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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상민 NIRVANA Jan 27. 2021

슈퍼히어로 팬들에겐 너무 낯선

영화 <원더우먼 1984>

지난해 12월, 코로나 블루가 장기화되는 가운데 정말 어렵게 DC의 희망 <원더우먼 1984> 개봉했다. 북미에서는 극장개봉과 동시에 워너의 OTT플랫폼 HBO맥스에서 스트리밍 서비스를 시작했으며 예상했던 대로 첫 주에 흥행 1위를 차지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원더우먼 1984>는 장점보단 단점이 많은 영화다. 무엇보다 슈퍼히어로 장르 팬덤의 기대에 부응하지 못했다는 점이 너무 크게 다가온다.

이 영화는 슈퍼히어로의 문법보다는 다이애나 프린스라는 개인의 서사에 더 집중하고 있다. 

현대 버전의 아마존 데미스카라에서 태어나고 자란 한 소녀가 문명사회에 발을 들이고 전쟁을 경험하면서 첫사랑을 잃은 후에 겪는 성장통에 대한 이야기다.



도입부는 나쁘지 않았고, 아니 근사했고 그래서 기대감을 갖게 만들었다. 쇼핑몰 씬까지만 해도 '원더우먼'이 또 DC를 살렸구나, 하는 생각을 가지게끔 만들었다. 

하지만 감독은 이런 기대를 아는지 모르는지 갑자기 장르를 드라마로 선회해버린다. 후에 아치에너미로 등극할 바바라를 만나 친분을 맺는 과정은 충분히 필요한 서사였지만 완급조절에서 실패해 지루하게 느껴졌다.

예고편에서 보였던 스티브 트레버의 재등장은 어떤 경로로 이뤄질지 사실 예측하고 있던 터라 크게 신선하진 않았다. 아마도 맥스웰 로드란 캐릭터가 등장하기로 예정된 탓이리라.



사실 이 영화의 가장 큰 패착은 맥스웰 로드라는 캐릭터를 재해석하는 과정에서 원작 코믹스에서 보여준 것과는 너무나 동 떨어진 형태로 묘사했다는 점이다.

솔직이 고개를 갸우뚱하게 만드는 지점이 많았다. 원작에서의 맥스웰 로드는 한때 저스티스 리그의 동료였으며 한편으로 리그를 붕괴 직전까지 몰고 갔던 엄청난 빌런이다. 

코믹스에서 그는 마블의 대표적인 텔레파스 자비에 교수와 맞먹는 수준의 정신조작 능력을 소유한 인물로 묘사된다.  그 능력으로 그는 슈퍼맨을 조작해서 배트맨을 빈사 지경에 이르게 만들었고 끝내 원더우먼에게 목이 꺾여 사망하는 인물이다. 그 일로 원더우면은 슈퍼맨과 배트맨의 비난을 받았고 한동안 슈퍼히어로의 지위를 내려놓고 아웃사이더 생활을 하기도 했다. 



그렇게 퇴장한 맥스웰 로드는 후에 DC가 몇 번의 리런칭을 거치면서 최근에 새롭게 부활했다. 그만큼 그는 원더우먼하고는 지독한 악연인 셈이다. 

그런데 불행히도 감독이 연출한 맥스웰 로드는 원작애서 보여준 카리스마의 절반도 채 발산하지 못했다. 뜬금없는 부성애 넘치는 캐릭터로 묘사하는 바람에 이야기의 텐션이 초반에 벌어놓은 것을 다 까먹고 쭉쭉 떨어뜨리는 결과를 낳았다. 


슈퍼히어로 장르의 볼거리인 액션 시퀀스도 대체로 심심하다. 초반에 반짝했던 쇼핑몰 씬 외에는 이렇다 할 액션을 보여주지 않은 채 마지막 결전으로 점프해 버린다. 전편과 비교해도 같은 감독의 연출이 맞는지 의심스러울 정도로 지루함을 느꼈다. 



드라마와 액션의 균형이 깨져버리니 영화에 집중하기 어려워진다.  관객이 그 장르를 이해하는 만큼 거기에 자연스레 장르적 쾌감에 대한 니즈가 뒤따른다. 그런데 무슨 까닭인지 <원더우먼 1984>는 집요하리만치 드라마를 고집한 나머지 장르 본연의 기능을 간과해버렸다.

마지막 결전에서 치타와 대결을 벌일 때만 해도 드디어 본래 궤도로 돌아오나 싶더니만 다시금 맥스웰 로드를 해결하는 과정에선 고개를 갸웃하는 전개를 펼쳐버렸다.  적어도 이 장르를 사랑하는 팬덤은 이런 이야기를 바라지 않았을 거다. 



에필로그처럼 덧붙인 쿠키 영상도 솔직히 좀 생뚱맞다. 원년 팬덤을 위한 서비스 같은 느낌. 하지만 새로운 원더우먼에게도 익숙해지지 않은 젊은 관객들에겐 갑툭튀 같은 사족이었다. 물론 린다 카터를 기억하는 올드팬들에겐 동창회 같은 느낌이었겠지만.

결국 <원더우문 1984>는 가장 기본을 놓쳐버린 탓에 후한 점수를 받기에는 여러 모로 부족한 슈퍼히어로 영화가 되어버렸다. 그래서 못내 아쉽다.


적어도 슈퍼히어로 팬들이 기대했던 원더우먼은 아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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