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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빛동이 Jun 23. 2019

글쓰기가 밥 먹여 준다고?




글쓰기.


직장을 다니며 글쓰기를 시작한 지 1년이 넘어가고 있다. 응? 1년이나 됐는데 아직 이 정도?라는 매서운 평도 있겠지만, 어쩌겠는가. 지금은 인정한다. 안타깝지만 변명의 여지가 없다. 나 스스로도 매주 글을 쓰면서 정돈되지 못한 주제와 애매한 글솜씨 앞에서 좌절을 하니까.



하지만, 간간이 위로를 얻는다.


매주 1편의 글을 쓰는 나뿐만 아니라 함께 하는 글쓰기 동료, 그리고 SNS를 통해 직/간접적으로 아는 저자들까지 많은 이들이 입을 모아 글쓰기가 어렵다고 한다. 그들이 글을 쓴 기간이 어느 정도인지 알 수는 없지만, 글을 써내려 가는 일이 결과물과는 무관하게 누구에게나 힘든 싸움이라는 사실에 괜한 안도감이 생긴다.



반면에 다른 질문이 뒤따라온다.


이렇게 힘든 글쓰기를 왜 계속하는 걸까? 작가, 편집자, 기자와 같이 글쓰기를 업으로 삼고 있는 사람들을 제외한 대부분의 사람들은 글을 통해 금전적인 이익을 얻지 못한다. 얻는다 하더라도 극히 일부일 뿐더러 각고의 노력에 비해 얻는 대가는 크지 않다. 무엇이 이들을 책상 앞으로, 흰 바탕의 화면 앞으로 이끄는 것일까.



개인적으로는 읽고 쓰는 행위가 모두 낯설어서 배로 힘들다.


글을 쓰기 시작하는 많은 이들은 어느 정도 독서를 꾸준히 하고 있는 상태에서 글쓰기를 시작한다. 다독을 하면 어느 순간 "이 정도 글은 나도 쓸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물음이 드는 경우도 있다고 하고, 여러 해 동안 깊이 축척된 지식의 분출구를 찾기 위해 발버둥 치다가 화산이 폭발하듯 잠재되어 있는 문장들을 쏟아내기도 한다. 무엇이 됐든 본인 안에 내재된, 풀어내고 싶은 '이야기'가 있어야 했다. 그리고 그 사람들을 유심히 지켜본 결과 풀어내고 싶은 말은 경험에서 나왔고 그 경험은 읽은 책에 기반한 듯 보였다.

우연찮은 기회에 독서의 광활함과 쓰기의 날카로움을 동시에 접하게 된 나는 책을 읽으며 느끼는 깨달음도, 글을 쓰며 찾아오는 만족감도 놓치고 싶지 않았다. 조금씩 시간을 쪼개고 여유를 줄이며(사실 책을 읽는 활동은 여유로움에 포함되는 경우도 많다) 두 마리 토끼를 잡기 위해 노력 중이다.



노력함에도 글을 쓰는 일은 여전히 어렵다.


"기, 승, 전, 글감"이라고 표현하듯, 초보자들은 글을 쓰는 행위도 글감을 찾는 것도 만만치 않다. 아무도 관심 가져 주지 않는 내 개취를 오픈하는 것도 낯설고, 반대로 누군가가 내 글을 읽고 냉철한 평가를 해주지 않아서 두렵기도 하다. 마음의 소리를 어디까지 드러내야 하나 단어 하나하나에 고민을 거듭하기도 하고 언제쯤 불편한 사회의 진실에 맞설 당당한 목소리를 글로 풀어낼까 당찬 꿈을 그려보기도 한다.



의기소침한 나에게 한 줄기 빛이.


글을 읽은 모두가 '라이킷'을 누르고 "마음을 움직이는 글이에요, 많은 생각을 하게 됩니다. 글 잘 보고 가요" 같은 멘트를 남기는 글을 쓰고 싶으나 현실과 이상이 차이나는 요즘. '글을 언제까지 써야 할까'와 같은 본질적인 질문이 다시금 고개를 들이미는 찰나에, 글이 밥을 벌어주는 일이 생겼다.






얼마 전 회사에서 참여하고 있는 서비스의 대대적인 개편을 진행했고 동시에 홈페이지에 주요 변화 사항을 포함한 공지문이 필요했다. 대고객 대상으로 나가는 장문의 멘트는 사내 IMC/언론 전문 부서나 마케팅 대행업체를 통해 작성을 하는 것이 원칙이나 이번에는 특이한 경우에다 시간이 부족했다. 검토를 의뢰하고 피드백을 기다리기에는 절대적인 시간이 받쳐주지 않았다. 팀장은 내용을 정확히 알고 쓸 수 있는 몇몇의 직원을 돌아보며 우리가 쓰는 것이 맞다는 판단을 내리고 지원 의사를 물었다.



제가 한 번 써볼까요?


순간 나도 모르게 '생각하는 뇌'의 필터링을 거치지 않고 내뱉었다. 그리고 1초간 눈동자가 100번은 흔들렸을 거다.(그만큼 당황했다는 말이다) 누가 알아주지도 않고 귀찮은 일을 너무도 빠르게 자진해서 손을 들고 하겠다는 지원자가 나타나는 상황. 안도감의 눈빛과 의심의 눈빛이 오가는 순간. 곁에 있던 선배들은 속으로 좋았을 일이다. 보고서도 아닌데 굳이 글을 쓸 필요가 없지 않은가.


그런데 나는 왠지 '쓴다'는 단어가 낯설지 않았다.

텅 빈 공간 위에 쓰는 것이 습관(이 되길 죽어라 희망한다)까지는 아니어도 어느 정도 편해진 만큼, 두렵지 않았다. 오히려 써야 할 말이 명확히 정해져 있기에 수월해 보였고 쉽게 써내려 갈 수 있었다. 카페에 앉아 메모 앱에 쓰는 것과 사무실에서 MS 워드에 쓰는 것이 다를 뿐, 머릿속에 있는 생각을 글로 풀어내는 일이기에 이질적이지 않았고 편안했다.


그간의 노력이 인정받는 것일까. 살짝 의심의 눈초리를 보내던 팀장도, 얼떨결에 미소를 짓던 선배들도 내가 작성한 글을 매우 만족해했다. 일단 주어 서술어를 정확히 했고 불필요한 표현을 제하였으며 보고서에서 볼 수 없었던 참신한 표현까지 알맞게 섞어 주었기에, 짧은 시간 안에 쓴 것 치고는 상당한 퀄리티라고 생각했으리라.(그러고 보면 회사에는 보고서를 잘 쓰는 사람은 많은데, '글'을 잘 쓰는 사람은 적다는 사실에 놀라곤 한다.) 가벼운 마음으로 다른 일을 마무리하고 기분 좋게 노트북을 덮었다.





때론 글쓰기가 지지부진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내면을 돌아보는 행위인만큼 쌓아 올리지 못한 내공에 자신감을 잃기도, 짜증도 났었다. 그 기분이 깨끗히 가신 것은 아니지만, 꾸준함에서 오는 작은 변화는 다가오는 기회를 잡을 수 있는 초석이 됨은 분명했다. 

누군가는 오늘도 글쓰기에 도전할 것이고, 좌절도 할 것이고, 고민도 할 것이다. 슬럼프에 빠진 이들이 있다면 그럼에도 작은 희망을 가져봄이 어떨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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