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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니엘 Mar 17. 2016

리버풀 FC, 그 찬란한 역사의 시작 Part 4

[다니엘의 'Football Mate'] 축구를 좋아하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축구 전문가가 될 때까지.

알면 알수록 벅찬 감동을 선사하는 축구의 세계로 당신을 초대합니다.


# 위대한 명가의 몰락


리버풀에서 선수 시절 뛰어난 볼 배급 능력, 대포알 같은 중거리 슈팅을 무기로 중원의 대들보로 활약했던

그레엄 수네스가 킹 케니의 후임자로 감독직을 맡았다. 당시의 많은 팬들이 기대를 모았지만 수네스는

리버풀을 몰락의 시대로 끌고 들어갔다. 물론 부임 첫 해 1992년 FA컵 트로피를 가져오긴 하지만 그가

이끌던 4년간 계속해서 부진한 모습을 보이며 추락하였고 1993/94 시즌엔 리그 8위까지 떨어지는 최악의

결과를 불러오기도 했다. 결국 수네스는 불명예스럽게 리버풀을 떠났고 이는 그의 커리어에서 유일한 오점이

되었다. 수네스가 물러나고 빌 샹클리 감독 시절부터 부트룸의 일원으로 리버풀을 지켜온 로이 에반스가

지휘봉을 잡았다. 

스티븐 제라드와 제라르 울리에

팬들과 수뇌부들은 에반스 감독에게 큰 기대를 걸지만 역시나 이마저도 과거의 영광을 되돌리기엔 역부족

이었다. 1995년 당시 코카콜라컵(현 캐피탈 원컵) 빼고는 아무런 트로피도 들어 올리지 못했고 1998/99 시즌엔 제라르 울리에 감독을 데리고 오면서 공동 감독직 체계로 팀을 정비했다. 울리에는 프랑스 출신으로 

리버풀 역사상 최초의 비영어권 출신 감독이었다. 공동 감독직은 얼마 안 가 제라르 울리에 감독의 1인 체제로 바뀌었고 에반스는 쓸쓸히 퇴장했다. 울리에는 팀을 재정비하기 시작했다. 그중에서도 울리에 감독이 남긴 가장 큰 유산은 '스티븐 제라드(Steven Gerrard)'를 1군으로 올려 적극 기용하면서 구단의 중심으로 

키워낸 것이다. 이 당시의 스티븐 제라드와 마이클 오웬, 두 어린 선수가 보여주던 플레이는 아직도 팬들에 

가슴에 남아있다. 울리에는 2000/01 시즌, FA컵, 리그컵 그리고 UEFA컵을 가져오면서 작게나마 트레블을 

달성했고 팬들과 구단은 그가 다시 리버풀을 일으켜줄 거라 믿었지만 큰 시련이 찾아왔다. 그는 건강이 

급격하게 악화되면서 심장수술을 받게 되는데 수술하고 난 이후 시즌부터 계속해서 기대에 미치지 못 하는 

성적을 보이며 구단과 팬들의 실망을 떠안았고  결국 2004년 팀을 떠나게 된다. 사실 울리에 감독은 리그 

준우승과 챔피언스리그 진출권을 따내며 괜찮은 성적을 보여주었지만 당시 언론과 팬들 그리고 구단은 

더 큰 기대를 걸었고 이에 변화가 필요하다고 느껴 그를 경질시켰다. 사실 성적으로만 놓고 본다면 그렇게 

나쁘지만은 않았다.


# 이스탄불의 기적, 라파 베니테즈


라파 베니테즈 감독은 스페인 프리메라리가 소속의 발렌시아를 성공적으로 이끌며 기대를 한 몸에 받으며

리버풀 감독직에 앉았다. 베니테즈가 리버풀에 왔을 때에는 이미 팀 내 최고의 스트라이커였던 마이클 오웬이

레알 마드리드로 떠나 있었다. 그는 루이스 가르시아, 사비 알론소 등을 영입하며 팀을 정비했고 부임 첫 해

2004/05 시즌을 시작했다. 리그에서는 지역 라이벌 에버튼에 밀려 어려운 날을 보냈지만 챔피언스리그에서

좋은 모습을 보이며 결승전까지 오르게 되었다. 결승전 상대는 AC밀란으로 당시 세계에서 가장 강한 축구팀을 뽑으라면 그 누구도 여지없이 AC밀란을 말하던 시절이었다. 결승전은 5월 25일, 터키 이스탄불 

아타투르크 스타디움에서 진행되었고 AC밀란의 경기가 시작되었다. 경기 초반부터 리버풀은 무너지는 

모습을 보였다. 전반전에만 AC밀란의 주장이었던 파올로 말디니에게 선제골을 허용했고 이후 에르난 

크레스포에게 두 골을 더 허용하면서 3:0으로 전반전을 마무리했다. 재앙이었다. 경기는 이미 AC밀란이 

지배하고 있었고 3골이나 뒤쳐져있는 상황을 뒤집기는 너무 힘들어 보였다. 점유율, 슈팅수, 패스 정확도 

어느 하나 우위에 서지 못했다. 그렇게 후반전이 시작되었다. 후반전 시작 약 10분 후 붉은 물결의 함성이 

터져나왔다.

첫번째 추격골 뒤 선수들을 독려하는 리세와 제라드

캡틴 스티븐 제라드의 헤딩골이 터진 것이다. 제라드는 골을 넣고 선수들에게 힘내자고 소리치며 선수들을

독려했고 첫 번째 추격골이 들어간지 2분 뒤 또다시 붉은 물결이 요동쳤다. 블라디미르 슈미체르의 추격골이

터진 것이다. 시원한 중거리 슛으로 골망을 흔들었고 리버풀은 더욱더 경기를 끌어올렸다. 슈미체르의 골이

터지고 나서 AC밀란 선수들도 흔들리는 모습을 보였다. 두 번째 골이 들어가고 불과 4분 뒤 역습 상황에서

스티븐 제라드가 페널티 박스 안쪽으로 공을 몰면서 쇄도하다가 수비수에 걸려 넘어졌고 페널티킥을 얻어낸

것이다. 키커로는 사비 알론소가 나섰다. 모두가 긴장되는 순간 알론소는 페널티킥 휘슬이 불리고 슛을 했고

슛이 골키퍼 디다에게 막혔지만 튕겨나온 볼을 다시 골대 안으로 집어넣으면서 3:3 동점을 만든 것이다.

경기장은 붉은색 함성의 도가니로 경기장 전체에 울려 퍼졌다. 이후 연장전을 치렀고 AC밀란의 계속된

공세를 막아내었고 골키퍼 예르지 두덱의 선방쇼가 펼쳐졌다. 그리고 이는 승부차기까지 이어졌다.

04/05 챔피언스리그 우승 세레모니

리버풀은 하만, 시세, 리세, 슈미체르가 키커로 나섰고 리세를 제외하고 모두 성공시켜 3점 AC밀란은 

세르지뉴, 피를로, 욘 달 토마슨, 카카, 셰브첸코 가 차례대로 나왔고 토마슨과 카카만 페널티킥을 성공시키며

총 스코어 3:2로 리버풀이 대 역전극을 펼쳐 승리를 거두고 빅이어를 들어 올렸다.

이는 리버풀의 5번째 우승과 동시에 빅이어를 영구적으로 소지할 수 있는 자격이 주어졌다.

아직도 '이스탄불의 기적' 또는 AC밀란 팬들에게는 '이스탄불의 재앙'이라는 이름으로 축구사에 길이 남을

역사적인 경기로 손꼽히고 있다.


# 부푼 기대만 가득했던 나날들


04/05 시즌 챔피언스리그 우승을 이뤄내며 역사를 새로이 쓴 베니테즈 체제의 리버풀은 구단과 팬들의

기대를 크게 높였다. 베니테즈는 피터 크라우치, 페페 레이나, 다니엘 아게르 등을 영입하며 선수단을

보강했고 구단과 팬들의 기대를 충족시키기 위해 힘썼다. 그러나 05/06 시즌, 리그 3위에 그쳐 프리미어리그

우승 타이틀은 잡힐 듯 잡히지 않았다. 하지만 FA컵에서 웨스트 햄 유나이티드를 꺾고 우승컵을 들어 올렸다.

리버풀은 지금도 문제점으로 지적되는 최전방에 강력한 스트라이커의 부재가 당시에도 있었고 베니테즈는

이를 보강하기 위해 네덜란드 리그 득점왕에 오르며 한창 물이 올라와있던 디르크 카윗을 영입했다.

06/07 시즌이 시작되고 커뮤니티 실드 우승을 시작으로 기대했던 대로 좋은 모습을 보이며 시즌을 이어

갔지만 결국 리그에서는 또다시 3위를 기록하고 우승을 놓치고 만다. 그래도 챔피언스리그에서는 승승장구

하며 결승에 올랐고 2년 전과 같이 AC밀란을 만나게 된다.

06/07 챔피언스리그 결승전 당시 리버풀 팬들

2년 전의 영광을 재현하려 했지만 AC밀란의 필리포 인자기에게 두 골을 허용하며 패배했고 눈물을 머금고

시즌을 끝내야만 했다. 06/07 시즌도 마찬가지로 공격진에 문제를 많이 보였고 베니테즈는 큰 결단과 함께

크레이그 벨라미, 루이스 가르시아, 지브릴 시세 등을 처분하고 이적료를 만들어 거금을 들여 아틀레티코 

마드리드의 '엘 니뇨' 페르난도 토레스를 영입했다. 그렇게 07/08 시즌을 시작했고 토레스는 스티븐 제라드와

찰떡궁합을 보이면서 '제토라인' 이라는 새로운 공격진을 형성했고 기대이상의 활약으로 리버풀을 이끌었다.

페르난도 토레스는 리버풀 입단 첫 시즌에 루드 반 니스텔루이의 프리미어리그 외국인 데뷔 시즌 최다 골 

기록을 갈아치웠다. 하지만 이러한 토레스의 활약에도 무관에 그쳤고 새로운 시즌을 준비해야만 했다.

(왼쪽부터) 스티븐 제라드, 제이미 캐러거, 페르난도 토레스

아쉬움을 가득안고 08/09시즌을 맞이했고 이때의 리버풀은 역시나 무관에 그쳤지만 굉장히 잘했던 한 해로

기억된다. 제라드, 토레스, 카윗 세 선수의 두 자릿수 득점과 함계 골 득실차 1위, 최다 득점 1위를 기록했고

25승 11무 2패  승점 86점을 기록하며 꾸준한 시즌을 보내며 리그 우승의 기대를 걸었지만 퍼거슨 감독의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 승점 4점차이로 밀려 준우승에 그쳤다. 챔피언스리그에서도 레알 마드리드를 5:1로

꺾으며 기대를 모았지만 8강의 문턱에서 좌절하면서 08/09 시즌 역시 무관으로 마무리했다.

이후 베니테즈 체제를 09/10 시즌까지 이어갔지만 시즌 7위라는 아쉬운 성적을 보이며 팀은 무너졌고

라파 베니테즈 감독은 이 시즌을 끝으로 리버풀을 떠났다. 10/11 시즌, 로이 호지슨 감독이 부임했고 그는

리버풀 역사상 최악의 감독 중 하나로 꼽힌다. 이걸로 10/11 시즌이 어땠는지는 충분히 설명이 될 거라 본다.

물론 토레스가 1월 이적시장에서 첼시로 이적하게 되며 공격진에 힘이 떨어진것도 있지만 전체적으로 팀이

하나가 되지 못했고 호지슨의 전략 자체에 문제가 있다는 의견이 많았다. 수비, 공격 어느 하나 제대로 되는

것이 없었으며 국내 팬들에게는 호지슨은 로이 호구(?)슨이라는 별명이 붙혀지고 리버풀은 의적풀, 칠버풀, 

리버풀 시절이라는 불명예스러운 별명으로 불려졌다. 결국 호지슨은 1년만에 경질되었고 스완지 시티에서

스페인식 티키타카로 재미를 보던 브랜든 로저스 감독을 감독 자리에 앉히게 된다.


https://youtu.be/tnB4XAhl6PY

04/05 챔피언스리그, 이스탄불의 기적 영상


Part 5에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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