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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쓰는 마법사 Aug 25. 2022

엄마의 전화

사과독촉장-0

2022년 8월 22일


 아침 9시 50분. 핸드폰이 울린다,


 엄마다. 반갑지 않다.

통화버튼을 누르자마자 엄마의 살짝 들뜬 목소리가 들린다.


나 괜찮데.

그런데 너 통화 괜찮아?


 아. 오늘 엄마의 대학병원 정기검진 결과 상담 날이구나. 유방암 발병 6년차. 일년에 한번 있는 정기검진의 결과를 받아들자마자 전화를 한 것이다. 엄마에게 두, 세차례 병원 일정을 물어서 들었지만 잊고 있었다. 엄마를 위해 챙겨야 하는 일정이지만 별로 알고 싶지 않은 엄마의 일정이기도 했다.


 엄마의 목소리 톤은 살짝 올라가있었고 미세한 떨림이 있었다. 목소리만 들어도 어떤 상황에서 전화한 줄 짐작이된다. 분명 정기검진 예약 1시간 전부터 병원에 가서 담당 교수의 진료실 앞에 떨리는 마음으로 앉아있었을 것이다. 그렇게 하면 10분이라도 일찍 교수를 만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아침은 새벽부터 아빠의 식사를 잘 챙겼을 것이며, 당신은 먹는 둥 마는 둥 약을 먹기 위한 식사로 성의 없게 했을 것이다. 아빠를 출근시키고 간단히 설거지를 하고 거실 쇼파에 앉아 눈에 들어오지 않는 티비와 시계를 번갈아 쳐다보기를 여러번 했을 것이다. 시계를 쳐다볼때마다 시간은 5분도 안 지났을테지. 그렇게 지루한 긴장 끝에 집을 나섰을 테지. 그렇게 병원으로 가는 파란 버스를 타고 병원 주변을 배회하거나 하지 않고, 병원의 암병동 담당 교수님의 외래진료실 앞으로 직행했을 것이다. 그리고 간호 데스크에 예약 시간보다 일찍 왔는데 대기 시간이 얼마나 될는지 무의미한 질문을 한차례 했을 것이다. 두 개의 진료실을 번갈아 보는 담당 교수가 인턴이 띄어놓은 검사결과창을 보며 “다 괜찮네요. 좋습니다” 하는 한마디 말을 듣기 위해 검사를 했던 지난주부터 그 순간까지 마음을 졸이고 마음 한켠에 불안을 쌓아두었을테지. 그리고 담당교수의 30초 진료에 그 불안이 눈녹듯 사라지고 마음이 가벼워져서 목소리도 올라갔을테지. 담당 교수를 만나고 나와 버스로 가는 길에 아빠에게 전화를 할까, 나에게 전화를 할까 하다가 나에게 먼저 전화를 했을테지. 아빠에게 전화를 해봤자 “그래, 알았네” 하는 무뚝뚝한 답변을 받는게 싫었을테니까.


 엄마의 짧은 두 문장만으로 나는 엄마의 많은 상황을 읽었다. 그리고 동시에 화가 났다. 엄마는 나에게 폭언, 폭격에 가까운 말을 쏟아낸지 한 달도 채 되지 않았다. 나는 엄마의 모질고 모진 말들로 몇 칠을 밤새워 울었고 슬퍼했다. 나를 통째로 부정당하고 내 가족이 무시당했다는 생각에 나의 온 몸은 화로 가득 차고 마음은 후드려 맞고 탈탈 털렸었다. 그런데 엄마는 그 일에 대한 한마디 사과도 없이 오늘의 당신의 가벼운 마음, 기쁨, 안도를 나누기 위해 나에게 전화를 했다. 그런 엄마가 오늘도 밉다.


 엄마는 자신의 마음을 나눌 사람도 필요했겠지만 내가 엄마를 걱정한다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 그 믿음으로 내 마음의 걱정을 덜어주려 더욱 기쁘게 전화했을 것이다. 그리고 나는 엄마에게 다행이다, 그동안 얼마나 마음 졸였냐. 엄마를 위로하며 엄마가 듣고 싶은 말들을 해주고 전화를 끊었다.


 그렇게 전화를 끊은 나는 분노와 애증의 마음을 담아 사과독촉장을 쓴다. 엄마가 툭 터놓고 자신의 상황과 마음을 나눌 사람이 나 뿐이라는 것에 화가 난다. 이렇게 뒤로 엄마를 욕하고 화내고 사과하라고 떼쓰는 딸인 줄도 모르고 말이다. 하지만 내 분노는 정당하다. 엄마에게 직접 따져 물을 수는 없지만 엄마에게 상처받은 나를 보호하고 지키기 위해 사과 독촉장을 쓴다. 이 사과독촉장이 침범적 엄마와 결별하지 못한, 미성숙한 엄마를 짊어지고 사는 또 다른 누군가에게 도움과 위로가 되길 바라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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