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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건방진 백조 May 31. 2022

어른이 되는 시간

 6월의 성인식


십자가에 못 박혀 계신 커다란 예수님이 점점 작아지시면서.... 꼬마로 보인다.

푸근한 아빠 곰 같은 까만색 신부님은 검은 약콩 사이즈가 되시다가 기어이 점점… 점. 이 되는…


부르르~:::::

몸을 떨며 번쩍 깼다.


오늘은 그러니까 3번째 베지밀을 받는 날이었던 거다.

가톨릭의 출생신고라 할 수 있는 세례성사를 받은 지 10년여가 훌쩍 지난 시점,

가톨릭의 성인식이라고 할 수 있는 견진성사를 받기 위해 가린이(가톨릭 어린이, 이 글을 위해 지음)는 장밋빛 Spirit의 약발에 취한 1번째, 2번째 견진 교리 강의 이후, 한껏 들뜬 채. 입구에서 수녀님이 주시는 꼬소한 베지밀을 안고, 강의 시작 30분 전부터, 이보다 더 Holy 하게 앉아 있을 수 없다 … 가, 부르르:::::


수면제 가루를 뿌리다 못해 들이부어

온 성당을 잠자는 수영장을 만들어 놓으샤, 어푸어푸 헤엄의 현장을 만드신 신부님은 영성 강의 중이셨다. 지금 안 조시는 분은 이미 많이 주무시고 오셨거나, 배가 무지 고프다거나 둘 중 하나일 거라 생각하며,

살짝 안 존 척. 고개를 왼쪽으로 비스듬히 기울이면서 앞쪽 열에 나와 같은 동지가 는지 살펴보았다.


거친 바다의 풍랑을 만나 좌초하는 배처럼 이미 좌현은 떨궈져 보이지도 않고 (왼쪽 어깨), 배의 끝부분이 삐죽이 솟구쳐(오른쪽 어깨) 가까스로 보이는. 흰 빠마머리 할머님의 뒷모습이 보였다.
심지어! 맨 앞줄!


왠지 모를 안도감이 생겨버린 그 이후로 '꼬마 예수님, 검은 약콩 신부님, 뒤꽁무니가 들린 아담한 흰 쪽배 할머님'의 뒷모습이 내 눈앞에 '보였다 - 안보였다'를 반복하다가 2시간이 흘렀다. 부르르::: 떨며 일어나 신부님께 박수치고 나오니 밤 10시 10분. 마중 인사를 나와 계신 주임신부님과 수면 강의를 해주신 검은 약콩 신부님께도 엄청 공손하게 인사를 하고 황급히 나오다가, 가던 길을 갑자기 멈춰서는 한 분과 하마터면 부딪힐 뻔했다. 다들 서둘러 집에 가느라 종종거리고 있는데, 성당 입구의 예수님 상에 인사를 하시느라 멈추신 것이다. 너무 현대적 조형물로 만들어져서 도저히 예수님 같지가 않아 나도 건성으로 인사하곤 했던 예수님 상이었다.


구부정한 어깨에, 작고 왜소한 체구.

연핑크색이 바랜, 다소 두툼한 야구 면 잠바에

발목 시보리가 잡힌, 품이 낙낙한 몸빼바지.

사이즈가 맞지 않아 헐떡거리는, 뒷굽 부분의 진한 보라색이 눈에 는 까만 끈 운동화.  


그분은 바로.

맨 앞열에서 좌초하던 작은 쪽배.

흰 빠마머리 할머니 자매님 이셨다.


혹시나 졸다가 넘어지실까 봐, 아니 사실은 궁금해서. 보도블록 길 '뒤에서, 그리고 반대쪽 옆길 저만치에서' 나란히 보조를 안 맞추는 척하며 걸었다

바지 호주머니에 양손을 찔러 넣고, 헐꺼덕 거리는 운동화를 질질 끌며 재빠르게 걸어가시는 모습이 (그 언발란스함이) 달밤에 약간 묘하게 힙해 보였다.

얼마 되지 않아, 할머니 자매님은 철거예정 건물이 늘어선 좁은 골목 안으로 들어가셨다.

양손을 주머니에 꽂은 채, 홀로 어둠 속으로 사라지는 할머니의 뒷모습.  

헐커덕 헐커덕 소리가 점점 멀어지더니, 할머니는 금세 검은 밤빛과 하나가 되었다.


달밤 빛 맞으며, 집으로 걸어오면서.  

할머니 자매님이 만나고 계신 하느님은 어떤 분이실까? 생각해봤다.

견진성사를 받고 싶은 생각은 왜 드셨을까?

가톨릭은 그분께 어떤 의미이실까?


나는? 나는 어떻지?

5월을 알차게 보내고 싶어 뭐라도 하자는 생각으로. 다시금 어른이 되는 이 기회를 잡은 걸까? 아니 고작 그 이유라고? 그동안 견진성사를 받으려는 노력을 안 해온 것도 아니잖아. 늘 교리 강의 시작 시기와 타이밍이 안 맞았던 거지.

이제야 견진 교리를 받고 있는 나를 합리화하며, 투닥대며 집에 왔다.


분명, 무언가. 확실히, 더 큰.

어떤 것이 있는 것만 같았다.


나는 성년의 날을 일본에서 맞았다. 잠시 어학원에 다닐 때였는데 이벤트의 하나로 기모노를 입고 친구들과 사진을 찍었던 것 같다. 무슨 선물을 주고받았는지도 기억이 가물가물한 것을 보니 특별하게 각인된 날은 아니었고, 그저 깔깔 웃었던 것 같다.


다시금 어린아이가 되어, 새로워질 수 있는 나를 느꼈던 것은 '세례식'이었다.

복음, 좋은 소식을 전하는 사람이라는 뜻을 가진 에반젤리나가 내 세례명이다.


집안일에 개인사까지 시련의 스토리를 줄줄이 사탕처럼 달고, 폭풍의 계절 속에서 허우적대던 그때. 하느님과 예수님은 나의 가장 좋은 친구셨다. 슬픔에서 벗어날 유일한 빛이었다. 그렇게 든든한 빽을 믿고, 새 기분으로 희망의 페이지들을 쓰려 노력했었다. 방황할지언정 포기하지 않겠다고 다짐하는, 건강한 정신의 나도 함께였다.

작은 형제회 수도원의 떼제(Taizé : 프랑스 수도회. 교파를 초월하는 기도 양식이자 공동체 이름) 기도모임에도 참석해보고, 성가곡을 주구장창 듣고, 주일 미사 참석도 착실히. 포스트잇에 생각날 때마다 기도를 적고. 박완서 님의 묵상집과 공지영 작가의 수도원 기행, 외국 신부님들이 쓰신 꽤 많은 수의 좋은 책을 읽으며 하느님을 만났다.


글라라 대모님과 충남의 청양 다락골성지에 갔던 것도 한창 하느님깊이 의지하며 지내던 때였다. 한국인으로서 두 번째 신부셨던 최양업 신부님과 아버지 최경환 성인이 태어난 새터 성지와 무명 순교자들의 무덤이 줄지어 있는 줄무덤 성지가 있는 숲 속의 아주 고즈넉한 곳으로 기억한다.


소성당에서 주일미사를 보았는데 밭일을 하다 오신 건지 미사 시간 바로 전에야 사제복으로 갈아입으시던 신부님 모습이 꽤나 인상적이었다. 다소 무뚝뚝하고 투박스러운 신부님이 강론 시간 끝 즈음에 정확한 질문은 기억나지 않지만. ‘신앙이 뭐라고 생각하느냐’ 고 물으셨다. 모두 잠자코 있자, ‘나를 알아가는 과정’이라고 말씀하신다.  


‘띠요옹~ 뭐라고요? 신부님? 하느님, 예수님을 더욱 알아가는 것이 아니라, 나? 나요? 나를 알아가는 것이라고요? 모든 것에 우선시되어야 하는 그분을 더 공부하는 것이 아니라 나를 찾는 거라고요? 그래도 돼요?’


처음 들어본 뜻밖의 대답. 내 믿음에 부는 살랑바람.'약간의 자유를 느꼈다.'   



지금 생각하면 그때, 내 신앙의 방식에 새로운 Phase. 국면이 찾아왔던 게 아닌가 싶다.

더욱 더 성숙한 믿음으로 가기 위한. 일부러 돌고 도는 길?!의 시작.


그 후로, 하느님을 믿는 일이 자유로워졌다. (신부님이 의도한 바는 아니셨을 것 같지만, 가린이었던 나의 자의적 해석이 가미되는 바람에) 형식적으로도 느슨해졌다. 이미 충분한 위로를 받은 터라, 슬픔에는 어느 정도 무뎌지고. 갈망의 온도도 식어갔다. 하느님을 놓은 적은 한 번도 없었으나, ‘내 자유 먼저’가 되면서 심적으로도 멀어졌다. 나를 알아가는 것에 집중한다는 명목 하에 나는 아주 뻔뻔해졌다.

그리고 몇 년 후, 우리 가족에게. 상상조차 해보지 않은. 지금도 이해할 수 없는. 더욱  슬픔이 찾아왔다. 물론 그때에도 하느님을 찾았으나 원망은 오래가지 않았다. 나는 어느 정도 체념한 채였다. 나와 함께이시지만, 나의 모든 문제를 해결해 주실 수 없다. 주시는 슬픔까지도. 이것은 그냥 내게 주어진 삶이다. 포기 같았지만 포기는 아닌, 인정 같았지만 인정은 아닌. 그것이 하느님의 뜻을 잘못 읽은 것이라는 생각이 들지는 않았다. 그저 나란 사람을 알아가는 과정에 있을 뿐이다.

내가 하느님을 믿는 일은, 가톨릭이라는 틀 너머의 ‘삶의 철학’ 과도 같다고 생각되었다.



집에 돌아와 핸드폰을 살펴보니, 3번째 수면 강의 때 찍은 강의자료 사진이 외려 1,2차 때보다도 많았다. 사진을 하나하나 넘겨본다.

‘신앙의 핵심은 자율적으로 성숙한 판단과 결정, 책임질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진정한 자신이 되고.’ 다시 한번 읽어본다.

처음부터 다시 곱씹어서 읽으니,  


어?! 검은 약콩 수면제 신부님의 교안에,

진정한 참 자아를 찾기 이전과 이후. 새초롬하게 어물쩡 지나쳤던 문구들이 새롭게 보인다.


"신앙의 핵심은 하느님의 사랑을 확고하게 믿고 - 진정한 자신이 되고 - 타인을 공감하며, 늘 하느님의 현존 안에서 소명을 살아갈 수 있는 능력."


진정한 내가 되기 이전의 기본 전제와 이후의 행동이 함께여야 한다.

수면제 신부님은 참 감사한 분이다.  



*

나를, 알아간다는 것의 레벨업은 이렇게 찾아온 것이다.

나는, 내가 누구인지를 알아가는 2단계 Phase를 맞고 있는 것이다.

나는, 돌아온 탕아처럼 성숙한 성인이 될 기회 앞에 있는 것이다.




나의 어젯밤 수면 강의 상황은 모르신 채,

견진교리는 잘 다녀왔느냐며. 견진성사 날이 너무 기대된다고. 오래간만에 원피스를 입고 행차하시겠다는 대모님의 메시지가 귀엽게 느껴졌다.


눈물에 철퍼덕 대던 내가, 대모님 손에 이끌려. 성당 안 작은 가건물에서 6개월간 공부하던 시간들. 우리의 젊음이 그리운 향기를 내며 오로로록 피어난다.


내가 다시 어른이 되는 날,

대모와 대녀. 글라라와 에반젤리나. 사진이나 한 열댓 장 찍어놔야겠다. 흰 쪽배 할머니 자매님이 보이면, 함께 찍자고 해야지.  


그리고는 흥얼거려야지.

십여 년 전 어느 미사 때,

웃음을 참으며 화음을 주고받던 우리의 노래. 성가 405번 ♪찬란한 광명이 내리던  함께 흥얼거려봐야지.  




하느님 예수님을 마음에 담는 일이 요란스럽지 않기를 바래본다.

고요함 속에서 참기쁨을 느끼고

그분의 사랑 안에서 나를 찾아가는 일이면 된다.


항상 깨어있기 † 나와 깊어지기.

내 영혼의 성숙을 찾아가는, 

삶을 사유하는 철학의 길.

길고 길 행복한 여정.


내가 하느님을 믿고, 하느님께 가는 길이.

참으로 인간적이고, 참으로 자유롭길.

그렇게 하여도,

하느님의 뜻을 거스르는 이 아니되길.



견진성사 후, 나는 7가지 성령의 은사를 받게 된단다. 지혜와 통찰, 식견, 지식과 용기, 공경, 그리고 경외심.

이 얼마나 가슴 떨리는 성인식인가.


나는 괜찮은 어른이 될 기회를 얻었다.

찬란한 어른식이 될 것임이 분명하다.



이 글은 어디까지나 가린이 시점의 가린이 레벨의 글이다. 되어가는 과정의 이야기임으로 가른(가톨릭 어른)들께서 너그럽게 봐주셨으면 좋겠다.  

몇 년이 지난 후 생각이 또 바뀔지 모르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그분을 사랑하는 일은 변함이 없을 것이다.





영화 '미션'  (The Mission, 1986)  

♬ Gabriel's Oboe

2년 전 세상을 떠난 이탈리아의 영화음악가이자 작곡가인 엔니오 모리꼬네(Ennio Morricone) 할아버지의 곡_'가브리엘의 오보에'. 선교활동을 온 가브리엘 신부(제레미 아이언스)가 영화 초반에 불던 오보에 곡이다.  


넬라 판타지아 (Nella Fantasia) 이탈리아어로 "환상 속에서"라는 뜻으로 영국의 팝페라 가수 사라 브라이트만(Sarah Brightman)이 부른 곡. 엔니오 모리꼬네에게 '가브리엘의 오보에' 연주곡에 가사를 붙여 노래 부를 수 있게 해달라고 간청을 거듭, 3년 만에야 허락을 받아 노래할 수 있었다는 곡이다. 노래 가사가 참 아름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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