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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숙영낭자 Feb 11. 2017

천 번을 흔들려야 엄마가 된다

둘째 출산을 앞두고 

"아이고~ 예정일이 언제예요?"

"아직도 애기 안 나왔어?"

"병원에서 유도분만하라고 하지 않아?"

"어쩌려고 그러니. 애가 뱃속에서 너무 커지면 힘든데."


남산만 한 배를 내밀고 오리처럼 뒤뚱거리며 걸어 다니는 내가 안쓰러워 보였는지

만나는 사람들마다 저마다 놀라움 반, 걱정 반으로 바라보며 꼭 한 마디씩 한다. 

예정일이 지나면서부터는 더 심해졌다. 

예정일 겨우(?) 5일 지났을 뿐인데 하루에도 몇 번씩 지인들의 안부 전화, 카톡이 날아든다. 

그럴 때마다 나는 일부러 여유만만 억양의 상징인 충청도식으로 대답했다. 

"걱정 말아유. 때 되면 알아서 나오겄쥬~."

하지만 그렇게 대꾸하는 것도 한두 번이지

나중엔 '언제 아기가 나올 것 같냐'는 친정엄마의 전화에도 짜증이 나기 시작했다. 

"내가 애 낳을 것 같으면 벌써 연락했지. 기다려, 쫌!"

정작 엄마인 나는 태평한데 다들 하나같이 빨리 애가 안 나온다고 성화다. 


어렸을 때부터 땅 꺼질까 걱정, 하늘 무너질까 걱정해서 별명이 '걱정순이'였던 나. 

남들은 이랬다더라, 저랬다더라~ 온갖 '카더라' 통신에 안테나를 세우며

조바심 내는 '팔랑귀'였던 나. 

예전의 나였다면 주위의 이런 말에 홀라당 넘어가서 온갖 걱정에 잠도 못 자고 

이리저리 갈대처럼 흔들렸을 거다. 

하지만 이젠 아니다. 적어도 출산 문제에 대해선 주위에서 암만 뭐라 그래도 

절대 흔들리지 않을 자신이 있다. 


첫째를 가졌을 때 나는 수중분만을 꼭 하고 싶었다. 

하지만 내가 다녔던 산부인과는 감염 위험이 높다는 이유로 수중분만을 반대했고 

아무것도 몰랐던 나는 의사 말이 절대 진리려니~하고 따랐다. 

한창 진통할 때 재래식 화장실에서 변을 볼 때처럼 쭈그리고 앉아 낳고 싶은 본능이 치밀었지만 

남들처럼 분만대 침대 위에서 누워서 낳느라 진을 뺐고,

의사가 미리 짼 회음부 상처가 잘 아물지 않아 한 석 달을 고생했다. 


첫 애는 그렇게 그냥 남들이 하는 대로 낳았지만 둘째는 다르게 낳고 싶었다. 

남편의 소개로 알게 된 것이 바로 '자연주의 출산'이다. 

산모의 의견을 최대한 존중해 산모가  원하는 방식대로 아이를 낳을 수 있고

일반 산부인과에선 절대 알려주지 않는 산전 교육도 받을 수 있고 

무엇보다 남편이 '출산 동반자'로서 함께 참여할 수 있다는 ( 반드시 그렇게 해야 한다는) 점이 

가장 마음에 들었다. 

내가 다니는 곳은 '메디플라워'라고 우리나라에서 자연주의 출산을 처음으로 시도한 

정환욱 원장님이 운영하는 곳이다. 


지난 2011년 11월 11일, 1이 여러 번 겹치는 날이라고 11시 11분에 맞춰서 

유도분만을 해달라고 요청하는 산모들이 있었더랬다. 

그때 정 원장님은 '아이는 빼빼로가 아닙니다' 라며 인위적인 출산은 산모에게도

아이에게도 해롭다는 칼럼을 쓰셨는데 나는 그런 원장님의 확고한 철학과 

신념이 좋았다. 

원장님은 내 남편이 심한 무좀을 갖고 있어도 수중 분만에 아무 문제가 없다고 하셨고

35세가 넘으면 노산이라고들 하지만 산모가 충분히 할 수 있다고 믿으면

얼마든지 건강한 아이를 낳을 수 있다고 격려해 주셨다. 

첫째 낳았던 산부인과에선 절대 들을 수 없었던 말에 신기하면서 감동스럽기까지 했다. 



자연주의 출산을 접하면서 나는 비로소 내가 원하는 출산의 청사진을 그려보게 되었다. 

수중 출산을 할 수 있을지 없을지 모르겠지만 남편의 격려를 받으며 함께 진통을 견디고, 

큰 애도 옆에서 자연스럽게 엄마가 어떻게 자기를 낳았는지 동생의 출산을 통해 알게 하고 

마침내 아기를 품에 안는 순간, 온 가족이 만세를 부르는 모습... 

그런 상상을 하면 출산의 두려움보다 기대가 먼저 앞선다. 


'예정일은 예정일일 뿐. 아이는 때가 되면 나오게 되어 있고, 그때가 가장 자연스러운 출산의 때'라는 

교육을 받아서인지 주위에서 예정일 지났다고 걱정하는 목소리에 대해서도 당당하고 여유 있게 

대처할 수 있는 배짱이 생겼다. 

만약 내가 그런 교육을 받지 않았더라면 난 여전히 흔들흔들~ 주위의 '카더라' 통신에 넘어가서 

유도분만을 하면서 온갖 고생을 다했을지 모른다. 

(내 주위에는 의사의 권유에 따라 유도 분만하다가 너무 고생해서 출산 트라우마가 생긴 

엄마들이 많다) 


둘째 출산을 준비하면서 나는 거의 인생 처음으로 

남의 목소리보다 나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게 되었다. 

나란 인간은 나약하기 그지없는 인간이라

남들이 나를 어떻게 바라볼지 의식하고, 남들의 말에 휘둘리며 전전긍긍 살아왔더랬다. 

특히 육아를 하면서 얼마나 수도 없이 방황하고 흔들렸는지... 

지금까지도 그래 왔지만 앞으로도 그럴 게 분명하다. 

다만 그 수많은 흔들림 속에서 둘째 출산만큼은 확고한 나의 신념과 의지대로 밀고 나갈 뿐이고,

그럴 수 있다는 것에 감사할 따름이다. 

이런 경험이 계속 쌓이다 보면 어느 순간 육아에서도 

쉽사리 주위의 말에 흔들리지 않는 나만의 철학과 신념이 생기지 않을까?




드디어 오늘 새벽... 

기다렸던 진통이 온다. 기쁘다.

짐짓 남들의 걱정에도 '걱정 말아유~'하고 여유 있게 대처했었는데 

속으론 나도 '왜 이렇게 안 나오나, 이제 좀 나와라' 조바심을 냈나 보다. 

역시 나란 인간은...  -_-;;

'천 번을 흔들려야 어른이 된다'던 책의 제목처럼 

역시 천 번을 흔들려야 진정한 엄마가 될 수 있나 보다. 

(순산하고 와서 정신 좀 차리면 자연주의 출산 후기를 올리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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