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버릇, 손버릇, 잠버릇...
15세기 문헌에도 나오는 단어, 무엇으로부터 온 말인지 궁금합니다. 가슴이 벌렁벌렁, 코가 벌름벌름, 손이 바들바들, 몸이 바르르르.... 혹시 이런 말들에서 온 게 아닐까 생각해 보니 공통점이 한번에 끝나지 않는 몸짓입니다. 어떤 상황에서 만들어지기도 하고요.
좋거나 나쁜 버릇이 누구에게나 있습니다.
"그 버릇은 고쳐라."
이렇게 주로 고치라는 잔소리가 따라붙는 걸 보면 남의 눈에 좋아 보이지 않는 것에 버릇을 붙이는 것 같습니다.
한 사람이 자체로 충분한데 검불처럼 잘못 붙은 사족 같은 것이요.
어떤 버릇은 생각에도 붙습니다.
오래 한 생각이 머릿속에 깔린 철로를 휘어지게 만들기도 하고요.
때로는 한숨이니 탄식처럼 밖으로 나오기도 하지만 보통은 다른 버릇과 마친가지로 무의식적으로 행동으로 나오게 됩니다.
그래서 어른들은 한숨을 쉬거나 얼굴이 어두우면 복 달아난다고, 팔자 꼬인다고 잔소리한 것 같기도요..
하지만 10대 후반부터 20대를 지나는 길에 낭창낭창한 버들가지 같은 젊음이 휘어지지 않고 어찌 배기겠습니까?
배운 건 설익어 생활에선 다 어색하지,
가난해서 일 좀 할라치면 재주 없다고 구박하지,
친구들도 다 힘드니 만나봐야 시원한 사이다는 없고,
가진 건 없는데 다 있다는 듯 대하고
어른들은 가르쳐주지도 않으면서 너도 어른이니 당연히 알아야 한다고 하고,
실수는 줄지 않고,
난 취업에 100번 떨어졌는데 어떤 동갑내기는 영 앤 리치라 그러고,
난 뭘 해야 할지도 모르겠는데 어떤 친구들은 확신이 있는 것처럼 결혼이든 취업이든 창업이든 잘도 길을 찾고...
아, 그 시간으로 돌아가보니 구구절절 한탄이 끝나질 않네요.
사실, 지나간 시간처럼 말하지만 작가란 직업을 안고 사는 제겐 현재의 고민이기도 하죠.
달라진 것이 있다면,
저 많은 고민들은 실상 내 욕심이라는 걸 확실히 알고 있다는 정도일 뿐이죠.
솔직히 모릅니다.
저 시간을 어떻게 넘어왔는지...
제게는 미로 같은, 늪 같은 공간이었어요.
선택하는 방향마다 꽝이 나오고
이만큼 떨어졌으면 바닥이겠거니 하고 일어서면 곧 있다가 또 추락하고...
어떤 문도 제 앞엔 열려 있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미로 밖의 희망은 정말 쓰러지기 직전에나 가질 수 있었던 것 같은데, 그걸로도 숨은 쉬어졌으니...
청춘은 그렇게 가엽고 간절했습니다.
인생이 어떻게 흘러가는지 잘 알진 못해도
대부분의 미로는 30까지면 대략 다 헤맬 정도의 규모라고 생각해요.
미로를 나간 건지 거기에 익숙해진 건지는 모르지만,
결국 사는 것만 중요하다는 걸 알게 되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남과 비교하지 않아도 될 만큼 시간도 충분하고(어차피 너절함의 총량은 같더라고요), 스스로 다그치지만 않으면 울고 가슴앓이 할 필요도 적다고요.
자기 계발서는 한 권이면 족해요.
어차피 다 같은 내용에다 나이 든 사람은 특히 성공했다는 사람들은 상투적인 것 말고는 인생 돌파 기술이 뭐였는지 기억하지 못하거든요.
그걸 복기하기엔 여전히 잘 나가는 운이어서 의도치 않게 자기 계발서에 남의 말로 채울 수밖에 없어요.
그런 것 같아요.
성공은 운이고, 하지만 결코 좋다고만은 할 수 없다고요.
물질은 참 찬란하지만 말이죠.
살아만 있으면 된다... 이런 생각이 드네요.
살기 싫던 수많은 시간들을 버틸 수 있었던 건 사람으로 남고 싶어서였어요.
그렇게 30이 되었을 때 미로가 편해졌고요.
버릇도 생겼지만,
생각해 보니 '사람'은 원래 DIY였어요.
완제품도 아닌데 세상 유일하니 모범답안 같은 게 있을 리가요.
그러니 삶을 살며 얻는 모든 것이 나 자신인 것 같아요.
심장처럼, 뇌처럼 쉬지 않고 움직이다가 만든 버릇도 마찬가지, 시간의 기미 같은 게 아닐까 생각할 때가 있습니다.
예쁘지는 않지만 큰 문제없지요.
아무리 꼴 시나워 져도,
쪽팔리게 나 혼자 꼴찌인 것 같아도,
남들이 말하는 인생 진도 하나도 클리어하지 못해도,
괜찮습디다.^^
결국
너도 쟤도 얘도 그리고 나도 사람으로 정리되더라고요.
그러니 언제가 될지 모르지만 편해질 때까지 죽지 말고 살아보세요.
불운의 꼴을 똑똑히 노려보는 기백으로
"아, 참 창의적인 인생길이로구나!" 감탄도 해주면서...
죽고 싶을 때, 제일 겁이 났던 건 다시 이 꼴로 태어날지도 모른다는 거였네요.
다시 이 미로로, 이 깜냥으로...
!!!
그렇게 지독한 낭패라뇨.. 그래서 저는 어딘가 불량 같은 인생의 부품으로 어찌어찌 살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그 아프고 막막했던 미로가 있었단 걸 알아요.
각자의 미로 속에서 사는 모두가 살아가기를 기도해요.
숨 붙이고 살아있으면 돼요.
나 보다 잘났다는 풍문에 더 꺾이지도 말고요.
미로는 절대 위에서 내려다볼 수 없으니...
오늘 하루도 사람으로 살아줘서 고맙습니다, 모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