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숙영낭자 Aug 21. 2019

돈 벌면 집안일 안 해도 된다고요?

이 세상 모든 비겁한 남편들에게

내가 애정 하는 프로그램 중 하나인 '삼시 세 끼'를 보면서 늘 드는 생각.

밥 차려먹고 치우는데 하루가 다 가네.


정말 그렇다.

출연자들이 하루 종일 하는 일이라곤 고작 아침, 점심, 저녁 뭐해먹을까 고민하고  땟거리 찾고 요리하고 먹고 치우고 그게 전부다.

그런데도 이서진은 하루가 어떻게 가는지 모르게 슝~간다고, 밥 해 먹는 게 뭐가 이리 지치고 힘드냐고 푸념한다.

주부들이라면 그의 말에 백퍼 공감할 것이다.


하루 종일 남편과 아이들 밥 해먹이고 치우고 설거지하는 것을 매일 반복하다 티브이에서 시즌 때마다 등장하는 삼시 세 끼를 보면 오만가지 생각이 다 든다.

저기 나오는 연예인들은 정해진 기간 동안만 저 짓을 할 뿐이지만 나는 어쩌면 죽을 때까지 해야 된다. 저들은 삼시세끼 해 먹으며 쏠쏠한 출연료를 받지만 나는 땡전 한 푼 대가로 받는 돈이 없다.(혹자는 반문할지 모른다. 남편이 벌어다 주는 돈이 있지 않냐고. 그건 엄밀히 말해 아내의 노동력에 대한 대가일 순 없다. 가사노동을 금액으로 환산하는 건 접어두고라도 남편이 갖다 주는 돈은 온 식구 생활비하고 집 담보대출금 갚는데 다 나가도 부족하니... 어쨌든.)


매일 남편들이 직장 생활하며  오늘 점심 뭐(사) 먹을까? 생각하는 게 즐거운 고민이라면, 매일 아내들은 오늘 저녁은 뭐(해) 먹일까? 정말로 '고민'한다. (각자의 사정에 따라 아침, 점심, 저녁이 될 수도 있겠으나 일반적으로 주부들이 많이 하는 삼시세끼 고민 중 저녁이 많으므로 저녁이라고 예시를 든다)


많고 많은 집안일 중에 밥 해 먹는 것은 기본 중의 기본이고 이 정도 일 가지고 뭔 호들갑을 떨려고 그러냐고 아니꼬운 시선 보내는 남편들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삼시 세 끼를 한 번이라도 온전히 도맡아 차려본 사람들은 알 것이다. 밥 한 끼 차려내기까지 필요한 일련의 과정들(식재료 장보고, 다듬고, 조리하고, 상차림 하고 치우고 설거지하고...)에 수반되는 품이 결코 만만치 않은 것임을.

나는 반찬가게 가서 제일 먼저 담는 게 나물이다. 시금치나물 하나 무치려 해도 다듬고, 데치고, 짜고, 양념에 조물조물하는 그 품을 들이느니 한팩에 3~4천 원 하는 걸 사 먹는 게 훨씬  싸고 경제적이라고 생각하는 거다.


청소, 빨래, 설거지로 대변되는 집안일 삼총사에 드는 시간과 에너지에 대한 썰은 어쩌면 이 앞에서는 아무것도 아닐지 모른다.

그것은 바로 육. 아!


아이, 특히 어린아이를 돌보는데 드는 절대적인 시간과 그 측정할 수 없는 에너지를 설명하자면... 아니, 이건 설명할 필요도 없다. 직접 해보면 안다.

아이를 가진 순간부터 여자는 어쩔 수 없이 생물학적으로 많은 것을 희생할 수밖에 없다.

자궁을 가졌다는 이유만으로 아이를 돌보는 건 여자의 몫이 될 수밖에 없고 그렇게 되는 게 사실 자연스럽다. 아기 낳고 모유수유를 남자가 해줄 순 없으니까.

가사는 부부가 평등하게 분담이 가능할지 모르나 육아는 그게 어렵다. 가사는 남편이 아내와 '함께 하는 것'이지만 육아는 남편이 아내를 '돕는 것'이 될 수밖에 없다.


상황이 이러한데도 워킹맘이건 전업맘이건, 대한민국에서 주부이자 엄마로 산다는 건 여전히 남편들보다 더 많은 가사와 육아를 떠맡는 '기울어진 운동장'에 서 있는 삶이라는 걸 내 주변의 많은 사례들을 보며 통감한다.

가장 큰 이유는 '수입'의 차이다.

남편과 똑같이 자기 일을 가진 워킹맘이어도 남편이 자기보다 더 많이 벌거나 아니면 전업주부라서 전적으로 남편의 벌이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위치라면 아내들이 자발적으로 (혹은 암묵적으로) 가사와 육아를 더 부담하려 든다.

이 경우 부부가 그렇게 육아와 가사분담을 합의했다면 크게 문제 될 게 없다.

하지만 남편들이  밖에서 돈을 (더) 벌어온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집에 오면 손가락 하나 까딱하지 않으려 들 때, 문제는 심각해진다.

내가 가장이잖아.

난 밖에서 일하는데  넌 집에서 놀잖아.

내가 돈 너보다 많이 벌어오잖아.

내가 밖에서 얼마나 힘들게 일했는데 집에서까지 일해야 돼?

이런 이유로 가사와 육아를 등한시하고 그 모든 부담을 아내에게 지우려 한다.

정말 비겁한 남편들이다.


밖에 나가 돈 버는 거, 매우 중요하다. 남편들도 힘들게 일하는 거 안다. 그걸 폄훼하는 것이 결코 아니다.

내가 얘기하고 싶은 것은 전적으로 '마인드(개념)'의 문제다.

가장은 비단 돈만 벌어온다고 가장이 될 순 없으며, 전업주부라고 해서 집에서 노는 것이 결코 아니며!(어떤 전업주부들은 본인들조차도 이렇게 표현한다. 난 집에서 논다고. 자기의 가사노동과 육아의 가치를 스스로 저평가하는 걸 볼 때마다 화가 치민다), 맞벌이일 경우, 상대보다 돈을 더 번다는 것이 부부간의 관계에서 우위를 점하는 절대적인  논리가 될 수 없다. 그리고 밖에서 일하나 집에서 일하나 힘든 건 매한가지다. 누가 더 힘들고 덜 힘드니 따지는 건 무의미하다.

굳이 부연설명을 하자면 하루 종일 애한테 시달리고 해도 해도 티 안 나는 집안일에 스트레스받느니 차라리 밖에 나가 돈 버는 일 하는 게 낫다고 생각하는 엄마들 천지삐까리다.

게다가 요샌 능력 있는 아내들이 얼마나 많나? 마음만 먹으면 남편들보다 더 돈 잘 벌고 능력 발휘할 수 있는 그들이다. 지금은 엄마를 절대적으로 필요로 하는 어린 자식들 때문에 일하고 돈 벌고 싶어도 못하는 처지에 놓인 것임을 남편들은 알아야 한다.

그러니 지금 잠시 아내보다 돈을 더 많이 번답시고 집안일을 하니 마니 하는 말도 안 되는 변명 따위 집어치우라.

대한민국에서 여자들이 남자들보다 수입이 적은 건 동일노동 동일임금이 지켜지지 않는 사회 구조적인 문제도 크니까 말이다.


결혼하지 않고 혼자 살아도 집안일은 해야 한다. 매일 배달 음식 시켜먹고  빨래 안 하고 매일 새 옷을 사입을 게 아니라면, 가사도우미 써서 어질러진 집안을 대신 맡길 게 아니라면 남자 혼자여도 집안일을 해야 한다. 그런데 왜 결혼해서 애까지 낳고 남편이란 존재가. 되면 하나같이 집안일을 아내의 몫으로만 돌려대는 건지? 아내가 아니라 가사도우미랑 결혼한 것도 아닌데 말이다.


덧, 이렇게까지 얘기해도 징허게 집안일 안 하고 육아에 무관심한 남편들이라면 괜히 엄한 아내 고생시키지 말고 따로 나가 혼자 살 것을 권한다. 그 잘난 돈 버는 능력 탓이므로 대신 생활비는 넉넉하게 보내주고.






매거진의 이전글 영국 워킹맘의 이야기를 읽고 위로를 얻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