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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뇨롱 Aug 06. 2020

아직 선배라는 게 낯설어서

막내가 익숙한 내가 이제는 막내가 아님

지금까지 나는 어디서나 '막내'의 롤을 맡아왔다. 집안에서도 2녀 중 두 번째, 초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나는 친가에서 항상 막내였고 빠른 년생으로 학교에 입학했기 때문에 친구들 중에서도 막내였다. 심지어 대학에 와서도 막내, 후배들이 들어와도 후배보다는 선배들과 친하게 지내면서 막내로 어여쁜 사랑을 받았었다. 인턴을 나가서도 막내였고 (인턴이니까 당연하지!), 아이돌을 좋아하면서 만난 사람들 사이에서도 막내였고 (언니들과 노는 걸 참 좋아했다.) 심지어 회사에 취직하고 나서도 1년 5개월 동안 막내, 그것도 나이 차이가 꽤 나는 막내로 일을 했었다. 


사실 막내라는 건 꽤나 좋은 포지션이라고 생각한다. 어떤 실수를 하더라도 그래 막내니까 넘어가자.라는 경우도 많고, 위에서 잘해주기 때문에 조금은 막 나가는 경향이 없지 않아 있었다. 그렇게 막내로만 이십여 년을 살았던 내가 이번 주에 막내라는 포지션에서 벗어났다. 회사에 새로운 마케터를 뽑았는데 나보다 한 살 어린 신입 마케터였다. 처음에 회사에서 97년생 마케터를 뽑았다고 했을 때는 흠칫 놀랐다. 이제 막내가 아니라니! 나는 적어도 3년 정도는 막내로 있고 싶었는데, 갑자기 다음 주부터 회사에서 선배 노릇을 해야 한다는 거였다. 


같은 직군에 들어온 후배(라고 하기에도 민망한) 마케터. 지난 월요일부터 출근한 그 친구는 나와는 참 좋은 의미로 다른 사람이었다. 꾸준히 노력하고 생각하는 사람. 첫 선배 노릇을 해야 하는 나는 사실 지난 주말 내내 걱정이 많았다. 이 친구를 어떻게 불러야 할지도 (아마 이 친구도 나를 어떻게 불러야 할지 고민이겠지), 마케팅 업무 관련 OT를 하라고 하는데 어떤 부분을 알려줘야 하는지도 그냥 처음부터 끝까지 모든 게 고민이었다! 그리고 월요일, 신입 친구를 위해 평소보다 15분 일찍 출근해서 사무실 문을 열어놓고 (첫 출근 때 사무실 문이 닫혀 있어서 당황했던 기억이 있기에), 회의를 하고 나서도 모를만한 내용이 있으면 개인 톡으로 설명해주고 있다. 


가장 고민되는 부분은 바로 새로 들어온 친구가 '피드백 부탁드려요.'라고 할 땐데, 사실 아직 나도 주니어이기에 피드백을 해 줄 만한 입장이 아니라는 것! 나도 잘 모르는데 누군가에게 피드백을 준다는 게 참 민망한 일이라는 걸 요즘에서야 깨닫고 있다. 앞으로 이 친구에게 좋은 의견을 주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 내 일을 하면서도 틈을 내서 그 친구의 업무를 함께 고민해주는 것, 조용히 내가 아는 좋은 정보들을 전달해주고 그 친구가 아닌 친구의 '일'에 대해 피드백하는 것. 이 부분을 항상 염두에 두려고 한다.


선배가 된 지 4일째, 앞으로 얼마나 지나야 나는 좋은 선배가 되어있을까, 고민이 깊어지는 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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