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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숙영낭자 Aug 04. 2020

청소에서 발견한 몰입의 즐거움

며칠째 비가 그치질 않는 지독한 장마에 아이들의 방학까지 겹쳤다. 

어디 가지도 못하고 집 안에만 있어야 하는 상황에서 집이 너저분하니 도저히 참을 수가 없어

마음먹고 청소를 시작했다. 

(청소를 매일 하는 게 당연한 분들은 '마음먹고' 해야 하는 나를 이해하지 못할 테지만 암튼...)


가장 지저분한 욕실을 박박 닦아내고, 온갖 재활용 쓰레기로 꽉 찬 좁은 세탁실을 정리하고

설거지거리로 쌓인 싱크대를 치우고, 상한 음식물 쓰레기로 공간만 차지하고 있는 냉장고를 비워내고

안 신는 신발과 잡동사니로 입구부터 답답했던 현관을 치우고, 

서류더미에 깔린 책상을 정리하고, 또 안 입는 옷들로 가득한 옷장을 비워내고, 

아이들이 더 이상 갖고 놀지 않는 장난감과 교구들도 한바탕 버리고.... 

버리기, 정리, 쓸기, 닦기 또다시 버리기, 정리.... 이 과정을 3일 내내 하루도 빼지 않고 했다. 

(무슨 집 청소를 3일이나 하냐고 묻는다면... 그동안 너무 청소를 안 했던 결과일 뿐, 다른 이유는 없다)


큰 아들 녀석은 내가 청소를 하겠다고 선언하자 대뜸 

"에엥? 그 힘든 청소를 왜 하려고 해?"

맞다. 힘들었다. 쓰레기를 버리는 데만 몇 번을 들락날락했는지, 걸레는 몇 번을 빨았는지, 청소기의 먼지함은

몇 번을 비워냈는지 모른다. 밤에는 팔다리가 쑤시고 아플 정도였다. 

3일이 지나자 아들 녀석이 말했다. 

"엄마, 청소 언제까지 할 거야? 안 힘들어?"

"네 말대로 엄마가 몸은 힘든데, 이상하게 기분이 참 좋다?"

9살짜리 녀석은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으로 날 바라보았다. 


청소를 해서 왜 기분이 그렇게 좋았을까?

일단 내가 머무는 공간이 깨끗해져서 마음이 안정되고 좋은 것도 있지만

무엇보다 이걸 깨달은 게 가장 큰 수확이었다. 


오랜만에 완전하게 몰입할 수 있었다!


사실 지난달부터 나는 내 뜻대로 풀리지 않는 인간관계와 

별 거 아닌 일이 엉킨 실타래처럼 복잡하게 꼬이는 바람에 엄청난 스트레스를 받고 있었다. 

좀처럼 일이 손에 잡히질 않았고 밤엔 불면증에 시달렸다. 

이러면 안 되지 하면서 마음먹고 딱 1시간만 집중해보자고 해도

무시로 날아드는 휴대폰 카톡이나 SNS 알람음을 확인하느라 정작 중요한 일은 시작도 못하고

시간만 흘려보내기 일쑤였다. 

비가 억수로 내리는 창밖을 보다가 문득 이럴 바에는 청소나 해야겠다,라고 결심하고

8월 1일부터 3일까지 내내 청소를 했던 것이다. 


그런데 희한한 게 청소를 하는 동안에는 오직 청소에만 집중할 수 있었다. 

욕실 바닥에 깔아 둔 매트를 걷어올리며 그 아래에 진득하게 쌓인 먼지와 물때에 경악하며

솔로 박박 문질러댈 때, 

냉장고에 자리만 차지하며 썩어가던 반찬과 채소들을 음식물 쓰레기봉투에 담아 버리고

빈 반찬통들을 한가득 설거지할 때, 

아이들이 갖고 놀지 않는 장난감과 아닌 장난감을 바구니에 열심히 분류할 때, 

세탁실에 가득 쌓인 재활용 쓰레기를 분리수거할 때.... 

그때만큼은 다른 생각 따위는 하나도 나지 않고, 오직 눈앞에 보이는 더러움을 빨리 없애버려야겠다는

일념만이 내 머릿속을 가득 채웠다. 

몇 시간 동안이나 휴대폰도 확인하지 않고... (평소의 나 같았으면 수시로 카톡이나 SNS를 확인했을 텐데)

버리고, 정리하고 쓸고 닦는 단순한 육체적 행위만을 반복했다. 

그러다 보면 아이들이 배고프다고 밥 차려달라고 할 때에야 시계를 보고서는

어머, 벌써 시간이 이렇게 됐네? 하기 일쑤였는데 이제 와서 보니 그게 순수하게 청소에 몰입했기 때문이었다. 


무엇인가에 푹 빠져서 시간 가는 줄도 모르고 하게 되는

'몰입의 즐거움'을 나는 청소를 통해 아주 오랜만에 느낄 수 있었다. 

몰입하는 동안만큼은 나를 스트레스받게 했던 일에 대한 고민도 잠시 잊을 수가 있었고,

몰입하는 동안만큼은 내가 무언가에 집중할 수 있는 사람이었음을 다시금 깨달을 수가 있었다. 

그게 내가 청소하면서 기분이 좋았던 가장 큰 이유였다. 


깨끗하게 정리된 냉장고! 보기만 해도 기분이 상쾌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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