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릴라는 쇼맨십이 아닙니다
<누가 이렇게 상큼한 짓을 했을까?> 아스팔트 사이에 빨간 꽃 한 송이가 심겨 있었다. 그 옆에는 <게릴라 가드닝! 자연을 사랑합시다>라는 푯말도 같이 놓여있었다. 재미있는 시도에 감탄했던 기억이 있다. 그리고 며칠 뒤, 똑같은 장소를 지나가는데 웬걸? 꽃이 파헤쳐져 있는 게 아닌가. 그 앙증맞음은 온데간데없고, 빨간 꽃과 내팽개쳐진 푯말은 도시의 미관을 해치는 쓰레기가 되어 있었다. 그걸 치우는 환경미화원 아저씨가 툴툴대며 한마디 했다. "이럴 거면 왜 하는 거야?"
'게릴라 가드닝'은 영국에서 시작된 자연주의 운동이다. 도시의 환경을 더럽히는 쓰레기를 치우고, 그곳에 꽃을 심자는 아이디어에서 시작됐다. 아무도 모르는 시간에 빠르게 치고 빠진다고 해서 '게릴라'라는 이름이 붙여졌다고 한다. 이 게릴라 가드닝 아이디어가 건너고 건너 대한민국의 구의동에까지 상륙하게 된 것이다. 다만 원작자도 생각지 못한 부작용이 있었으니… 게릴라가 지속되지 않는 게릴라 가드닝은 보시다시피 쓰레기가 되어 버렸다. 차라리 푯말이라도 놓지 않았으면 덜 했을 텐데, 실행자는 이 프로젝트를 너무도 알리고 싶었나 보다.
예전 친구들과 홀몸노인(독거노인) 다큐를 찍자고 의견을 모았던 적이 있다. 홀몸노인을 모아 같이 여행도 가고, 밥도 해 먹는 그런 아이디어. 그 취지가 좋다고 우리끼리 난리를 쳤더랬다. 그러다 문득 우리는 어떤 딜레마에 빠지게 됐다. <우리 이거 언제까지 할 수 있을까?> 이 프로젝트가 우리에게는 웃고 즐길 수 있는 추억 하나로 끝나겠지만, 프로젝트가 끝난 후 다시 홀로 남겨지게 될 노인의 기분은 우리가 감당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니었다. 우리는 프로젝트를 진행할 수 없었다.
'게릴라'는 치고 빠지는 전투 방식이다. 게릴라가 의미 있는 이유는 작은 시도가 쌓여 결과적으론 체제가 붕괴될 수 있을 정도의 큰 피해를 남기기 때문이다. 이렇듯 게릴라의 성패에는 '지속성'과 뚜렷한 '목표'가 전제된다. 우리가 행하는 모든 선행, 프로젝트라 불리는 것들은 그 영향은 미미할지라도 궁극적으론 세상을 변화시키기 위한 게릴라 활동이다. 하지만 이 게릴라가 지속성 없이 쇼맨십으로 끝날 경우 그 결과는 참으로 허무해진다. 뽑힌 빨간 꽃처럼. 남겨진 노인의 깊은 한숨처럼. 지속하지 못할 게릴라는 애당초 시작조차 안 하는 게 미덕일지도 모르겠다.
이미지 출처 : http://maltugi.blogspot.kr/2014/01/blog-post_14.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