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년 차 내성적인 마케터가 깨달은 일 잘하는 법
본성이 내성적이어서 '짜잔! 내가 했어요. 이것 좀 보세요!' 라든지, '나 잘했죠?' 뭐 이런 잘난 척과는 담을 쌓고 살아왔다. 학생 때는 시험 준비를 열심히 했어도 공부를 별로 못했다고 엄살을 부렸고, 누가 칭찬을 해줘도 잘 받아들이지 못하는 극극극 내향형 인간이다.
업무 스타일도 책임감이 강하고 주어진 일을 묵묵하게 해내며 힘들어도 티 내지 않는다. 티 내지 않는 게 유난 떨지 않는 게 미덕인 줄 알았다. 그래서 사람들은 내가 힘들어하는 걸 잘 모른다. 어떻게든 견디고 버티고 실망스러운 결과를 가져오는 걸 싫어한다. 전형적인 곰 같은 스타일이다. 내가 한 일이어도 겸손하게, '아 별거 아니에요', '다들 이 정도는 할 수 있죠.' 스스로가 내가 쏟아부은 노력을 평가절하시켰다. 누구나 할 수 있는 거라고. 내가 내 가치를 떨어뜨리는 말만 해댔다.
회사가 작을 때야 이렇게 남 모르게 일해도 주변 사람들이 알아준다. 항상 내 상사가 말하곤 했다. "열심히 하는 거 안다. 다 참고 있는 거 안다." 이런 얘기를 들었을 때 그래도 내 노력을 알아주는 사람이 있어서 다행이었다. '말하지 않아도 알아주는 사람이 있구나. 내가 이렇게 하는 개고생이 헛되지 않았구나.'
하지만 그저 내가 그런 상사를 만나서 운이 좋았을 뿐이다.
지금 생각해보면 참 바보같이 일했다. 큰 후회는 하지 않지만 그때는 작은 조직이었으니까 그렇게 일해도 말하지 않아도 알아줬다. 하지만 점점 조직의 스케일이 커지고 평가 체계가 등장하고 재택근무가 활성화되면서 점점 새로운 환경에 적응해야 했다. 많은 사람들에게 내가 진행하는 업무가 얼마나 중요한지 리마인드 시키고, 진행 상황 싱크를 맞추고, 이슈와 결과를 공개적으로 끊임없이 알렸다. 변화된 환경에서 살아남기 위해 내 존재감을 심어줘야 했다. 그러면서 어느새 가끔은 회의 시간에 나 혼자 떠들고 있는 경우도 종종 생겨났다. 역시 환경이 사람을 바꾼다.
그래서 한 해를 돌아봤을 때, 가장 눈에 띄게 성장했다고 느끼는 부분은 '티 나게 일하는 법'을 터득했다는 거다. 티 나게 일한다는 게 약간 부정적인 어감을 내포하긴 하지만 이 만큼 잘 설명할 수 있는 문장과 단어도 없을 것이다.
티 나게 일한다는 게 뭘까?
공개적으로 숨김없이 일한다는 거다. 좋은 일이든 나쁜 일이든 잘 공유한다는 거다. 성과가 나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내가 이렇게 열심히 전 과정을 고민하고 있고 이런이런 어려움이 있다고 주변에 계속 알려주는 것이다. 내가 열심히 했는데 내 노력의 여부와 상관없이 외부의 변수로 인해서 안 좋은 결과가 나올 때도 종종 있다. 물론 성과로 보여주는 게 맞긴 하지만, 그 모든 과정도 충분히 박수받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최근에 입점 셀러들을 경쟁시켜 노출하고 이를 랭킹으로 보여주는 기획안을 만들어서 프로덕트를 개발하고 있었다. 그런데 마지막 단계에서 갑자기 주요 입점 셀러들이 랭킹으로 경쟁하는 게 싫다고 해당 스킴을 넣으면 이벤트 기획전에 참여하지 않겠다고 하는 게 아닌가? 아니 어워즈 콘셉트인데 실시간 순위를 빼면 도대체 어떤 틀를 만들라는 거지? 주요 셀러여서 일단 빠지만 프로모션 각이 안 나오기 때문에 일단은 랭킹을 빼겠다고 안내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모든 내용을 파트 회의, 팀 회의, 프로젝트 슬렉 채널에서 계속 공유했다. 왜? 나중에 랭킹 빠진 상세 페이지 화면이 공개되었을 때 왜 랭킹은 없냐고 할 수 있으니까.
일단 공유를 하면 담당자 만의 문제가 아닌 게 된다. 대응해야 할 이슈를 공유하면 그때부터는 모두가 함께 해결해야 하는 이슈인 거다. 꼬꼬마 마케터 때는 뭔가 문제가 있거나 잘 안되고 있을 때 바로바로 공유를 안 했다. 어떻게든 내가 해결해야 한다고 해결할 수 있다고 믿었고 공개적으로 말하는 게 무서웠기 때문이다. 안 되는 게 있다면 바로 공유해야 한다. 그래서 어떻게든 해결책을 찾을 수 있으니까.
공개적으로 일해야 각 단계를 거치면서 크로스 체크가 가능하다.
TV CF 캠페인이나 각 시즌별 빅 프로모션 등의 경우에는 전사적으로 중요하기 때문에 제품 개발, 영업 조직, 브랜딩 및 CRM 마케팅 정말 다양한 조직들이 함께 일한다. 참여 인원이 많아지면 모든 사람들의 의견을 하나로 모으기 어렵긴 하지만, 더 좋은 결과물을 만들기 위해 디벨롭 & 디벨롭(일종의 짧은 스프린트)ㄹ을 반복할 수 있다.
반면에 전사 단위는 아니지만 작게 작게 담당자가 한 명만 붙어서 프로모션을 진행하는 경우 오히려 크로스 체크가 불가능하기 때문에 종종 이슈가 발생한다. 최근에도 타 파트에서 간단한 제휴 콘텐츠 프로모션을 진행했었는데, 담당자가 스스로 세팅을 하고 바로 LIVE 시켜 사전 Quality Assurance 가 충분히 이루어지지 않아서 CS가 발생했다.
그리고 오류 이슈가 발생했을 때도 그 내용을 픽스하기 위해 Direct Message를 통해서만 커뮤니케이션한 게 잘못이었다. 이랬을 경우에 이게 문제인지 아닌지 팀 전체에 공유될 수도 없고, 이게 문제인지 자각하기도 힘들고, 나중에 비슷한 문제가 발생했을 때 재발 방지할 수 있는 시스템을 제도적으로 마련하기도 힘들다.
이슈가 발생했을 당시에는 창피하겠지만, 공유하기 어렵겠지만, 드러내 놓고 일해야 어떻게든 개선할 수 있고 성장할 수 있다.
일반적으로 조직에 겸손한 사람들이 많아서? 인지 칭찬에도 많이 인색한 편이다. 나도 나 스스로에게 엄격한 편인데 그래도 이 부분을 고치려고 노력한다. 잘했을 땐 잘했다고 티 나게 공개적으로 칭찬해줘야 팀 워크에도 개개인의 업무 동기 부여에도 도움이 된다.
평소에 앱 리뷰가 워낙 많이 올라와서 매번 공유하지는 않지만 오늘 아침에는 앱 사용성도 사용성과 디자인 퀄리티를 칭찬하는 앱 스토어 리뷰가 올라왔다. 평소 같았다면 그냥 지나쳤을 텐데 이번에는 우리 팀 채널에 다시 한번 공유하면서 디자이너 분들의 업무 동기를 한껏 높여줄 수 있었다.
우리 팀에 대부분의 인력 구성이 마케터 이기 때문에 팀 회의를 하면 주로 수치적인 얘기만으로 이야기를 구성한다. 그렇다 보니 디자이너 분들이 약간의 소외감을 느낄 수 있다. 정성적인 결과물들을 가져오는 직군이기 때문이다. 그래서일까 어떻게든 디자인 파트는 고맙고 항상 응원해주고 싶다. 실제로도 내가 기획을 개떡같이 그려내도 찰떡같은 디자인을 뽑아주신다.
티 나게 일한다는 건 투명하게 일한다는 거다. 내가 지금 투명하게 일하고 있는지 계속 의심해야 한다. 그래야 내가 해보고 싶은 업무를 맡을 수도 있고 도움을 받을 수도 있고 그리고 또 어떤 새로운 기회가 어떻게 찾아올지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