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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Oh My Today Jan 31. 2023

슬램덩크라는 눈물버튼

산왕이라는 인생 앞에서

그냥 노트북을 덮었다.

지금 안 하면 죽을 것 같이 바쁜 일은 없다. 보고서는 적당히 써뒀고 피드백은 오늘 받으면 적당하지만 내일 한다 해도 대세에 지장은 없다.


두 곳의 극장을 검색했고 사무실을 나가서 택시를 탔다. 휴. 광고가 끝날 무렵 좌석에 앉았다.


이러면 안 되는 거지. 근데 꼭 찍고 싶었다. 1년 후 오늘. 5년 후 오늘. 10년 후 오늘이라며 구글이 알려줄 때마다 아 그렇지 하고 싶었다.


그리고 찍을만했네.

처음부터 울컥했지.


어떤 장면 때문은 아니었다.

그냥 바로 알겠어서.

작가는 인생을 그렸구나.

송태섭의 시각이던 강백호이건 정대만이건.


우리는 산왕이라는 인생 앞에서 죽을 듯 덤벼보다 움츠려 들고 다치고 쓰러진다


한 번. 딱 한 번. 이긴다고 해도 뭐가 바뀌는 갓도 아닌데. 그래도 어쩌겠나. 그게 인생인걸.


3점 슛 빼면 아무것도 아닌 정대만

몸을 던져 흐름을 바꾸는 강백호

지금 이 순간을 기억해 송태섭


산왕은 북산을 엿 먹이려고 플레이하는 게 아니다. 인생은 인생대로 진지하게 플레이하는 거다.


그러니까 요행수를 바라고 움추러들어봐야 그래봐야 내 손해다. 내 인생이니까 내가 책임져.


슬램덩크를 보며 시종일관 이 생각만 했다.

 

내 인생. 4년 만에 처음으로 영화볼 시간을 낸 내 인생. 건강건진에서 이상소견을 담담하게 읽어 내려가는 내 인생. 어린이의 영어유치원 학비 앞에 수없이 고민하는 내 인생. 승진에 사활을 걸지 적당히 뭉갤지 눈치를 보는 내 인생. 엄마와 시어머니 눈치를 보며 아이를 생각하고 또 생각하는 내 인생. 재미없는 인생은 재미없다는 말에 뜨끔하는 내 인생.


지금 우리는 북산이 되어 각자의 코트에서 각자의 산왕과 마주하고 있는지 모른다.

내가 주전이라는 확신은 없다.


내 인생인데도 자꾸 안경선배 정도의 역할만 내 몫인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일단 한 골만. 일단 한 골만 넣자.


안경선배는 대학에 가고 직장에 들어가고 결혼을 해서 아이를 낳아 기르고 있을까.

꼭 한번 만나서 술 한잔하고 싶다.


우리 일단 지금은 한 골만 넣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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