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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페쉬플랏 Aug 25. 2021

더 이상 취미를 변명하지 않겠습니다

오늘의 단어: 취미

 첫 만남에서 아이스브레이킹을 위해 건네는 "취미가 뭐예요?"라는 질문을 나는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내 취미는 독서와 음악 감상이었고, 그런 대답은 너무 뻔해서 나를 지루하고 특색 없는 사람으로 보이게 했으니까. 사실 그렇다. 온 세상이 내 글 좀 읽어줘, 이 음악 좀 들어봐 하고 외치는 시대에 뭔가를 읽고 듣는 일은 얼마나 쉬운가. 조금 더 특별한 취미를 찾고 싶었다. 길거리 드로잉 수업에 나갔고, 동화 쓰기 모임도 해 봤다. 나름대로 재미는 있었지만 무언가 맞지 않는 옷을 입은 기분이었다. 꾸준히 하다 보면 진심으로 즐기는 날이 올 수도 있었을 텐데, 옆에서 뿜어져 나오는 동료들의 재능에 살갗을 데일 때면 더 열심히 해보겠다는 의욕은 쉽게 허물어졌다.


 지금은 자동으로 생성되는 플레이리스트에 익숙해져 더는 적극적으로 음악을 찾아 듣지 않게 되었다. 읽는 일은 어느 정도 직업의 영역으로 편입되었다. 이제는  덜 멋져서가 아니라 사실이 아니라서 '독서와 음악 감상'을 취미로 꼽을 수 없게 된 것이다. 게다가 세상에는 나보다 잘 읽고 잘 듣는 사람들이 수두룩했다. 내가 감히 독서와 음악 감상이 취미라고 말할 만큼 충분한 덕력을 쌓았는지 확신할 수 없었다.


 그런데 다시 생각하니 답답하다. 이렇게까지 복잡하게 생각해야 하는 걸까? 취미가 뭐냐고 묻는 사람이 정말 독서에 대한 내 진정성을 평가하고 싶어 할까? 한 달에 스무 권 읽으면 진짜 취미고 다섯 권 읽으면 가짜 취미인 걸까(아무도 그렇다고 하지 않았다...)? 독서가 취미라는 말만 듣고 나를 지루한 사람으로 여긴다면 그야말로 지루한 사람인 게 아닐까? 글자를 읽을 줄 알게 된 이후로 지금까지 누가 시키지 않아도 재미로 책을 읽어왔는데, 내 취미가 독서라는데! 아, 혼자 화를 내고 나니 조금 시원하다. 이제 취미가 뭐냐는 질문이 전처럼 불편하진 않을 것 같다. 취미가 뭐냐고 물어야 할 만큼 어색한 자리는 여전히 불편하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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