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안 하면 죽을 것 같이 바쁜 일은 없다. 보고서는 적당히 써뒀고 피드백은 오늘 받으면 적당하지만 내일 한다 해도 대세에 지장은 없다.
두 곳의 극장을 검색했고 사무실을 나가서 택시를 탔다. 휴. 광고가 끝날 무렵 좌석에 앉았다.
이러면 안 되는 거지. 근데 꼭 찍고 싶었다. 1년 후 오늘. 5년 후 오늘. 10년 후 오늘이라며 구글이 알려줄 때마다 아 그렇지 하고 싶었다.
그리고 찍을만했네.
처음부터 울컥했지.
어떤 장면 때문은 아니었다.
그냥 바로 알겠어서.
작가는 인생을 그렸구나.
송태섭의 시각이던 강백호이건 정대만이건.
우리는 산왕이라는 인생 앞에서 죽을 듯 덤벼보다 움츠려 들고 다치고 쓰러진다
한 번. 딱 한 번. 이긴다고 해도 뭐가 바뀌는 갓도 아닌데. 그래도 어쩌겠나. 그게 인생인걸.
3점 슛 빼면 아무것도 아닌 정대만
몸을 던져 흐름을 바꾸는 강백호
지금 이 순간을 기억해 송태섭
산왕은 북산을 엿 먹이려고 플레이하는 게 아니다. 인생은 인생대로 진지하게 플레이하는 거다.
그러니까 요행수를 바라고 움추러들어봐야 그래봐야 내 손해다. 내 인생이니까 내가 책임져.
슬램덩크를 보며 시종일관 이 생각만 했다.
내 인생. 4년 만에 처음으로 영화볼 시간을 낸 내 인생. 건강건진에서 이상소견을 담담하게 읽어 내려가는 내 인생. 어린이의 영어유치원 학비 앞에 수없이 고민하는 내 인생. 승진에 사활을 걸지 적당히 뭉갤지 눈치를 보는 내 인생. 엄마와 시어머니 눈치를 보며 아이를 생각하고 또 생각하는 내 인생. 재미없는 인생은 재미없다는 말에 뜨끔하는 내 인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