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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마리아 Jan 09. 2020

 마이 럭키 버쓰데이 (1)

    별자리 상담소 사마리아의 아주 특별한 인생 설계법 (1) - 서문

사마리아는 10여 년간 상담 테이블에 마주 앉은 3만여 명의 인생을 설계해왔다.

그들은 돈에 대해서, 사람에 대해서, 사랑에 대해서 어떻게 할 것인가를 물었고,

그들은 저마다 화가 나 있었고,

그들은 각자의 화를 어떻게 풀 것인가를 따지며 자신의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인가를 고민하고 있었다. 갈팡질팡, 해결책을 찾지 못해 삶의 미로 迷路 에 멈춰 선 인생에서 어떤 문제를 해결할 때는


지금 이 순간 내 삶의 방위 方位를 짚을 수 있어야 한다.

내가 태어나 최초로 인식한 삶의 방위는 내가 태어난 바로 그 순간

즉 나의 생년월일과 나의 태어난 시각이 바로 내 방위의 좌표일 것이다




길을 잃었을 때 내비게이션을 꺼내어 들고 가야 할 방향과 위치를 찾아보듯, 인생의 길을 잃었을 때 우리는 자격 검증 시스템을 찾거나 종교의 힘을 빌리거나 주변의 성공한 인물의 일대기를 검색한다. 또한 하나의 은밀한 방법으로 우리는 신神의 기운을 감지한다는 점집을 찾기도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마리아의 오랜 상담의 기록지를 회고해보건대, 모든 사람들은 대체적으로 자기 안에 자기가 찾아야 할 방위를 어렴풋이 알고 있었다. 사람이 동물이 아니라 인간인 이유는 비를 피하기보다는 비에 맞서기 위한 우산을 개발해 내는 자생력을 가졌기 때문이다.

인간은 어떻게 해서라도 살아날 길을 찾게 되어 있으며, 인류의 역사란 인간이 어디로 나아갈지 어느 지점에서 멈춰야 할지를 예감하는 예측 본능에 의해 만들어진다.

이 책을 읽으려 하는 당신, 당신은 이미 당신을 잘 알고 있다. 다만 자신이 나아가야 할 정확한 방향과 자신이 서 있어야 할 미래의 확실한 위치를 “의심” 하고 있는 것이다. 아무것도 모르면 걱정도 없다. 앎이 있기 때문에 불안한 것이다. 세상의 모든 존재는 맞서 있는 문제 앞에서 일정한 각도를 갖고 있다. 




각도 角度 란 무엇인가?

하나의 점에서 갈리어 나간 여러 직선의 벌어진 정도를 말한다

지금 당신의 위치를 하나의 점이라고 한다면

당신이라는 점은 여러 개의 목표를 보며 어떤 길을 가야 할 것인지에 대해 갖가지 상상의 각도

즉, "생각"을 벌리고 있다


수레바퀴의 모습을 상상하여 보라

가령 별 생각이 벌어지지 않을 때는 1도, 적당히 벌어지면 90도, 많이 벌어지니 180도,

마침내 완전히 벌어진 생각의 각도가 360도이다

원운동을 하며 완전히 벌어진 생각의 동그라미는 다시 한번 의심한다

내 운명의 수레바퀴는 잘 돌아가고 있는 것일까?


별들은 각자 일그러져 있지만 360도 각도의 회전을 하며 원형이 된다. 인간의 생각이라는 것도 처음엔 여기저기 기웃기웃 하지만, 시간을 들여 생각을 빙글빙글 돌리면 하나의 결심이 완성된다.

당신이라는 점을 중심으로 당신이 가야 할 방향과 위치를 벌리다 보면 360도의 각도를 만들며 당신이 가고 싶은 세상이 마무리되는 것이다. 그러니까 삶의 각도의 중심에 당신이라는 점이 있다.  


세상은 당신이라는 점으로부터 출발한다. 당신의 소소한 점 하나로부터 당신의 세상이 시작하는 것이다. 지금 이 순간 당신이 가장 궁금해하는 점은, 바로 당신 자신이다.

당신이 없다면 세상도 없고, 걱정도 불만도 없다면, 당신에겐 생각도 없다.

 '나'가 있기 때문에 세상이 있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그래서 당신은 오직 ‘나’를 생각해야만 한다. 생각할 것이 너무나 많을 지라도 가장 처음엔 ‘나’부터 생각해야 한다. ‘나’의 중심이 세상의 중심이며 나는 이미 나를 잘 알고 있다.  



우주는 단 하나의 점에서 갈리어 나간 수억의 빛으로부터 벌어진 원형이기에 단 하나의 존재가 없다면 빛도 어둠도 세상도 없을 것이다. 완전한 인생이란 것은 ‘나’라는 하나의 점에서 쏘아 올린 수많은 빛의 완전체인 것이다. 인생의 방위라는 것은 결국 애초에 당신이 벌인 생각으로부터 확장된다.

그러므로 ‘나’는 내가 어디로 가야 할지, 어느 위치에 도착해야 할지 어느 정도는 이미 알고 있다. 단지 이 책을 통해 사마리아가 당신을 위해 도울 수 있는 일이란,

당신이라는 그 점으로부터 출발하는 직선의 빛이 어느 정도의 각도로 벌어져 있는지, 얼마만큼 더 생각하면 당신의 세상이 하나의 동그라미로 완성될지에 관한 여정의 지도를 읽어주는, 내비게이션의 내레이터 역할일 것이다.


이 책은 당신이 궁금해하는 삶의 방향과 위치에 관한 스마트한 환경설정이 될 것이다. 사마리아의 스토리텔링은 당신이 걸어가야 할 인생행로 길의 제스처를 돕고자 한다. 안전벨트를 매세요, 과속을 주의하세요, 주변에 단속구간이 있어요, 근방에 장애물이 있어요, 목적지에 도착했어요, 그리고 고생 많았어요. 가장 흐릿한 빛 속에 가장 명료한 점이 숨어 있다. 가장 크게 바라보는 공간 속에 가장 핵심의 시간이 있다. 가장 불확실할 때 가장 확실한 길이 펼쳐지기 시작한다.  



사람들은 대체적으로 운명론을 불신한다. 그 불신의 정체는 무엇보다도,

어떻게 한 개인의 독자적인 개성을 태어난 생년월일과 태어난 생시만으로 소거 消去 하여 설명할 수 있는가에 관한 의문일 테다. 그러나 원시부족 국가 시절의 이야기까지 내려가지 않고 예수님 탄생 이후로, 가령 2020년이라는 해年는 이천이십 분의 일의 가능성이다.


즉 당신이 태어난 해는, 인류의 역사 이래 너무나 희귀한 숫자의 가능성이 되는 셈이다. 하물며 2020년 하고도 1월 1일의 자정 1시에 출생한 사람의 탄생의 확률이란 도대체 얼마나 희귀한 순간인가 말이다. 손가락 열개로 모든 경우의 수를 소거 消去 하는 것이 일(一)진법이듯, 한 개인의 생년월일과 생시는 한 개인이 살아가는 100년의 모든 불필요한 미지수와 공백수를 제거하여 압축한, 가장 단순 명료한 프로세스이자 코드명(code name)이다.



한 사람의 태어난 코드명으로 인생의 방위를 가늠하는 별자리와 사주명리에 대한 불신의 또 하나의 이유는, 똑같은 생년월일과 생시를 가진 사람들이 저마다 다르게 살아가는 상황을 따져 묻는 경우이다. 물론 그렇다. 사마리아와 똑같은 생년월일과 생시를 가진 누군가가 있을 때, 그가 사마리아처럼 운명론을 직업으로 삼을 것이라 주장할 수는 없다.


하지만 사마리아와 똑같은 별자리 구조와 사주팔자 기둥을 가진 누군가가 있다고 가정할 때, 그가 사마리아처럼 서울시 마포구 신촌로터리에서 별자리 상담소를 운영하며 살지는 않겠지만,

그 역시 인생을 살면서 특정한 사람에 대해 독특한 인연이 있고 특정한 사람으로 인해 예기치 못한 축복이 있으며 특정한 사람을 만나면서 우연히 새 삶을 찾게 되는 동시성은 반드시 발생한다. 이것이 바로 인류의 개체 집합 속에 숨은 질서, 즉


‘자기 유사성’이다. 사마리아의 생년월일과 생시는 ‘사람’의 테마를 갖고 있다. 그러므로 사마리아와 똑같은 탄생의 방위를 가진 누군가도, 그가 어디에서 무슨 일을 하건, 삶의 중요한 순간에 나타난 ‘그때 그 사람’ 이 인생을 좌우하는 키워드가 될 것이다.




인류 역사의 배후에 숨어있는 상관 질서를 연구하는 운명론의 본질은 누군가의 지금 이 순간을 1초 2초 3초 판박이처럼 본뜨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그가 태어난 순간의 좌표를 참작하여 앞으로 살아갈 삶의 방위를 미루어 짐작해보는 것이다.

인천 공항을 빠져나오는 누군가의 가방으로부터 묻어온 한 알의 모래알을 검사하면 그 가방이 호주의 어느 사막으로부터 건너온 것임을 알 수가 있다고 하는 프렉탈 fractal이론에 대해서 알고 있는가? 이 책을 읽을 당신에게 나는 이와 같은 ‘미루어 짐작하기’의 방법을 권한다.


나의 소중한 1초는 나의 다가올 1시간을 상징하고, 나의 쓸쓸했던 1개월이 나의 다가올 고독한 1년을 상징하며, 나의 뿌듯했던 10년이 나의 100세 시절의 모델하우스를 상징한다고 생각하는 사고방식이 필요하다. 즉 하찮아 보이는 나의 매 순간이야말로 내 인생 전부의 시간을 대표하는 것이다. 시간을 소중히 다루지 않는 사람은 자신의 삶을 지킬 수 없다. 시간을 압축하여 절묘하게 다루는 사람은 자신의 삶을 지킬 수 있다.




가령 A와 B가 2020년에 태어난 것만으로도 두 사람은 인류 역사의 매우 희귀한 확률, 즉 1/2020에 올라탄 운명 공동체이다. 미래의 A는 CEO가 되고 미래의 B는 건설노동자가 될지라도, 이들은 2020년 경자년 庚子年이라는 태생의 상징을 운명의 DNA에 공통으로 깔고 살아갈 것이다.


庚子, 쓸데없는 것은 버리고, 나에게 가장 중요한 한 가지를 남몰래 거머쥐는 사생결단. 그런데 사생결단의 의미를 A는 탐욕과 허영을 위해 생활의 책임을 던져버리는 것에 쓰고, B는 새로운 직업의 세계를 구축해나가는 도전 정신으로 쓴다면 두 사람의 인생의 각도는 너무나 달라질 것이다.


똑같은 탄생의 방위를 가졌다고 하여도, 누가 자신의 삶의 의미를 욕구 해소 쪽으로 쓸 것이고, 누가 직업의 세계를 발전하는데 쓸지는 별자리와 사주팔자 기둥에 일절 나와 있지 않다. 역설적으로 인간이 스스로 선택할 수 있는 단 한 가지는 ‘태도 attitude’이다. 그렇지만 연마하고 연출하는 것만으로는 삶의 태도가 만들어지지는 않는다. 한 생명이 한 존재로, 사람으로 태어난 최초의 이정표가 무엇인가? 바로 그의 생년월일과 생시일 것이다. 사마리아는 이 책을 통해,  삶의 미로를 헤매는 불확실한 상황에 처한 독자들에게, 생년월일과 생시라는 삶의 방위로부터 가야 할 곳이 어딘지 확실히 알고 출발할 수 있는 태도의 이정표를 제시할 것이다.



현대인들은 대체적으로 자신의 생년월일과 태어난 시각에 무심하다. 나이의 경계가 허물어진 현대 사회에서 생일의 가치는 애정 고백을 받기 위해서나 친구와 가족의 유대관계를 다지기 위한 생일 파티를 위해 일 년에 한 번 정도 기억될 뿐이다. 또한 종교적 이유로 인해, 혹은 가족이 뿔뿔이 흩어진 아픔 때문에, 심지어는 원만한 사회생활을 위해 자신의 생일을 의도적으로 지워버리고 살아야 하는 사연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현대인들에게 생년월일과 생시 관련한 탄생의 기록이 홀대받는 또 한 가지 이유는 별자리나 사주명리 등 운명론을 직업으로 하는 분의 건강하지 못한 가치관과 미성숙한 상담 실력 탓이 크다.  


전문적인 직업이나 기술을 가진 사람을 ‘장이’라고 한다. 또한 사람의 특이한 성질이나 행동을 일삼는 사람을 ‘쟁이’라고 한다. ~장이, ~쟁이라고 불리는 것에 대해 한국 사회에서의 인식은 그다지 존경스러운 종류의 것이 아니다.

그리하여 소위 ‘점쟁이’라는 호칭에서 주는 콤플렉스를 극복해보고자, 사주명리나 별자리로 사람의 운명을 감정해주는 직업을 가진 분들에 의해, 태어난 생시의 1분 1초의 오차까지 거론하며 마치 대단한 인문사회과학적인 척, 까다로운 공식과 이론을 남발하며 학문 중의 학문이라 사칭하려는 경향이 있다.


오해하지 마시라. 작정하고 함부로 타인의 운명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인문사회과학적인 척을 하며 이야기하는 것보다는, 차라리 쌀을 던지거나 구슬을 굴리거나 아카시아 이파리를 떼어가며 하루의 일진을 점치는 것이 훨씬 더 적중률이 높을 수 있다. 어차피 결과는 사느냐 죽느냐, 돈이 되느냐 꽝이 되느냐, 혹은 yes Or no 일 뿐이니까.




모든 합리성은 모든 엉터리에서부터 출발했다. 모든 과학은 모든 비과학으로부터 탄생했다. 과학의 어머니는 과학이 아닌 모든 것이며, 과학의 아버지는 과학이 풀어낼 수 없는 미지 未知 의 모든 것이다. 사주명리와 별자리는 정답을 찾는 것이 아니라, <정답, 그 이상의 것>이다. 


사람의 운명은 정확하게 딱 나누어 떨어지는 유리수도 아니고, 나누어도 나누어도 딱 떨어지지 않는 무리수도 아니다. 점쟁이를 찾아다니는 분들도 마찬가지로, 태어난 생시의 1분 1초를 따지고 다투어 가며 점의 결과로 자기 인생에 무언가 큰일이 생길 것을 기대하거나 염려하지 말라. 매일의 습관이 좋고 매일의 시간을 아끼고 매일의 계획에 충실한 사람은 점집을 쇼핑하러 다니지 않는다.


아내가 가사를 돌보느라 지쳐 있으면 퇴근 후 저녁밥을 스스로 차려 먹으면 되고, 지금 한창 겨울인데 비키니 수영복을 입고 거리를 활보할 필요가 없고, 지금 한창 여름인데 모피코트를 꺼내어 입고 겨울을 준비할 필요도 없다. 운명 앞에서, 혹은 운명론을 대하는 태도는 어디까지나 소박해야 한다.


삶은 그다지 괴상하거나 심각한 것도 아니고 그다지 화려하거나 박진감 넘치는 것도 아니다. 문제는 상식(常識, common sense)이다. 상식대로 살면 인생의 대부분 문제들이 풀린다. 그러나 대다수의 인간은 상식을 무시하고 경멸하면서 상식 대로 살지 않는다. 상식 대로 살지 않으면서 상식 그 이상의 버라이어티 한 삶을 고대한다.


물론 이유가 있다.


극단으로 개인화된 초고도 자본주의 사회에서 상식을 지키며 산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쉬운 일이 아니다.

국가와 사회가 권장하는 상식은 이제 더 이상 개인의 상식이 될 수 없다.

예를 들어 한창 여름인데 할인된 가격으로 모피코트를 살 수가 있고 한창 겨울인데 보일러를 틀고 속옷만 입고도 잠을 잘 수가 있게 된 과학문명의 발전으로 인해 인간은 계절의 상식을 잃었고,

노력과 성실함만으로는 살아갈 수 없게 된 여러 차례의 산업혁명으로 말미암아 인간은 스스로의 힘으로 진보하는 생활의 상식마저 빼앗기고 말았다.


상식대로 살 수 없기 때문에 인생의 방위를 잃고 매일의 요행수를 바라며 매일의 폭락장을 맛본다. 초고도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개인의 처한 입장에 따라 상식의 기준이 달라진다. 누구에게는 이것이 상식인데, 또 다른 이에게는 그것이 터무니없는 상식일 수가 있다.


삶의 이정표를 잃는 가장 첫 번째 원인 제공처는, 무엇보다도 나의 상식과 너의 상식이 다르고,  내가 살아야 할 세상과 우리 모두 함께 살아야 할 세상의 상식이 다르다는 데에 있다. 사주명리와 별자리가 문제가 아니다. 나의 생년월일과 생시가 하필이면 재수 없어서도 아니다. 내 팔자가 개 팔자보다 못해서도 아니다.

상식이 문제다.




사마리아는 10년간 상담 테이블 앞에 앉아 삼만 명이 주장하는 삼만 개의 상식과 싸워왔다. 그리고 나에게도 상식이란 것이 있으며 내가 생각하는 상식과 내담자의 상식은 매우 달랐다. 작금의 상식은 결코 인과론으로 설명할 수 없다. 착하게 살면 상을 받고 나쁘게 살면 벌을 받는 것은 작금의 상식이 아니다. 시키는 대로 열심히만 살면 인생이 풀리던가? 이 악물고 노동자로 살았더니 근속자가 되던가? 물심양면으로 돕던 남자가 당신을 사랑하던가? 순정을 다 바쳐 아껴주던 여자가 당신을 택하던가?


다시 한번, 상식이란 무엇인가?


작금의 너와 내가 하루빨리 깨우쳐야 할 상식이란 다음과 같다. 물심양면으로 애정을 퍼부었던 남자도 다른 여자를 사랑할 이유가 있고,

순정을 다 바쳐 보살피던 여자도 다른 남자를 사랑할 권리가 있고, 30년을 근속해도 30분 만에 터무니없이 앉은자리를 빼앗길 수가 있고,

내 뱃속으로 나은 자식이 나의 작은 실수를 빌미 삼아 경찰에 고소고발을 할 수도 있고,

기부 천사도 갬블러의 늪에 허우적 댈 수 있고, 불신 지옥도 자살을 기도하는 한 가녀린 소녀의 구원처가 될 수 있는,


이러한 말도 안 되는 어처구니없는 사건들이야말로 바로 삶의 이정표를 잃은 살벌한 세상의 엄연한 상식임을 받아들여야 하는 것이다. 예측할 수 없었던 일들이, 나의 예측을 가볍게 건너뛰는 것, 예측할 수 있었던 일들이, 나의 예측을 손쉽게 짓밟는 것, 이것이 바로 작금의 적나라한 상식이다.




각도 角度 란 무엇인가? 하나의 점에서 갈리어 나간 여러 직선의 벌어진 정도를 말한다. 나는 나의 좌표에서 태어났다. 너는 너의 좌표에서 태어났다. 우리 모두는 각자의 좌표에서 태어났다. 우리는 처음부터 태어난 지점이 다르다. 이것이 상식이다. 따라서 서로의 세상을 보는 상식은 다를 수밖에 없다.


즉 서로의 세상을 보는 상식은 같을 수가 없다. 나에겐 나의 상식이, 너에겐 너의 상식이 있음을 분명히 인정하는 것이 상식이다.

아무리 서로에게 최선을 다한다고 하여도 나와 너는 이미, 같은 곳을 동시에 볼 수가 없는 좌표를 갖고 이 세상에 태어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코 나를 배신하지 않는 상식이 하나 있다.

그것은 오롯이


내가 처음 출발했던 바로 그곳, 내가 태어난 좌표의 나 자신이다. 인공지능이 수천만의 노동력을 대신하는 시대에 살아가면서, 나조차 나를 의심하면 이 세상에 내가 써먹을 수 있는 상식은 없다.


내가 나를 방치하면 이 세상에 믿을 만한 상식이 없다. 삶의 시공간 속에서 절대 부정하거나 지워질 수 없는 최초의 상식은 내가 태어났던 그 순간과 그 공간이다. 최첨단 인공지능 시대에서 살아남을 단 하나의 상식은 어쩌면, 가장 원시적인 인류의 태초의 방위에 위치하고 있을 수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나의 생년월일을 알고 있다는 자체만으로도 정말이지 감사해야만 한다. 내 인생의 첫 좌표를 알지도 못한 채 숨을 거두는 생명들도 이 지구 상에 너무나 많은 것이다. 생년월일과 생시까지는 모른다고 해도, 적어도 나의 태어난 해라던가 내가 태어난 계절 정도만 알고 있어도 나는 내 인생의 첫 좌표를 가진 셈이니 그것 만으로도 내가 태어난 순간은 참으로 복되다.




자, 그렇기 때문에 사주명리와 별자리 등 운명론을 직업으로 가진 사람들이 내담자의 생년월일과 생시에 관한 스토리텔링을 할 때도, 다시금 인류의 최초의 상식에 대해 공부해야만 한다. 현상의 움직임을 설명하기 위해서 사용한 인간의 손가락은 열 개다. 태양의 움직임을 관찰하기 위해서 사용한 인간의 공간은 4 쿼터(동서남북)이다. 계절의 변화를 감지하기 위해서 사용한 인간의 시간은 4 절기(봄여름 가을 겨울)이다. 생존을 위해 외부 환경 변화를 기록하던 태초의 인간의 손에는 스마트폰이나 만세력이나 별자리 차트가 쥐어져 있지는 않았을 것이다.


세상의 흐름을 예측하기 위해 강물을 건너며, 불을 피우고, 땅을 파내며, 나무를 심고 열매를 캐내던 인류의 조상은, 낮과 저녁을 기다려 밤과 아침이 들락날락 거리는 일상의 간격을 가늠하며, 자신의 삶에서도 오늘의 태양이 지면 내일의 태양이 뜨리라는 흥망성쇠의 지도가 있음을 알게 되었을 것이다.


나의 100년의 시간은 나의 하루이기도 하다. 나의 하루는 나의 100년을 암시한다. 나의 10년의 시간은 나의 아침이기도 하다. 나의 아침은 나의 10년을 예고한다. 천문 天文 을 보는 상식은 지극히 소박해야 한다. 태초의 인류의 조상이 순간의 하늘을 바라보며 천년의 할 일을 가늠했던 것처럼, 태어난 해와 태어난 계절, 혹은 태어난 날짜와 태어난 시각만으로도 한 사람의 삶의 방위를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막무가내인 어린아이들에게도 설득이 가능하며 어르신들의 닫힌 마음의 문도 활짝 열게 할 수 있는, 아주 쉽고 단순한 운명론의 이론이 필요하다. 세상을 아우르는 진리는 반드시 쉽다.




사마리아의 아주 특별한 인생 설계법, < MY LUCKY BIRTHDAY >는  독자의 태어난 해와 계절과 날짜, 그리고 태어난 시각을 스스로 찾아 풀이하는 최초의 원시적인 상식을 알려주고자 한다.

사마리아가 주장하는 역학론의 상식은 국가와 사회가 권장하는 상식도 아니고, 부모님과 배우자가 강요하는 상식도 아니며, 자식과 친구들에게 강요할만한 상식도 아니다.

이 책의 내용은 오직 '나'를 위한 상식의 데이터가 될 것이다.


그리하여 복잡하고 난해하기로 소문난 사주명리와 별자리의 불필요한 이론을 모두 소거하고, 알아들을 필요도 없을 쓸데없는 전문용어를 함부로 접붙이지 않으려고 한다.  10 천간 12 지지 12 운성 12 신살 등을 동원하여 사주팔자의 기둥을 세우지도 않을 것이고, 10 행성과 12 sign 및 12 House를 비롯한 별들의 진행형 해석 progression interpretations에 대해서도 일절 거론하지 않을 것이다. 초등학생 정도의 연령이 되면 누구나 자신의 생년월일과 생시의 조건에 따라 자신의 삶의 방위를 찾을 수 있도록 할 것이다.


사마리아는 이 책을 쓰면서 신난다. 신이 나 있다.

이것이야말로 운명을 논하는 글쓰기의 매력이다.


점성술의 디그니티와 어스펙트를 논하는 모든 형체 없는 도식이 언어화되고, 사주팔자를 구성하는 모든 글자가 문장의 기승전결이 되며, 미래를 예고하는 모든 형충파해합이 스토리의 소재가 되는. 사마리아의 운명론은 이야기 책이며,  이 책을 읽는 누군가에게는 태어난 출생기록을 바탕으로 하는 소중한 자본이 될 것이다.


또한 생년월일과 생시를 몰라서, 그 흔한 점집 한 번 못 가본 독자들을 위해 사마리아는 이 책을 쓰려고 한다. 태어난 해만 알아도 이 책을 읽을 수가 있다. 혹시 그것도 모른다면 태어난 계절만 알아도 된다. 행여 그것마저 알 수 없다면 자신의 직업과 관련한 본문의 내용을 읽으면서 자신의 태어난 시각을 확실히 유추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이거니와 이 책을 읽는 독자는 자신의 태어난 조건의 원시적인 상식뿐 아니라, 주변 사람들의 태어난 조건의 상식을 파악할 수 있을 것이다. 이웃의 태어난 하늘을 보는 자는 밥 굶을 일 없다고 했다. 이웃과 함께 먹고살자고 하는 공부에 학문의 귀천은 없다. 지피지기면 백전백승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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