가 자주 하는 말이 있는데요. ‘ 어떻게든 되겠지?'예요. 일을 하다보면, 예상 외의 순간들을 매번 만나요. 품이 많이 들어갈 때도 있고, 잘 안 풀린다는 부정적인 생각만 드는 날도 있어요. 그런데 그런 생각이 들어도 하는 거예요. 그럼 진짜 돼요.



그래서 무작정 떠난 싱가폴 마켓은 어땠어요?

다 팔고 왔어요. 1,200개를 들고 갔는데, 그게 3일 만에요. 커리 하나의 객단가를 6달러로 설정했는데도 불구하고, 고객들이 토마토가 60% 포함된다고 하면서 고민 없이 여러 개, 박스 단위로 구매하더라구요.



가서 배운 그러고 나서 주어진 기회들도 있었나요? 어떤 시도들을 해볼 수 있었나요?

그 후로 자신감이 좀 붙었죠. 그래서 제주 조청읍, 서울 성수동, 각종 팝업들에 다 나갔어요.

그때 배운 건, 신제품은 오프라인이 더 반응이 좋다는 거였어요. 제품력이 바탕이 되어야 겠지만요.

보통, 온라인에서는 인지도가 없다면 잘 팔리기 어려워요. 그런데, 오프라인에서는 호기심이 보다 크게 작용해요. 그래서 인지도가 없더라도 괜찮아 보이면, 구매를 하세요. 


반면, 오프라인은 많이 구매하진 않는 단점도 있죠. 그렇기에, 드셔보신 이후에도 구매할 수 있도록, 온라인 몰도 키워놔야해요. 그렇게 온오프라인 시너지로, 팝업을 돈 이후 저희 온라인 판매량도 70%가 늘었어요. 그렇게 시작해서 지금은 전국 휴게소에도 들어갈 미팅도 하고 있었어요.


여기까지 온 바탕으로, 배운 점을 한마디로 응축한다면요.

미래일은 믿으면 되는 거 같아요. 요즈음 한국 브랜드들을 소싱하는 행사들이 많아요. 싱가포르에 공차 김여진 대표님이 Market Blue라는 K-culture 몰을 운영하는데, 저는 Market Blue와 구월마켓이 콜라보로 운영한 마켓에 부스로 입점을 했었고요. 

싱가폴에서 봰 김여진 대표님은 어떤 분이셨어요?

성공하면 더 재밌게 일을 할 수가 있다? (웃음)

그건 제 생각이구요. 김여진님을 봬면, 마켓의 마케터를 채용할 때 직장인이 아닌 가정주부를 채용하시는데, 다들 일을 잘해요 그분께선 사람 보는 눈이 뛰어난 분이어서, 적합한 인재를 잘 배치하는 능력이 뛰어나신거 같구요.

또, 저렇게 해야 돈을 버는구나 싶을 정도로 집요해야 하세요. 김여진 대표님께서도 온라인 주문이 들어오면, 직접 박스를 싸고 배달하러 다니셨어요. 그런 모습들을 보고, 더 열심히 살아야겠다, 다짐을 했었죠.


, 제가 직접 오토바이를 타고 배달을 하고, 다른 매장에 배달기사로 가서 주방과 매장운영의 시스템을 배워오던 시절들이 스쳐 지나가요. 그런 시간들이 다 필수적인 거라고 생각해요.



  

 

주변 보면, 주로 어떤 고민들을 하나요?

고민이 다양해요. 외식자영업은, 요즘 매출고민뿐 아니라, 메뉴 고민, 이벤트도 고민해야 하죠. 근데 다 머릿속에 있는데, 보통 안 하고 넘기는 경우가 많아요.


고민들을 어떻게 풀까요?

그냥 '이러면 좋겠는데...' 생각하는 것들을 하나씩 해야 하는 거 같아요. 


생각하는 걸 하나씩 한다라.

모든 일은 운칠기삼이라 생각해요.   그래서 가게 안에 앉아서 하루종일 손님만을 기다리고, 가게를 지키기보다, 전단지를 하나 더 돌려야 하고요. 첫 매장에서 단체 모임을 유치하려고 인근 초등학교 학부모 모임에 전단지며 문자를 돌렸었어요.


그리고 외부로도 많이 뛰어야 해요. 매장 바깥에는 md 도 있고, 공장, 인플루언서 공구하는 유통사분들도 있어요. 그때 내가 30%를 보여주면,  70%를 채워줄 좋은 사람들과 기회를 얻게 되는 것 같아요.


 

동훈님, 인생의 조언 같은 걸 부탁해 본 적이 있나요?

음 할까 말까 고민할 때엔 남의 조언을 듣는 건 아닌 거 같아요. 

내가 해야 할 거 같으면 일단 해보고 그 후에 개선할 수 있는 걸 사람들에게 물어보는 거죠. 

그래서 큰 줄기에서는 직감이 중요한 거 같아요, 앞으로 시장에 어떤 게 필요할 텐데, 할까 말까 할 때에는 제 직감을 믿고, 밀어야 해요. 한 예를 들어, 매운맛을 만들겠다. 까지는 제가 결정하는 거 같아요. 매운맛의 잔가지로, ‘캅사이신과 고춧가루 중 어떤 걸 써야 할지?’ 같이 개선을 하는 방향에서는 의견을 들어봐야죠.



그런 좋은 사람들은 어떻게 만나요?

내가 열심히 하다 보면, 주위에서 알거든요. ‘반성’하고, ‘적용’시키고, ‘발전’시키다 보면 주위의 사람들이 인정해 주고 도와주려 모여요. 


어떤 꿈이나 목표보다, 정말 열심히 하려고 해요. 길을 몰랐던 때에도, 그런 자세라면, 옆에서 가능성을 봐주는 거 같아요. 그걸로 뛰어야 할 트랙이 보이고요. 앞으로도 제가 3의 자세가 있다면 7의 운이 작용해서 더 큰 도약을 할 거라 믿어요. 운칠기삼이죠. 인생은.




 



 그의 꿈과 목표가 계속해서 성장하고 발전해 나가길 바라며, 이번 이야기가 여러분에게도 새로운 가능성을 탐색하는 데 작은 불씨가 되기를 희망합니다. '퇴근 후 심야식당'은 앞으로도 더 많은 직업인들의 생생한 경험을 통해, 우리 모두가 공감하고 배울 수 있는 이야기들을 전달해 나가겠습니다.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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