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자들의 '접근 허용', open access 의식은 과학 발전의 근간이라는 것을 실감했달까요?
창작자들은 자신의 창작물에 대한 권한을 중시하는데, 어째서 과학자들은 모든 것을 오픈할 수 있었는지 궁금했습니다.
창작자와 과학자의 가장 큰 차이는 '창작자'가 없는 것을 '생산'해낸다는 의식을 가진 반면,
과학자들은 '비밀'을 파헤친다는 의식을 가졌다는 것입니다.
자연의 비밀, 우주의 비밀........
이런 것들을 찾는 과학자들을 탐정이라 생각한다면 추리와 수사를 위해 각자의 정보를 공개하여 최대한 빨리 진위를 가리고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 중요하겠죠.
현재 과학의 뿌리를 근대 유럽이라 한정짓는다고 할 때,
'과학'이라는 분야가 귀족이나 유산계급 천재들의 일종의 취미생활이었다는 것도 무시할 수 없을 겁니다.
즉, 먹고사니즘에 매이지 않은 천재들이 고급 취미와 순수한 호기심으로 '즐거운 경쟁'을 하는 무대가 바로 과학이었죠.
<경제학은 어떻게 과학을 움직이는가>의 저자 폴라 스테판은 과학자들의 보상 중에 '인정욕구'가 있다고 했는데, 유럽 과학자의 선조들이 원한 첫 번째 리워드가 바로 '인정욕구'라 할 수 있습니다.
딱정벌레에 대한 다윈의 열정이 지금은 우스꽝스럽지만, 당시를 생각하면 그의 승부욕으로 이해할 수 있는 것처럼요.
르모니에, ‘조프랭 부인의 살롱’.
하지만 귀족이 사라지고, 부르주아의 취미가 돈벌이가 된 현재,
직업 과학자들은 더 이상 먹고사니즘에서 자유로울 수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논문 대부분은 무제한적으로 '접근허용'되죠.
그로부터 과학은 여전히 폭발적으로 발전하고 있고요.
하지만 '전부'가 아니라 '대부분'입니다.
과학자들의 기본 자세는 변함없이 열려있지만, 그들은 마음대로 오픈할 수 없습니다.
직업 과학자들에게는 금수저 대신 '고객'이 있기 때문이죠.
처음 유럽 유산 계급이 취미로 삼았을 때부터 과학은 사회를 엄청나게 변화시켰습니다.
어떤 기술은 국가의 운명을 좌우하기도 했죠.
그래서 꽤 많은 고객이 과학자들에게 던을 댑니다. 덕분에과학자들은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도 비교적 먹고사니즘에서 벗어나 있죠.
불쌍한 대학원생들의 처지와 PBS를 비롯한 수많은 괴로움들을 무시하는 것은 아닙니다만,
창작을 업으로 삼는 이들 절대다수가 '불우한 이웃'이라는 것을 생각하면 과학자들은 축복이죠.
국가, 산업계, 독지가 등등이 과학 연구에 돈을 댑니다.
과학자들 중에는 아무도 연구비를 대주지 않는 연구에 관심있는 사람도 있겠지만, 창작을 포기해야 하는 창작자들의 처지에 비하면 어떻게든 꾸려나갈 수준은 됩니다.
예술이란 것은 국가 경영이나 산업 발전에 하등 도움이 되지 않기에 그것에 돈을 대주는 경우는 거의 없습니다.
영화나 드라마 등에 지원하는 자본들이 있는 것처럼 보이지민 그건 투기에 가깝지 지원이라 할 수 없습니다. 더구나 한 사람의 과학자 밑에서 어쨌든 먹고사는 이들이 팀 단위라는 점을 안다면 비교 대상이 아니죠.
디행히 대부분의 '돈줄'들은 과학의 기본 자세인 오픈 액세스를 허용합니다.
하지만 깅력한 예외가 있습니다. 국방이나 의학 등, 국가안보나 돈과 관련된 어떤 연구들은 절대로 공개하지 못하도록 하죠.
그 분야 역시 모든 패를 깐 다음에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발전에 도움이 되겠지만, 돈줄들의 목표는 발전이나 명예가 아니죠. 또한 '돈'은 흔한 곳에 고이지 않으니까요.
그러니 근대 국가의 탄생, 특히 2차 세계대전 이후 과학계의 미덕은 훼손되기 시작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인문학에 바탕을 둔 사람으로서 나쁘게만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과학기술의 독점으로 인해 어떤 기술들은 발전 속도가 확연히 늦어졌을 테니까요.
허베이스프리트호 사건 당시 오염된 태안의 바다
그렇다면 현재 인간에게 서비스하고 있는 과학기술인 AI는 어떨까요?
기술적인 부분에서는 의견이 분분하지만, 저는 저작권에 대해서만 생각해보려 합니다.
AI를 만들기 위해서는 수학과 물리 모형과 정보이론이 필요하겠고 이를 공개한 회사도 있지만,
저는 이것을 만든 기술이 아니라, 이들이 인간에게 '서비스'하는 '콘텐츠'에 의문을 갖고 있으며,
이에 대하여 철학자, 창작자, 법학자들이 최대한 빨리 문제 제기를 해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파업하는 사람들, 출처: SAG-AFTRA, 미디어 오늘
23년 말의 헐리우드 작가조합 파업은 OTT 등 새로운 산업계의 질서에서 배제되고 있는 창작자들의 권리를 찾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이중 언론에서는 OTT 플랫폼에 콘텐츠를 제공하는 제작사들의 AI기술을 이용하는 점에 제기한 문제점에 대해 초점을 맞췄죠. 그리고 복제에 대한 공정한 보상 등에 대하여 합의를 한 것으로 일단락 된 것으로 보입니다. 실제 협상과 결과를 이끌어내야 하는 '작가조합'으로서는 최선의 결과일지 모릅니다. 하지만 우리는 좀더 근본적인 문제 제기로 이 기술을 잠시 멈춰야 하지 않을까 생각해봅니다.
저작권이라는 말은 곧 저작료로 연결이 되어 마치 돈 이야기만 하는 것처럼 느껴지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제 좁은 식견으로는 이 문제는.. 좀 거창하지만 선사시대 이후로 '인류'가 만들어온 '콘텐츠'를 어떻게 볼 것인가에 대한 것이고, 이것에 대한 개념과 이를 통한 법이 향후 AI를 다룰 수 있는가 아닌가에 대한 기점이 될 것입니다.
많은 이들이 콘텐츠라 하면 소설, 음악, 영화, 시, 미술 등의 예술작품을 떠올리지만,
'AI 대 인류'라고 범위를 넓힌다면 신화와 전설부터 철학, 법, 정치체계, 역사 그 자체, 전쟁사, 각 분야의 지식, 물론 과학까지 콘텐츠에 포함할 수 있을 것입니다.
'AI 대 인류'라는 SF적인 전제를 하는 이유는 돈 때문이 아니라, 미래 인류의 위협 때문이고요.
위협이라는 것을 실감하려면 AI에 대한 이미지를 잠시 확장할 필요가 있습니다.
챗지피티에게 명령하듯 순서를 매겨볼까요?
- 챗지피티, 미드저니 등 생성형 AI를 잊습니다.
- 테슬라 등의 자율주행을 잊습니다.
- 영화 "HER"를 잊습니다.
- 인공지능 장난감을 잊습니다.
이제
- 무기와 전쟁터를 떠올립니다.
- 구글과 네이버에 검색창 대신 AI가 기다리는 화면을 떠올립니다.
- 책 대신 인터넷으로 지식을 채운 후 세대를 떠올립니다.
- 생명의 본질에 대해 떠올립니다.
중국과기집단, 사진: 글로벌이코노믹
AI는 드론에만 적용되지 않습니다.
발사 무기와 전략 컴퓨터에도 적용할 수 있습니다.
AI의 가장 큰 특징은 '생성형'이고 그에 따라 생성해낼 진실이 없다면 거짓말을 합니다.
그런데 전쟁터에서는 '거짓말'과 '생성'을 하지 않을까요?
만일 인간을 속인다면 어떨까요? 인간이 너무 늦게 거짓말을 알아차린다면?
그리고 우리의 손자 세대로서 지식이 부족한 인간이 AI의 거짓말을 판단해야 한다면?
사실 지금 현재도 전쟁터 등에서 이 기술이 활용되고 있을지 모르지만, 어쨌든 AI의 기술 발달을 잠시 멈출 수 있는 중요 시기가 아닐까 합니다. 저작권이 아닌 다른 것들이 있다면 더 좋을지 모르겠지만, 창작자로서 생각할 수 있는 방법은 회사의 자본 문제를 건드리는 방법 뿐이네요.
자, 그러면 AI는 저작권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 대화를 해보도록 하겠습니다.
저는 요약하는 것이 왜 저작권 위반이 아닌지 물어봤습니다.
AI의 대답은 저작권의 기준에 대해 엄격하지 않습니다.
현재 저작권법은 인간에게도 엄격한데 말이죠.
논문 출판사의 저작권 정책
과학자들을 보며 놀랐던 이유 중 하나는 자신의 논문에 쓰인 시각자료를 다른 곳에 사용할 경우, 논문 게재 출판사에 저작권 허락을 받거나 금액을 지불해야 하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림은 출판사에서 그려줄 수 있다고 해도, 진짜 중요한 그래프나 모식도 등은 과학자가 논문을 쓰며 만들어내죠. 그 결과물을 재사용할 때 돈을 내야 한다는 것이 어이없지만, 논문 유통업체의 횡포는 논외로 하겠습니다. 하지만 이렇게까지 인간에게도 엄격한 저작권 정책이 AI회사에는 엄격하지 않다는 것이 제 생각입니다.
현재 챗지피티는 유료 서비스를 시작한지 오래입니다.
'인간'의 지식을 넓히기 위한 목적이 아니라 상업적 이용을 하면서도 관련 대가를 지불하지 않다는 것이 제 생각입니다. 제 생각이 잘못되었는지는 모르지만, 지피티와 계속 대화를 해보려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