풀린지 하루만에 정주행, 호불호 리뷰
2016년 여름. 대한민국 인구 5명 중 1명은 인간의 살을 파먹는 괴이한 생명체(?)가 나오는 영화에 온 몸을 떨었다. 그 영화는 바로 <부산행>. 주인공이었던 배우 공유는, 그 해 겨울 도깨비로 환생하더니, 그야말로 초대박 최고의 배우로 급부상했다.
미세먼지 부유하는 이 한 겨울, 첫눈처럼 오겠다던 공유는 아니오고 공유와 마동석이 신나게 줘패고 다니던 좀비들이 돌아왔다. 그런데 이 좀비들 뭔가 심상치 않다. 조선시대 백성들의 복장을 하고 있다. <부산행>을 찍기 위해 안무가까지 동원하며 좀비 동작을 트레이닝 받았다던 수많은 연기자들이 어디로 갔나 했더니, 다들 조선시대로 간 모양이다.
<킹덤>은 소재부터 신선하다. 조선시대로 간 좀비들이라니. 물론 극 중에서는 'Zombie'라는 이 외래어는 단 한 차례도 등장하지 않는다. 다만 이들을 죽어도 죽지않고, 밤만 되면 짐승처럼 미쳐 날뛰는 역병 환자로 취급할 따름이다. 게다가 이런 괴질을 조선시대 최고존엄 '왕'이 걸려 버린 것이 이 이야기의 출발인 것이다.
이 드라마는 철저하게 가상의 조선을 다룬다. 하지만 동래(부산), 상주, 문경새재 등 현존하는 지역들이 나오고, 이 곳은 실제 조선 역사에서 꽤나 굵직하게 이름을 날렸던 고장이기도 하다. 특히나 극 중에서 두 번의 전란 후라는 설정과 조총의 등장, 훈련도감, 어영청, 수어청과 같은 5군영 체제, 세도정치와 비슷해 보이는 정치세력 등으로 미루어 보아, 조선후기 쯤으로 그 시대설정이 이루어진 듯 하다.
호好
스릴러 여제 김은희의 역대급 수작
<킹덤>을 보다보면 '명불은희', 역시 김은희라는 말밖에 나오지 않는다. 한국형 스릴러의 엄마격인 김은희 작가. SBS 드라마 <싸인>에서 그 가능성을 보여주더니 tVN <시그널>에서 초대박 흥행을 터뜨린다. 그러면서 얻게된 별호가 바로 한국형 스릴러 여제다. 그가 짜내는 서스펜스는 그야말로 한국적이다. 미국의 서스펜스, 일본의 서스펜스와는 또다른 한국적인 맛이 있다.
스릴러, 서스펜스, 공포. 이 구분하기 모호한 세 단어를 정리하자면 대략 이렇다. 스릴러는 '장르', 서스펜스는 '과정', 공포는 '결과' 다. 서스펜스는 서사구조를 말한다. 즉 스릴러라는 장르 안에서 작가와 연출자가 이 서스펜스의 서사구조를 얼마나 잘 녹여내느냐에 따라 관객이 느끼는 공포감이 달라진다. 예컨대 미국식 서스펜스는 장면 위주다. 큼직한 장면들, 힌트가 되는 굵직하고 객관적인 장면들을 보여주면서 서스펜스를 진행시킨다. 히치콕 류의 영화들이 그 대표적인 예시다. 일본식 서스펜스는 '인물' 에 초점을 맞춘다. 특히 인물의 심리묘사와 인물들이 가진 주관적인 시선들의 장면을 통해 서사를 완성시킨다. 하지만 김은희류의 서스펜스 기법은 딱 그 정중앙에 있다. 주관과 객관의 미묘한 줄타기적 서사방식. 이것이 스릴러 여제의 서스펜스 기법이다.
시그널을 통해 한국형 스릴러 드라마의 완성을 알린 김은희가 '좀비'라는 특수소재를 이용해 조선시대로 거슬러 새로운 스릴러물을 만들었다. 김은희식 '숨기기' 기법은 남편 장항준 감독의 영화 <기억의 밤>의 '숨기기' 보다 더욱 세련되다. 이미 완성형 작가의 작품이지만 그녀의 작품을 볼때마다 콘텐츠가 성장하고 있다는 느낌은 김은희라서 가능하다.
전무후무 조선 좀비 스릴러 영상의 효시
감독 입장에서 좀비 스릴러의 레퍼런스(참고영상)은 많다. 소재 자체가 한국 토종의 것이 아닌데다가, 이미 수많은 좀비물이 범람한 시점에서 다양한 촬영기법과 연출기법은 웬만한 감독이라면 이미 다 섭렵했을 것이다. 하지만 이건 단순한 좀비물이 아니라 조선에 떨어진 좀비다. 아무리 가상의 조선시대를 다룬다 하더라도 조선시대적 배경과 역사적 고증이 있어야 할 것이고, 사극적 연출기법과도 접목을 시켜야 한다.
이 드라마를 보면서 '미술팀'이 엄청 고생을 했겠구나 싶었다. 그래서 실제로 촬영 과정 중 미술스태프 중 한분이 과로사로 사망하기 까지 한다. 안타깝고 애도한다. 법적인 문제와 도의적 책임은 꼭 지길 바란다. 하지만 돌아가신 그 스태프를 비롯한 미술팀의 노고는 작품 전반에 담겨 있다. 좀비물, 스릴러물이라고 해서 기괴하고 잔인한 장면들만 있는 것이 아니다.
이 드라마가 뽐내는 영상의 백미는 '한국의 미'를 살리는 미장센에 있다. 서울, 상주, 동래(부산)에 이르기까지 한반도 가장 중심의 길목과 자연풍광을 그대로 담아낸다. 좀비물, 스릴러라 하여 단순한 고어물로서의 영상만 있는 것이 아니다. 등장인물들이 배경으로 삼고 있는 풍광이며, 그들의 이동 경로를 영상으로 담아내는 이 땅의 경관들은 그야말로 수려하다. 특히 조선 궁궐의 단청들과 뛰어난 색감, 전통사극에서는 좀처럼 찾아볼 수 없었던 앵글과 구도 등은 이 드라마가 단순히 공포자극용의 좀비물이 아님을 알 수 있다.
사극 답지 않은 속도감, 빠른 전개
본디 사극은 전개가 느리다. 많은 부분을 시대 설명과 다양한 설정 등에 할애해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가상의 조선은 그럴 필요가 없다. 역사적 사료나 사실에 기댈 수 없다는 점이 분명히 극 전개에 부담을 주지만, 그런 지점들을 놓치기에는 작가와 감독이 너무 베테랑이다.
김은희의 이야기를 영상으로 만드는 사람은 어찌됐건 연출자 및 감독이다. 앞서도 말했듯이 작가와 연출자 적절한 케미에 따라 서스펜스가 달라지고, 궁극적으로 공포감 또한 달라진다. 텍스트 일변도의 시나리오만을 들고 작가가 상상해놓은 장면을 얼마나 잘 구현하느냐, 혹은 그 이상을 뛰어 넘느냐는 오롯이 연출자 및 감독의 권능에 달려있다.
이 드라마의 연출자인 김성훈 감독, 영화 <끝까지 간다>의 감독이다. 또 다른 대표작으로 <터널>이 있지만 내용 외엔 딱히 남는 것이 없다. 하지만 <끝까지 간다>에서 만큼은 엄청난 속도감과 몰입력을 화면으로 만들어 냈다. 그의 화면에는 굉장히 강한 응집력이 있는데, 이는 김은희식 스릴러에 독보적인 진행을 제공해준다.
뛰어난 배우들의 탄탄한 연기
출연진들이 빵빵하다. 드라마가 아니라 영화 캐스팅 수준이다. 이런 캐스팅은 넷플릭스라 가능한 이야기일지도 모른다. 주지훈, 배두나, 류승룡, 김상호, 허준호, 김성규, 진선규(김성규, 진선규는 <범죄도시>의 그 두 놈이다), 전석호(<미생>에서 강소라를 괴롭히던), 정석원(백지영 남편). 얼굴만 보아도 '아, 이 사람' 이라고 할 정도의 배우들이 포진해 있다. 기본적으로 연기력을 의심할만한 사람은 단 한명뿐이다. 그 사람이 누구인지는 후술하겠다. 어쨌든 수많은 엑스트라들 조차도 연기력에 어색함이 없다. 게다가 제대로 동작연구를 한듯한 리얼한 좀비들까지 더하면 이 드라마의 연기구멍은 딱 한사람뿐.
불호不好
중전 혜원 조씨, 다된 밥에 발연기 뿌리기
사극에서 여성은 주로 소비적인 인물이다. 희생 당하거나 도구로 전락된다. 그것이 궁궐의 여인이라 할지라도 대부분 그러하다. 다만 중전은 다르다. 어느 사극에서나 '중전' 이라는 지위는 궁중 암투극의 꽃이자 핵심이다. 이는 중전의 아들, 즉 권력승계라는 지점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킹덤>의 설정배경이 되는 '세도정치기'라는 권력투쟁의 현장에서는 더욱 그러하다.
<킹덤>에서는 '혜원 조씨' 라는 세도가문이 등장한다. 그리고 이 세도가문에서 가장 명망과 지위가 높은 '조학주'를 '류승룡'이 연기한다. 당연히 중전 역할을 맡은 '김혜준'이라는 배우는 조학주의 딸이다. 자, 아버지가 연기를 잘근잘근 씹어드시는 '류승룡'이고, 이 드라마의 중심인 세자 역할의 '주지훈'은 최근 싸이코 살인마 연기까지 섭렵했다. 신인에 가까운 '김혜준' 이라는 배우는 욕심이 지나쳤다. 아버지이면서도 미묘한 권력갈등을 해야하는 류승룡(조학주)과도, 자신 뱃속의 아기를 세자로 만들기 위해 끊임없이 대립해야 하는 주지훈(세자 이창)에게 모든 면에서 밀린다. 그야말로 손대면 톡하면 터질것 같은 연약한 발성과 톤을 보여주는 데, '김혜준' 배우에게는 미안한 말이지만, 이 드라마 최고의 옥에 티다.
유머코드의 아쉬움
사극에서의 유머코드는 대부분 '콤비'라고 불리는 등장인물들 간의 케미로 드러낸다. 사극 특유의 무겁고 진중한 이미지 덕분에, 현대극처럼 말장난이나 행동으로 개그를 짤 수도 없는 노릇이니 말이다. 우리는 여러 사극에서 이미 여러가지 유머코드들을 보아왔다. 대표적으로 '김명민-오달수(조선명탐정 시리즈)' 라던지, '이선균-안재홍(임금님의 사건수첩)'과 같은 콤비가 있다. 드라마에서도 마찬가지다. 우리는 아직도 <뿌리 깊은 나무>에서 보여주었던 한석규와 조진웅의 케미를 잊지 못한다. <해를 품은 달>에서 여진구, 김수현과 케미를 이룬 상선내관 정은표는 어떤가.
이처럼 신분질서가 등장하는 사극에서는 반드시 상전과 그를 모시는 부하가 있기 마련이다. 그리고 바로 이 지점에서 인물들간의 케미가 발생하고 적당한 유머코드를 섞는 것이 일반적이다. 하지만 주지훈과 김상호 아저씨의 코드는 조금 아쉽다. 분명히 웃자고 집어넣은 코드 같은데, 의도된 연출이 나오지 않은 듯 한 찝찝함을 준다. 의도는 알겠으나 웃음이 나오진 않는다. 배두나를 쫓아다니는 전석호(동래 부사) 역시 유치하고 진부하다. 그 옛날 드라마 <허준>에서 임현식(임오근)이 그토록 부르고 다녔던 홍춘이만큼의 포스도 만들어내지 못한다.
차라리 '풉' 정도의 웃음을 만들어낼 지언정, 의도되고 계산된 유머가 안터지는 것이 더 안쓰럽다. 배우들은 또 무슨 잘못인가. 씌여진대로, 디렉션에 따라 했을 뿐.
끝빨나는 영상, 잠시만 안녕, 뜬금없이 날아가는 톤앤매너
앞서 말한바와 같이 이 드라마의 영상미는 국내 탑급이다. 드라마 진행 중간 중간마다 마치 '아름다운 한반도' 라는 다큐멘터리를 보는 듯한 착각을 일으키기도 한다. 특히나 5화에서 한양 중앙군이 산 능성이를 지나며 상주로 향하는 장면은 가히 압도적이다.
하지만 이런 영상톤은 중간중간 사라진다. 끝빨나는 영상을 보다가도 중간중간 맥을 끊어놓는 진부한 영상들이 자주 등장한다. 이는 카메라의 앵글, 구도, 색감 등이 해당한다. 마치 흔해빠진 일일사극을 보는 듯한 착각이 들 정도다. 이처럼 잘 씌여진 각본과 더불어 뛰어난 연출실력을 가지고 있는 스태프들이 왜 이런 영상을 만들어 냈을가 의문이 드는 지점이다.
다만 짐작해볼 수 있는 것은, 바로 '제작비'의 한계 때문은 아닐까 조심스럽게 추측해본다.
호불호好不好
배두나의 사극톤, 신선함? 어설픔?
뭐라 결론짓기 참 힘든 문제다. '호불호'는 그야말로 뭐라 단정짓기 애매한 부분이다. 그런데 <킹덤>이 동시송출된 후 몇 시간 지나지 않아, 주지훈이 배두나의 사극톤을 두고 '듣지도 보지도 못했던 대사톤, 신선했다' 이었다는 인터뷰가 연예가중계를 통해 나가면서 멱살 크리티컬을 날렸다.
이를 두고 많은 네티즌들이 설왕설래를 했다. 주지훈 고도의 '돌려까기' 라는 주장부터, 말 그대로 개성있는 사극연기를 두고 칭찬한 것이라는 의견까지 분분했다.
글쓴이는 후자 쪽에 가깝다. 사극에서 딱히 보기 힘든 톤이었지만, 그 안에는 분명히 배두나의 색깔이 들어가 있었다. 유동근과 최수종 같은 배우들이 하는 정통 사극이 아닌 다음에야, 이 정도의 픽션 사극에는 조금 더 배우의 해석이 열려 있어야 함이다. 게다가 아무리 정통 사극이라 하더라도, 등장인물의 성격에 따라 요즘은 현대극의 대사톤을 섞어 사용하기도 한다.
배두나의 첫 사극 연기는 나름 신선했다. 어색한 면이 없지는 않았으나, 극의 전개를 끊을 정도는 아니었다. 이는 앞서 발연기를 언급한 '김혜준' 배우와는 조금 다른 성질의 것이다. 중전 역을 맡은 김혜준 배우는 역할 자체가 현대극 톤을 할 수 없는 인물이다. 권력암투현장의 가장 핵심인물이다. 이런 인물에게는 현대극톤을 쥐어줘선 안된다. 하지만 불현듯 새어나오는 현대극톤과 발성이 전개를 망친다. 하지만 배두나는 권력암투에 있는 것이 아니라 조선 좀비 미스터리의 실마리를 쥐고 있는 인물이다. 어떤 상황에 처해 있는지에 따라 대사톤의 베리에이션은 얼마든지 열려있다. 그러다보니 자세히 관찰해보면 실제로 극전개상 상황에 따라 배두나의 톤이 미묘하게 조금씩 바뀐다. 가벼운 상황에는 가볍게, 진중한 상황에는 진중하게 그녀가 가진 연기경력을 허투르 쓰는 느낌은 들지 않는다.
그렇지만 이 부분은 어디까지나 글쓴이의 생각이다. 여전히 배두나의 대사톤이 어색했다는 평들도 많다.
사극의 전형적인 정치적 소재와 재난극의 메타포
'좀비'라는 설정은 단순히 설정소재일뿐, 이 드라마 전체를 관통하는 사극적 소재는 여전히 '왕위계승을 둘러싼 권력암투' 이다. 익숙한 소재지만 지겹지 않은 그런 소재. 하지만 글쓴이 입장에서는 조금은 식상했다. 또한 '좀비'라는 역병은 일종의 재난으로써, 이 드라마는 '재난극'의 메타포를 차용한다. 이는 항상 '있는자와 없는자' 와 같은 계급투쟁적, 마르크스적 전개를 이용하는데 이 드라마 또한 그에 벗어나지 않는다.
제작자들로서는 굉장히 손대기 쉽고, 손쉽게 얻을 수 있는 헤게모니 중 하나다. 권력과 재난, 이 두 키워드는 사실 굉장히 오래된 설정 중 하나다. 우리가 쉽게 눈치채고 있지 못하였을 뿐. 대부분의 재난 콘텐츠들이 바로 이 권력과 게급투쟁적 성격을 가지고 있다. 아닌 영화가 있다면 가져와보라. 재난을 방치하려는 자와 재난을 끝내려는 자가 등장하고 갈등한다. 방치하려는 자들은 기득권적이고 재난을 방치했을 때 그들이 얻는 이익이 더 크다.
식상하다. 그러니 사실 이 드라마는 가장 손대기 쉬운 왕위계승문제와 재난문제를 가져왔을뿐, 사실상 전혀 새로울 것 없는 서사구조라는 말이다. 하지만, 이 부분은 분명히 호불호가 갈린다.
글쓴이의 경우, 비평적으로 섬세하게 뜯어보자면 아래와 같은 점수를 줄 수 있다.
서사구조 : 2/5점
서스펜스 요소 : 4/5점
영상미 : 3/5점
단순한 이야기, 식상한 이야기일수록 서스펜스 요소와 연출력이 돋보여야 살아 남을 수 있다. 나는 이 드라마를 극으로서 치켜 세우는 것이 아니다. 극으로서는 상당히 '불호'에 가깝지만 전체적인 하나의 콘텐츠로서는 기대 이상의 만족을 주기에 충분했다.
새로운 한국형 좀비물이 보고 싶은가. 새로운 서스펜스를 느껴보고 싶은가. 지금 당장 넷플릭스 <킹덤>을 보라. 글쓴이는 동시송출되는 바로 그 시간에 보자마자 시즌 1, 6회분을 모조리 정주행했다. 그리고 풀린지 24시간도 되지 않은 시점에 이렇게 리뷰를 올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