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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신과 창업

우리 아이와 동갑내기, 디어라운드

평범했던 나의 삶을 특별하게 만들어준 우리 아이, 라호는 벌써 22개월이 되어 자기 의지가 생기고, 걸어 다니고 이제 뛰어다니기도 한다. 나무늘보처럼 움직이던 임신 때와 출산 이후의 삶은 너무 분주했다. 자고 먹고 싸고, 자주 컨디션이 들쭉날쭉하는 갓 태어난 아이와 함께 참 열심히도 하루하루를 살아온 것 같다. 2년이 넘어서야 이제야 다시 우리의 이야기를 정리하려 한다.


나는 창업과 동시에 임신을 했다. 정말 어울리지 않는 두 단어, 임신+창업. 보통 임신은 커리어에서 ‘쉬어가는 시기’로 인식이 된다. 대부분 워킹맘을 준비하며, 육아휴직을 통해 삶에도 휴가를 선물 받는다. 도전적인 삶을 추구해서였는지, 내가 사랑한 회사들은 한 명의 일손이 자리를 비우면 누군가 채워줄 수 있는 구조가 되진 못했다. 육아휴직은 나에게 꿈같은 존재였다. 오히려 창업을 하고 나니 자유로운 업무환경이 임신을 해도 해볼 만하겠는데 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조직생활의 스트레스가 사라지니, 창업 후 해야 할 일이 늘어도 건강한 상태였다. 

하지만 임신은 정말 힘겨운 시기였다. 성인이 되면 보통 자기 컨디션을 어떻게 관리해야 최상의 몸상태가 되는지 알게 되는데, 임신 중 컨디션은 예상이 되지 않았다. 제어가 안 되는 요소가 외부요인이 아닌 "내"가 되었다. 


처음엔 커다란 혼돈 속에 있었다. 사업을 모르니, 더더욱 제대로 시작해야 한다며 법인을 일찌감치 내놓은 상태였고, 하루하루 사무실 비용도 지불되고 있었다. 거기에 더해 자궁암이 의심된다며, 임신 중 개복을 해야 한다는 의사의 이야기까지 더해 정말 힘들어지는 순간이었다. 2주의 검사시간 동안 삶이 정지되어 있었다. 오히려 이 시기를 겪고 나니, 내일을 알 수 없다면 더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해야 하는 것이 아닌가 라는 확신이 들었다. 이미 나는 창업의 매력에 빠져있는 상태였다.


우선 공간의 변화를 먼저 주었다. 스타트업이 모여있는 위워크 공간은 너무 빠르게 돌아가 내게 너무 버거운 공간이었다. 휴식과 네트워킹을 중요하게 여긴 좋은 인테리어의 업무공간도 임산부에게는 좋지 않았다. 오히려 제대로 쉴 공간조차 없이 숨이 막힌다고 할까? 갑작스럽게 변하는 컨디션에 따라 쉴 수 있도록 휴식이 주목적인 공간이어야 했다. 집이야말로 임산부가 일할 수 있는 최적의 공간이었다. 유연한 시간관리가 가능하니, 잠이 오면 자고, 쉬고 싶으면 쉬었다. 컨디션이 회복되면 목표로 설정되어 있는 일을 했다. 본격 2018년 6월부터 재택근무를 진행하게 되었다. 1 평남 짓 나의 일할 공간을 부여하고, 만들어내는 일은 꼭 그 자리에 앉아 진행했다.


그리고 삶의 속도를 조절했다. 창업 후 주말 없이 일을 해왔었는데, 평일에도 일할 수 없는 시간이 더 많아졌다. 다시 말하자면 만들어내는 일을 적게 해야 했다. 하루빨리 MVP를 만들고 시장에 내보이고 싶었는데, 그 전략은 나에게 맞지 않았다. 이과정에서 "생산물"을 만들어내는 일을 줄이고, "생산물"에 대해 생각하는 일을 늘렸다. 쉴 때 생각의 폭을 늘릴 수 있는 오디오북을 틀어두고 들었다. 산책을 하며, 아이 옷을 정리하며 듣는 오디오북은 많은 인사이트를 주었다. 사람을 만날 수 없었지만, 책을 통해 더 많은 사람을 만났다. 인사이트가 생기면 바로 창업아이템과 연결 지어 고민하게 되었다. 손은 느려졌지만 머리는 빨라졌다. 이과정을 통해 직장인에서 기업가로 모드 전환을 할 수 있었다. 


급한일은 하지 않고, 중요한 일을 했다. 엉덩이를 붙이고 만드는 일을 할 수 있는 시간은 고작 하루 4시간! 그때 들어둔 습관이 지금 22개월 아이를 키우면서도 아주 유용하게 사용되고 있다. 지금도 해야 할 일을 목표에 맞게 적어두고, 데드라인까지 구글 캘린더에 적어둔다. 그리고 모든 해야 할 일을 다 잊고, 그 날 하루를 살아간다. 그러면 해야 할 일은 산더미지만, 하루하루 투두 리스트를 해나가다 보면, 이걸 어떻게 하나 하는 것들이 이뤄져 있었다. 업무에서 급한일은 미처리로 남는 경우가 많았고, 중요한 일들 중심으로 일을 해나갔다. 급한일은 언제나 임신과 육아는 돌발상황들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 아이가 100일도 안돼서 요로감염으로 응급실을 가게 되어 2주간 일상이 사라졌었다. 아이의 건강관리는 나의 1순위 급한일이다.


전폭적인 지지를 해주는 파트너는 필수 조건이다. 가장 큰 힘을 주는 사람이 저희 남편이었다. 임산부일 때 특히  내가 너무 유난을 떠나 라는 생각이 들고, 수많은 도전에 실패해도 다시 도전할 수 있는 것은 모두 남편 덕이다. 그 당시 들었던 이야기가 "현주야 할 수 있어. 이것도 해바. 실패해도 괜찮아. 다른 거 해보자."였다. 그리고 나와 비슷한 꿈을 가진 커뮤니티를 만났다. 구글 엄마를 위한 캠퍼스를 통해 엄마 창업가를 만나 힘을 얻고, 여성 디자이너의 소셜클럽 FDSC를 통해 열정 가득한 젊은 디자이너를 만나 자극을 받는다. 조직생활을 하지 않아도 내가 나라는 존재로 사람들과 연결되어 있음은 정말 큰 힘을 준다.


VC 시장에서 여성 대표의 임신이 리스크라고 말하기도 한다. 그런데 나는 어떻게 이 기간을 지나왔을까? 그런데 반대로 왜 임신이 리스크일까. 임산부를 대상화해서 보기 때문에 생기는 편견이 아닐까. 나의 임신기는 창업과 나의 인생에 있어 아주 중요한 전환점이 되는 시기였다. 타인의 돌봄이 필요한 나의 고객을 이해할 수 있었고, 보호자를 더욱 이해할 수 있었다. 


임신은 나에게 창업이 혼자 달린다고 될 수 있는 일이 아니라는 것을 더욱 체감하게 해 준 시기였다. 그리고 눈앞의 일에 급급해하던 나에게 긴 호흡으로 더 중요한 일에 매진하게 해 주었다. 어떤 변화가 오더라도, 나를 발견하고 성장시키는 나의 일을 포기하지 않고 나아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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