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주는 목요일을 빼고는 모두 밤 11시에 퇴근했다. 목요일에 일찍 퇴근한 것도 일이 없어서는 아니었다. 내일 당장 입을 셔츠가 떨어졌는데 세탁소 갈 시간이 없어서였다. 토요일인 오늘도 9시에 출근을 했으며 11시에 퇴근을 했다. 내일도 일을 해야 한다. 몹시 피곤한 몸을 이끌고 이렇게 글을 쓰는 것은 이번 주 내내 출근길의 버스와 퇴근길의 택시에서 골몰한 주제가 있기 때문이다.
“현타는 어디에서 오는가?”
바로 지금 내 인생에 현타가 왔다. 물론 회계원리를 처음 배우기 시작할 때부터 감사 시즌의 회계사의 삶이라는 것에 대하여 익히 들어왔다. 그것은 삶이라고 부르기도 민망할 정도로 일만 하는 것이라고. 그 모든 것을 알면서도 기꺼이 공부를 시작했고 다른 선택지를 고민하지 않고 회계법인에 들어왔다. 때문에 나는 요새의 나날이 힘들다는 단순한 이유만으로 현타가 왔다고 말하고 싶은 것은 아니다.
그것은 낙차에서 온다. 회계사라는 직업 그리고 감사라는 업의 이상적인 모습과 어떻게 보아도 남루하기만 한 내 하루하루 사이의 낙차에서 말이다. 뉴스에서 말하는 우리는 자본주의라는 체제를 매끄럽게 굴리기 위한 대단한 파수꾼의 모습이지만, 나의 하루는 아침 9시 엑셀에서 시작해서 밤 11시까지 엑셀만 들여다보다 끝난다. 은행에 전화를 돌리며 조회서 좀 보내달라고 굽신거리고 내가 감사하는 회사에 감사할 자료 좀 달라는 기이한 부탁도 한다. 물줄기의 상류는 자본주의의 파수꾼이겠지만 절벽을 따라 폭포가 되어 떨어지고 나면 나는 하류의 엑셀꾼인 것이다.
나는 그럴 때마다 이런 밑바닥의 모습들이 없으면 결국 감사도 이루어질 수 없다는 사실을 기억한다. 저자세로 부탁하는 건 세상 누구나 하기 싫은 일이다. 그러나 우리는 윽박을 지르든 부탁을 하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최대한의 자료를 받아내어 확인할 책임이 있다. 그것은 감사인의 제일의 책무이고 그 책무를 달성하기 위해서라면 내 자세가 어떤지 따질 때가 아닌 것이다. 요새는 이런 것들을 떠올리려 애쓰고 있다.
우리는 자주 고개를 들어 위를 바라볼 필요가 있을 것 같다. 지금 내가 하는 일들이 아주 작아 보여 현타가 올 때는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