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수를 사면서 알게 된 사실.
오랜만에 대학 동기를 만나는 자리었다. 한 친구와 다른 친구들보다 한두 시간 정도 일찍 만나 우리의 여름을 준비하기 위한 쇼핑을 했다. 그중에서도 가장 많이 들린 곳은 바로 향수를 파는 브랜드 점포였는데 취향이 극과 극인 친구와 함께 시향을 하고 각자 맘에 들었던 향기의 향수를 산 뒤 근처 카페에 가서 우리가 왜 향수를 좋아하는지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그리고 그런 와중에 친구가 한 마디를 했다.
"그동안 수많은 애인을 사귀었는데, 사실 남산을 같이 갔던 애인이 누구였는지 잘 기억이 나지 않아. 근데 웃기게도 그 사람이 썼던 향수와 그 향기는 오래 기억에 남더라고. 생각보다 향기가 가져오는 추억은 대단하더라. 향수병이라는 말도 있잖아?"
그리고 나는 친구의 말에 전적으로 공감을 했다. 함께했던 사람과의 추억은 기록을 해놓지 않는 이상 점점 희미해짐에도 불구하고 그 사람 특유의 향기는 오래 기억에 남았다. 생각보다 인간은 후각에 민감한 동물이었던 것이다. 그렇게 친구와 많은 이야기를 나누고 나서 한동안 멀리했던 (팩트 : 면세가 아니면 비싸기 때문에 구매하지 못했던) 향수를 구매하기 시작했다. 이전까지는 그냥 이 향이 좋아! 하면 샀었기 때문에 최근에 향수를 구매하면서 많은 것을 깨달았고, 그에 대한 이야기를 써보려고 한다. (어쩌면 다른 사람들은 이미 다 아는듯한)
이전에는 한 향수가 좋으면 그 향수를 봄, 여름, 가을, 겨울 계절에 상관없이, 친구를 만나거나 어른을 만나거나 만나는 사람에 관계없이, 면접을 보러 가거나 야외에 있거나, 밀폐된 공간에 있거나 상황에 상관없이 주야장천 그 향수만 뿌렸었다. 하지만 무더운 여름날, 냉방이 잘 되지 않는 머스크 향이 가득한 향수를 뿌리고 갔다가 친구가 속이 울렁거린다며 내 옆에서 멀리 떨어지더라. 옷도 계절에 따라 다르게 입는데, 계절에 따라 선호하는 향이 달라지는 것도 당연한 것이었다. (이걸 이제야 알다니!) 그 뒤로 겨울에는 조금 더 포근한 향의 향수를, 여름에는 청량하고 시원한 향을. 밀폐된 공간에 있을 때는 잔향이 덜 독한 향수를 뿌리기로 했다.
향수에 푹 빠져 언니와 함께 백화점에 향수 시향을 하러 간 적이 있다. 그때 호불호가 확 갈리기로 유명한 한 브랜드의 향수를 맡았다. 시향을 하고서 나는 너무 만족한 표정으로 언니에게 "이 향수 너무 좋지 않아?" 물었는데 언니는 오만상을 찌푸리며 "암내 나는 데.(정말 이렇게 말했다.)"라고 말했다. 그때 받은 충격이란! 내가 맡기 엔느 정말 포근한 향이었는데 누군가는 맡기도 싫은 땀냄새로 느껴진다니. 가히 충격이었다. 그 뒤로 향수를 살 때 최소한 한두 명의 사람을 함께 데리고 간다. 향수는 내가 행복해지기 위해 뿌리기도 하지만 주변 사람에게 좋은 인상을 주기 위해 뿌리는 것이기도 하니까. 모든 사람의 취향을 맞추진 못하더라도 내 주변에 제일 가까운 사람들에게는 좋은 인상을 남길 수 있겠지.
내가 좋아하는 향은 네롤리, 베르가못, 머스크, 화이트 플로럴 (이 정도면 거의 다 좋아한다고 봐야겠군.)인데 이 향료들은 인기가 많은 축에 속하기 때문에 각 브랜드마다 다양한 향수를 만날 수 있다. 최근에 르 라보의 네롤리를 들이고 네롤리 향이 너무 좋아서 다른 브랜드에서 '네롤리' 향수 있나요? 를 물으면 웬만한 브랜드에는 모두 네롤리가 포함된 향수들이 있었는데, 충격적으로 너무 다른 향들이었다. 시향을 해보지 않고 대충 인터넷 설명글로 써져있는 향료들만 보고 구매하려던 내게는 충격적인 시향이었다. 그 뒤로는 무슨 일이 있어도 반드시 시향, 착향을 해보고 향수를 구매하리라 마음먹었다.
사실 이렇게 무언가를 깨달은 것처럼 주저리주저리 써놨지만, 아직 나는 향에 대해 1도 모르는 신생아 수준이고, 믿는 건 내 코 밖에 없다. 하지만 향이라는 건 생각보다 사람에게 큰 자극을 준다는 것과, 향만으로 사람의 호감도가 달라질 수 있다는 걸 깨달았다. 그 뒤로 나는 내 얼굴을 꾸미는 화장품보다는 나도 좋고, 주변 사람들도 좋아할 수 있는 나만의 향을 찾고자 노력하고 있다. 누군가에게 내가 '아 그 사람의 향기는 참 좋았어.'라고 기억될 수 있길 바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