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중간고사
나의 고등학교 첫 중간고사 수학 점수는 49점이었다.
고등 졸업이 거의 30년이 다 되어가는 지금, 다른 점수는 전혀 기억나지 않는데 첫 수학 점수는 아직도 또렷하게 기억나는 걸 보면, 열일곱의 나는 49라는 숫자에 적잖이 놀랐기 때문이리라.
딸의 고등학교 첫 중간고사가 오늘 끝났다.
장장 사흘간 세 과목의 중간고사를 치르고 매일 망했다는 소식을 전하는 딸의 전화를 받았다.
어느 정도는 예상했던 부분이긴 했었으나 예상한 것과 직접 경험해 보는 것은 역시 천양지차라는 것을 다시 확인하는 순간이었다.
올 것이 왔구나 하는 당혹감과 실망감이 목소리에 나타날까 봐 성대를 쥐어짜며 딸애가 자칫 멘탈이 붕괴되어 남은 시험까지 망칠까 봐 애를 쓰며 괜찮다고, 이제 시작이라고 말하면서 입시의 끝을 짐작하는 일은 힘겨웠다.
고등학교 첫 성적표는 누워서 받아야 한다는(왜냐하면 뒷목 잡고 쓰러질 수 있기 때문에) 얘기를 몸소 체험하며 고등 엄마의 자세를 생각한다.
중학 시절이 절대로 이해할 수 없는 딸과 내가 치른 전쟁이었다면 고등은 애 혼자 전쟁터에 내보낸 모양새가 되었다. 병사의 가슴에 천인침을 넣어주는 정성을 가졌어야 했는데 돌이켜보니 한참 모자랐다.
창피하지만 딸에게 엄마의 첫 수학 점수 49점을 문자로 보내주었다. 괜찮아 그래도 엄마 행복하게 잘 살잖아. 이게 위안이 될까 모르겠지만. 어쩌겠는가 이 또한 겪어내야 하는 일인 것을.
엄마의 존재는 그저 기도하는 사람인 게 아닐까 생각한다.
자식일이 아니고서야 인간애를 발휘하기 힘든 나처럼 이기적인 존재는 자식을 키우면서야 비로소 타인을 이해하고 누군가를 위해 기도하는 사람이 되었다.
딸의 이름으로 시작한 기도는 조카와 친구들 아들딸의 이름까지 줄줄이 읊고 나서야 끝나게 되었다.
중간고사를 망쳤어도 5월의 첫날은 눈부시게 아름답다.
중요한 것은 너를 위해 기도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을 잊지 않기를.
오늘은 마음 편히 두 다리 뻗고 잠들기를.
열일곱의 봄을 놓치지 말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