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거 말이다. 축하한다는 문장 뒤에 ‘여러분은 이런 메일을 받아보고 싶지 않으세요?’라는 미끼용 헤드카피. 가던 길을 멈추고 이번에는 메일함을 열어보았다.
진짜다! 브런치 팀에서 메일이 와 있었다.
브런치 작가가 되신 것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란 제목으로.
“뭐야. 왜 이렇게 기쁨?”
대사처럼 혼잣말이 툭 튀어나와 길 중앙에 서서 핸드폰 메모장에 기록했다.
그 시간, 핸드폰에 쓴 메모
이제 슬슬 지속적으로 글을 쓸 때가 되었다고.
궁둥이를 톡톡. 격려해주는 응원의 메시지를 받은기분이었다.
글을 아예 안 쓰고 있던 것은 아니다.
오래전 이긴 하지만 한겨레 영화학교 동기생들과 각자 쓴 대본으로 나만의 영화를 만들어 본 적도 있고, 제주영상위원회 주최 중단편 시나리오 공모전에서 상을 받기도 했다. 연속적이지는 않지만 영화와 드라마 공모전에 글을 내기도 하고, 최근에는 아는 작가분과 함께 1년 정도 드라마 기획과 대본을 쓰는 작업을 하다가 그만두게 된 일도 있었다. 지독한 메모광인지라 여기저기 흩뿌려놓은소재들은 많고, 한 줄씩이라도 매일, 8년째 내 일상을 기록하고 있기는 하지만, 먹고사는 생업과 넘쳐나는 호기심 덕에 다른 많은 할 일들로 너무 바빠 그것들을 잘 기워내지 못하고 있었다.
무언가 습관적 글쓰기가 필요한 시점이었다.
길 위에서 얻은 합격 소식은 꽤나 찬란했다.
한 번도 만난 적 없는 브런치 팀 담당 아무에게라도 매우 진실된 미소를 지으며 감사하다고 박카스라도 까드리며 악수를 청하고 싶은 심정이었다.
그리고... 그날 이후,
314째 시간이 흐르고 있었다.
필명을 못 정해 13일째 고민 중인 시간. 80여 개의 후보군이 쌓였다. 심난한 생업과 할 일 많은 주말 라이프의 시간을 익스큐즈 받더라도 꽤나 결정 장애의 시간이 길어지고 있는 듯했다. 급기야 어머니는 내게 예의의 문제를 들고 나오셨다. 작가로 뽑아준 브런치 팀에 빨리 글을 발행해야 하는 것 아니냐며 (어머니는 소싯적 입법부 자료 편찬과 에서 편집일을 담당하셨다)
‘정작 글을 발행하는 일은 시작도 안 했는데, 필명을 정하는 것부터 문제라니...’
(도리도리 지끈. 내 완벽주의적 강박증은 또 얼마나 글 발행에 초를 칠 것인가)
혹, 작가 승인 후 15일 이내에 글을 써내지 않으면 작가 자격을 박탈당하게 되느냐고 브런치 팀에 전화해서물어보려고 까지 했다.
오며 가며 생각나는 대로 써놓은 소재들은 # 제목만을 달은 채 대롱대롱 메모장에 매달려 있었다. 심지어 오늘 아침에는 내가 낭떠러지에 매달려있는 꿈까지 꾸었다.
(영화 제목이 기억이 안 나는데, 주인공이 작가인데 글이 안 써져서 신경쇠약증이 심해지다가 결국 자기 원고에 불 지르고 자기도 죽어버렸던 영화가 생각난다)
. 안녕하세요. 오늘은 서울 사는 박 작가님 모셨습니다. 일단 오늘 살짝 예민하신 것 같은데.
"필명을 못 정해서요."
. 직업은요?
"작가라고 하셨잖아요. 지금부터 작가 할래요."
. 나이는?
"경험을 풀어놓을 만큼은 됩니다."
. 브런치는 어떻게 알게 되셨나요?
"연남동에 브런치 잘하는 곳을 찾다가"
. (휴우) 작가님의 심기불편으로 별 볼일 없는 인터뷰는 마치겠습니다. 물으나 마나 없으시겠지만 끝으로 하고 싶으신 말은?
(옷매무새를 고쳐 다듬으며 매우 예의 바른 표정이 된다)
이 출사표를 읽어주신 분들께 무한 미소와 복된 감정을 흩뿌립니다. 삶은 치열하고, 이불 밖은 고되지만 훈훈한 온기 한 줌 나눠가질 수 있는 사이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