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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니엘 Apr 06. 2016

전 세계가 둘로 나뉘는 90분
'엘 클라시코'

세기의 대결, F.C 바르셀로나 VS 레알 마드리드

[다니엘의 'Football Mate'] 축구를 좋아하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축구 전문가가 될 때까지.

알면 알수록 벅찬 감동을 선사하는 축구의 세계로 당신을 초대합니다.


더비(Derby) = 같은 지역을 연고로 하는 팀들의 경기를 로컬 더비, 지역감정, 정치적 문제 등 여러 가지를 바 바탕으로 서로 대립관계를 가지고 있는 팀들 간의 경기를 라이벌 더비라고 한다. 국가 간의 라이벌 경기들도 있으며 이를 내셔널 더비라고 말한다.


더비 경기는 FIFA에서 공식적으로 인정하고 전 세계적으로 무수히 많은 팀들이 서로 여러 가지 연결고리로 

인해 이어져 있고 유럽, 남미, 북중미, 아시아, 아프리카 전대륙에 걸쳐 이루어지고 있다.

전 세계적으로 알려져있거나 우리가 쉽게 접하고 알 만한 더비 경기들을 조금만 보면,


맨체스터 더비 :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VS 맨체스터 시티

머지사이드 더비 : 리버풀 FC VS 에버턴 FC

북런던 더비 : 아스날 FC VS 토트넘 핫스퍼

로마 더비 : AS로마 VS  SS 라치오

밀라노 더비 : AC밀란 VS FC 인테르나치오날레 밀라노

데어 클라시커 :  FC 바이에른 뮌헨 VS 보루시아 도르트문트

영남 더비 : 울산 현대 호랑이 VS 포항 스틸러스


정도라고 할 수 있는데 수많은 경기 중에서도 축구팬이 아니더라도 누구나 한 번쯤은 들어봤을 만한 더비,

축구팬들에게는 죽기 전에 꼭 가보고 싶은 직관 경기 1위, 스페인뿐만 아닌 전 세계가 둘로 나뉘는 90분,


FC 바르셀로나(좌측), 레알 마드리드 C.F(우측)
엘 클라시코(El Clàsico)

스페인 최고의 명문 클럽인 레알 마드리드 C.F 와 FC 바르셀로나 간의 라이벌 더비를 엘 클라시코라 한다.

전 세계 축구팬들이라면 누구나 알만 한 선수들이 즐비해 있는 두 클럽은 세계적으로 가장 많은 팬층을

보유하고 있고 더비 매치들 중에서도 가장 인기 있는 경기이기도 하다. 100년이 넘는 역사를 함께 한

철천지 원수들의 대결 '엘 클라시코(El Clàsico)'에 대해 이야기해보고자 한다.


# 설명이 필요 없는 최고의 더비 매치


엘 클라시코는 스페인을 대표하는 더비 경기로도 유명해 엘 데르비 에스파뇰(El Derbi Español),

엘 수페르클라시코(El Superclásico)라고도 불리며 스페인을 넘어 라이벌 더비를 대표하는 경기다.

경기를 직접 볼 수 있는 기회도 굉장히 힘들다. 다른 경기들보다도 두 팀의 경기 표 가격이 2~3배는

기본으로 뛰어오른다. 또 시즌권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에게 대부분 표가 팔리고 이후 멤버쉽 가입자들이

훑고 지나가면 일반 사람들에게는 기회란 없다. 하지만 티켓 중개 사이트에서는 판매하는 사람이 꽤 있으니

비싼 가격이 부담되지 않는다면 충분히 볼 수도 있고 가끔 운이 좋다면 표가 남아있기도 한다.

스페인에서는 웬만한 큰 극장에서는 중계를 상영하기도 하고 펍이나 식당에서도 모두 엘 클라시코를 

시청한다. 두 팀 간의 경기가 이루어질 때는 길거리가 평소보다 조용해지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양 팀 간의 맞대결 역대 전적은 총 230경기, 92승 48무 90패로 레알 마드리드가 근소한 우세를 가지고 있다.

골 득실 면에서도 389골, 378골로 레알 마드리드가 11골 앞서 있다. 하지만 최근 전적으로만 두고 본다면

바르셀로나가 약간 더 앞서 있다. 이 차이는 바르셀로나의 확고화 된 축구 철학이 예가 될 수 있다.

바르셀로나는 구단의 비전과 스타일등을 고려해 감독을 선임하고 감독을 믿고 충분한 시간을 주어 구단과 

감독이 '원 팀'이 되는 반면에 레알 마드리드의 경우 페레스 회장을 비롯한 수뇌부들의 단기적으로 성적이

나지 않으면 자신들에게 올 비난을 감독에게 모두 떠넘기며 감독 물갈이를 하는 것이 대부분이다.

장기적인 미래를 보는 바르셀로나와 단기적인 성적 집착증을 보이는 레알 마드리드는 다를 수밖에 없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레알 마드리드가 바르셀로나보다 떨어진다는 것은 아니나 팀의 잦고 많은 변화는

해가 되는 것이 당연한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레알 마드리드도 그들만의 철학이 있기에 나무랄 수 없다.


# 스페인 역사적 관점으로 본 라이벌 관계


스페인은 과거에 왕이 나라를 이끌어 가던 왕정국가였다. 마드리드를 중심으로 한 카스티야 왕국이 큰 세력

으로써 존재하고 있었고 당시만 해도 현재 바르셀로나가 속한 카탈루냐 지방은 독립적인 민족으로 북부의 

바스크, 남부의 안달루시아 등 여러 각 지방들은 자치권을 가지고 살아가고 있었다. 그러던 중 1931년, 

공화정이 수립되고 알폰소 13세가 퇴위하며 왕정이 무너졌고 약 5년간 좌우로 나뉜 대립이 극도로 

이루어지고 결국 이는 내전의 계기가 된다. 이때 모로코와 카나리아 제도를 중심으로 군부 세력이 정부에 

반기를 들고 쿠데타를 일으키게 되고 이때 프란시스코 프랑코가 반군의 우두머리로 마드리드를 

함락시키며 공화국을 무너뜨리게 된다. 

이 내전 이후 프랑코는 독재정치를 시작하게 되고 36년간 스페인을 독재로써 통치하게 된다.

스페인 지도

마드리드를 중심으로 펼쳐진 프랑코 독재정권의 지방 자치권을 묵살시키고 모든 권력을 마드리드에 하나로 모으는 스페인 통합을 추진하면서 각 지방들은 억압을 받게 되었고 이때 크게 반발한 곳이 북부 바스크 지방, 바르셀로나가 속한 동부의 카탈루냐 지방이다. 물론 분리 독립을 요구하지만 오히려 자치권을 박탈당하면서 카탈루냐 지방은 정부에 반대하는 반정부 운동을 벌인다. 하지만 프랑코 정권의 막강한 권력에 카탈루냐는

지방의 깃발, 카탈루냐어를 쓰지 못하게 되었고 이때 구단의 엠블럼에서 카탈루냐 국기가 빠지게 되었고

또한 본래 카탈루냐식 이름이었던 Futbol Club Barcelona에서 카스티야 즉 스페인식 이름인

Club de Fulbol Barcelona로 바뀌게 되었다. 또 프랑코 정권은 레알 마드리드에 많은 지원을 했기에

두 팀의 감정을 더더욱 악화될 수밖에 없었다. 프랑코 정권이 바르셀로나를 짓 눌러버린 스토리도 있다.

1943년 코파 델 헤네랄리시모 준결승전 다음날 신문 1면의 기사

1943년 코파 델 헤네랄 리시모(코파 델 레이) 준결승전에서 엘 클라시코가 성사되었다. 

1차전에서는 바르셀로나가 3-0으로 승리해 유리한 상황을 가지고 있었다. 2차전 경기 날,  바르셀로나의 

라커룸에 프랑코가 보낸 군부의 요원이 찾아와 바르셀로나 선수들에게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자네들이 축구를 할 수 있다는 것도 우리가 다 눈감아 주고
우리 정권이 관대하기 때문이다.'  

이것은 경고나 다름없었다. 경고의 메시지에 압박을 느낀 바르셀로나 선수들은 경기를 제대로 펼칠 수가 

없었고 11-1로 비참한 패배와 함께 무너졌다. 바르셀로나 선수들은 경기가 끝나고 라커룸에서 있었던 

일들을 폭로했고 이는 결국 스페인 축구협회에서 경기를 무효로 선언했다. 그러나 공식 기록으로 남아 있고

이 사건으로 인해 카탈루냐의 프랑코 정권에 대한 반감, 레알 마드리드에 대한 라이벌 의식은 더 커지게 된다.


# '금빛 화살'이 향한 두 개의 목적지


바르셀로나와 레알 마드리드의 라이벌 관계 안에는 선수들의 이적 문제도 연결이 되어 있다. 

대표적인 예로 '금빛 화살'이라 불렸던 알프레도 디 스테파노, '배신의 아이콘' 루이스 피구가 있다.

디 스테파노는 레알 마드리드의 레전드 중에서도 단연 최고로 손꼽히는 선수지만 그가 레알 마드리드로

오기에는 많은 어려움이 있었다. 디 스테파노는 그의 조국 아르헨티나에서 선수생활을 시작했고 당시

CA 리버 플레이트 에 소속되어 있었다. 하지만 당시 아르헨티나는 경제 위기를 맞이했고 축구 구단들의

상황도 마찬가지였다. 주급을 지급받지 못하게 된 선수들은 당연히 하나 둘 팀을 떠났고 디 스테파노는

콜롬비아 리그의 CD 로스 미요나리오스로 이적을 감행했다. 그는 미요나리오스에서 아주 큰 활약을

펼치며 콜롬비아 축구협회에서도 눈 독을 들였고 콜롬비아 국적을 취득해 국가대표로도 선발이 된다.

이 활약들을 지켜보던 바르셀로나가 그에게 관심을 보였고 리버 플레이트와 협상을 먼저 시작했고

협상을 성공적이었다. 리버 플레이트와 협상을 한 이유는 당시 콜롬비아 축구협회는 FIFA에서 인정하지

않는 비공식 협회였고 디 스테파노의 이적은 FIFA가 새 연맹으로 공식 인정을 하기 전에 이루어져

이를 인정하지 않아 디 스테파노를 그 해 말까지만 미요나리오스 소속으로 인정하고 이후 이전 클럽인

리버 플레이트로 돌아가게 한 것이었다. 그러나 미요나리오스는 이 문제에 대해 소송을 진행했고 결국

두 구단 모두 디 스테파노의 권리를 가지게 되면서 양 팀 모두와 협상을 해야만 하는 상황이 전개된 것이다.

알프레도 디 스테파노(Alfredo di Stefano)

미요나리오스는 바르셀로나에게 26,000 달려 가량을 제안하지만 바르셀로나가 이를 거절했고 결국

리버 플레이트로 그의 소유권이 완전히 돌아갈 때를 기다리기로 했다. 여기서 레알 마드리드가 끼어들었다. 

바르셀로나의 미온적인 반응에 디 스테파노는 실망을 했고 레알은 이때를 틈타 디 스테파노의 관심을 끌고

미요나리오스와 협상에 성공했다. 사태는 점점 심각해졌고 결국 FIFA와 스페인 축구협회는 양 팀과의 합의

끝에 계약 시간 4년 동안 한 시즌씩 양팀을 번갈아 가면서 뛴다는 말도 안 되는 결과가 나온 것이다.

결국 팬들의 강한 반대와 여론을 의식한 바르셀로나가 레알에게 금전적 보상을 받는다는 조건하에

디 스테파노의 권리를 포기하고 레알 마드리드로 보내게 된다. 디 스테파노는 첫 시즌부터 29골을 뽑아내며

바르셀로나의 리그 3연패를 저지하며 레알 마드리드를 우승으로 이끌었다. 레알 마드리드는 이후 

프란시스코 헨토, 레이몽 코파 그리고 페렌체 푸스카스까지 데려오며 팀을 완성시켰다.

디 스테파노는 레알 마드리드에 있는 동안 리그 우승 8회를 견인했고 자신은 발롱도르 2회, 득점왕 5회,

프리메라리가 MVP에 4번이나 선정되면서 바르셀로나에게 자신을 놓친 것은 실수라는 것을 몸소 증명했다.


# 축구 세계가 들썩거렸던 이적과 배신


루이스 피구, 1995년부터 2000년까지 5년 동안 바르셀로나에서 큰 활약을 펼치고 주장 완장도 차며

팀의 최고의 인기 선수 중 하나였다. 그런데 그가 레알 마드리드로 이적하며 축구계가 떠들썩했다.

피구가 레알 마드리드로 이적을 감행한 것은 에이전트가 모든 계약을 진행했고 바이아웃제도때문이었다.

바이아웃제도는 선수의 권익보호를 위해 만들어진 제도인데 선수가 구단이 계약을 할 때 계약서에 추가로

만드는 조항으로 요즘은 대부분 바이아웃 조항이 들어가게 된다. 하지만 2000년 당시에는 바이아웃 금액을

지불하여 이적을 진행시키는 것이 일반적이지 않았고 바르셀로나 또한 피구와 계약을 할 당시에 설정한

바이아웃 금액은 헐값이었다. 또한 피구의 에이전트는 바르셀로나와 새로운 계약 협상을 벌였지만 피구의

활약과 가치에 걸맞은 계약이 제시되지 않았고 바르셀로나 측은 이적을 원한다면 많은 돈의 이적료를 받고

보내줄 수 있다 말하며 피구와 에이전트를 실망시켰고 이 때문에 이적을 감행하게 된 것이다. 

2000년 이적 당시의 사진

갈락티코 정책을 시작한 레알 마드리드에게 피구는 달달한 사탕과도 같은 존재였다.

피구는 레알 마드리드 갈락티코의 일원이 되며 언제나 그랬듯 활약을 펼쳐나갔고 바르셀로나 팬들의 반응은

최악이었다. 피구는 바르셀로나의 홈구장 누 캄프에서 치러지는 경기마다 야유와 욕을 듣는 것은 물론이고

온갖 쓰레기, 맥주병 심지어 돼지머리까지 날아들며 곤욕을 치르곤 했다. 피구는 그런 바르셀로나 팬들의

행동에도 전혀 적대심을 갖지 않았고 조용히 프리메라리가 생활을 마쳤다.

이 사건 이후부터 바이아웃제도가 활성화되면서 선수들의 몸값이 치솟았고 현재는 말도 안 되는 금액으로

선수들의 바이아웃 이적을 구단에서 미리 방지하고 있다. 피구로 인해 현재는 계약서에 바이아웃 조항이 

들어가는 것은 아주 일반적이고 금액이 어마어마하다. 예로 리오넬 메시의 바이아웃 금액은 5200억 원이다.


바르셀로나와 레알 마드리드로 대변되는 리오넬 메시 & 크리스티아누 호날두

필자가 언급하지 않은 사건들도 무수히 많고 알려지지 않은 것도 많다. 마치 한국과 일본을 보는 것도 같아

두 구단의 감정을 이해하기 쉽기도 하다. 아디다스와 나이키, 카타르 항공과 에미레이츠 항공 같이 두 구단의

스폰서도 라이벌 관계로 이어져있는 참 재미있는 현상이다. 스페인에서 가장 빛나는 별들의 피 흘리는 전쟁.


언제나 그랬듯이 '엘 클라시코'는 세계 최고의 축구 더비로 남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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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너스 영상 : '엘 클라시코' 분위기를 영상으로 이해하자!

https://youtu.be/eiNZ1QDb9JU

https://youtu.be/NmSPejqhuX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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