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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루만 Oct 01. 2023

엄마, 나 자퇴할래

기록이라도 하지 않으면 속이 터질 것 같아 쓰는 '일기' 8월 22일

살면서 '마른 하늘에 날벼락'이라는 식상한 속담을 생각해본 적이 있었나? 잘 기억은 안나지만 없었던 것 같다. 그 속담을 아들때문에 온몸으로 느끼게 될 줄은 몰랐다.  


"엄마 나 자퇴하려구"


고1 아들이 웃는건지 긴장한 건지 모를 표정으로 나를 보면서 한 말이었다. 고1인 아들의 입에서 자퇴라는 말을 들었을 때, 그 식상한 속담이 떠올랐다. 정지화면처럼 아들의 얼굴을 빤히 쳐다 봤다. 내가 들은 말이 자퇴가 맞나? 싶었다. 


'아냐 엄마 장난이야~ 그냥 해본 소리야' 라는 말을 기대하며 아이의 얼굴을 계속 보기만 했다. 그렇게 30분처럼 느껴지는 1분이라는 시간을 깨고 아들이 먼저 말했다. 


"진짜야. 농담 아니고, 그것 때문에 말 하러 왔어"


내 기대는 허망하게 바스라졌다. 그 순간, 세상은 내뜻대로 되는게 아니라는 진리를 깨달은 듯했다. 일단 아들의 말에 무슨 말이라도 해야겠기에 "그래 일단 알았어. 앉아서 얘기하자" 했다. 


황당하고 당황스러운 내 속내를 들키기 싫었다. 아이가 편하게 다 얘기할 수 있게 하는게 중요하다는 생각으로 눈을 안마주치고 속으로 되뇌었다. '무슨 말부터 해야하나, 지금 중요한 건 뭘까?' 소인배인 내가 대범한 척하며 아이의 얘기를 들어보려 노력했다. 


"너가 하고 싶은 얘기를 먼저 할래, 내가 묻고 싶은 거를 먼저 물을까?"


'뭐 때문이냐고, 도대체 니가 부족한게 뭐가 있어서. 내가 너한테 못해준게 뭐가 있는데, 자퇴라니. 왜?'

라고 소리지르고 싶었지만, 이 말은 이유를 묻는게 아니라 원망이었다. 그 원망을 꾹꾹 누르고 담백하게 이유를 묻고 싶었다. 밥 먹었냐고 물어보듯 호들갑스럽지 않게 물었다. 아니 묻는 척했다. 자퇴라는 단어는 무조건 마음에 안들지만 너의 말을 일단 들어는 보겠다는 마음과 '큰 일이 있어서 그런건 아니겠지' 하는 조바심이 섞여 살짝 어지러웠다. 


"난 상관없어, 엄마가 궁금한 거 먼저 물어봐"


각오를 하고 왔구나 싶었다. 분명히 자퇴 얘길 하면 엄마는 이것저것 물어볼 거라 예상한 것 같았고, 그 물음에 답할 것을 준비해온 듯 했다. '그래 얼마나 준비했나 들어보자' 오기같은 것도 슬쩍 올라왔다. 


"그래, 그럼. 왜 자퇴하려고 하는데?"


"학교에 마음에 안드는 친구도 있고, 선생도 보기 싫은 사람이 있어. 스트레스가 너무 많아서 학교 갔다오면 아무것도 못하겠어. 그래서 자는거야. 커텐치고. 나도 학교 갔다와서 뭐라도 하고 싶다고. 근데 못하겠어 에너지가 바닥나서"


힘들었겠다고 말해주고 혹시나 심각한 문제인가 싶어서 다시 물었다. 평상시에 미주알고주알 일일히 말하는 아이가 아니라서 겉으로만 '단순한 스트레스'라고 표현한 건 아닌가하는 걱정이 있었다. 왕따, 괴롭힘, 학교 폭력에 대한 것 등. 그런 건 아니랜다. 그 학교 분위기상 아이가 아니라고 한 게 맞긴 한 것 같았다. 일단은 안심했다. 그렇게까지 심각한 수준이 아니라니까. 


그 순간, 이게 다행인가? 차라리 그런 명백한 이유라도 있으면 해결할 수 있는 솔루션이 있지만, 지금 아이가 말한 이유는 자기랑 안맞는 애들이 하는 말이 듣기 싫고, 교사에 대한 스트레스가 있어서라고? 학교가 무슨 의미가 있냐고? 겨우? 그게 자퇴의 이유라니. 


니가 아주 배가 불렀구나. 미쳤냐고 비아냥거리고 싶었다. 내가 학교 다닐 땐 교사가 애들을 발로 차고 주먹으로 때리고 싸대기 때리는 걸 보며 지냈다고. 그래도 다들 별탈없이 공부하고 안 맞으려고 열심히만 했다고. 팔이 부러지고 열이 나도 학교에 갔다고. 근데, 고작 그런 이유로 자퇴? 나때는 자퇴는 진짜 인간말종같은 애들이 하는거였는데 니가 인간말종도 아니고, 스스로 그 길을 걷겠다고? 


순식간에 내 안에 꽉 찬 말들이 입밖으로 새어나올까 싶어서 입술에 힘을 주고 어금니를 꽉 물었다. 이유를 다 들었으니 이번엔 계획을 물었다. 


"자퇴한 후에 뭐할거야? 어떻게 생활할거야?"


대학은 갈 거니까 검정고시도 볼 거고, 공부도 할거라고. 알바도 해서 돈을 모은 다음에 일본여행을 가겠다고 한다. 


"그래? 대학갈 마음은 있었어? 그럼 그 마음으로 중간고사 기말고사를 열심히 보면 되잖아. 검정고시는 뭐하러 봐. 학교에 왔다갔다 하기만 하면 졸업장은 나오는데. 그리고 알바? 학교 다니면서 하면 되겠네. 알바는 학교다니면서 할 수 있잖아. 야자 빼고 알바해. 그럼 되잖아. 왜 굳이 자퇴를 해? 


"아니, 학교 갔다오면 뭘 할 수 있는 에너지가 없다고! 그래서 내 시간을 확보하고 스트레스가 줄면 내가 하고 싶은 공부를 집중해서 할 수 있을거라고 생각해."


"그럼 주말엔 학교도 안가는데 왜 그 시간엔 놀기만 하는데? 하고 싶은 공부가 있다며! 그건 왜 안하고? 주말동안의 니 시간과 영역을 터치 안하는데, 그땐 왜 안해?"


아차 싶었다. 이건 얘기를 들어주겠다는 게 아니라, 너의 어리고 어리석은 그 생각이 영 마음에 안든다는 말이었다. 어쩔 수 없었다. 내뱉은 말이라. 


"자퇴 한다는 의미는 너를 보호하고 너가 열심히 살 수 있게끔 만들어주는 학교 시스템을 벗어나서 니가 스스로 꾸려나가겠다는거야. 알고 있어?"


"어 알아"


"너가 만일에 주말 동안이라도 성실하게 니 공부하고 니 시간을 주도적으로 쓰는 모습을 내가 봤다면, 그걸 믿고 너 말대로 자퇴하는 쪽으로 생각을 해봤을거 같아. 근데 너 주말에 어떻게 시간을 보내는지 돌아봐."


"평일엔 일주일에 4번은 통학버스 놓쳐서 늦고, 학교 갔다오면 자고. 그러다 새벽에 늦게 잠드니까 학교에선 졸거나 멍때리고 있고. 주말엔 점심때 지나서 일어나고 밥 먹으라고 하면 짜증내고, 환기시키려고 네 방 창문 열어두면 신경질내고 방에는 쓰레기가 쌓여있고. 

주말이라도 성실하게 너가 하고 싶은거를 하면서 뭔가 노력하는게 아니라 그저 기분따라 니 꼴리는대로 그렇게 살고 있잖아. 그래서 지금 네 얘기는 학교가 니 마음에 안드니까 그만 둔다는 얘기로 밖에 안들려. 


학교가 마음에 좀 안들어도 어떻게든 그 안에서 살아남기 위한 노력을 해야 된다고 생각해 난. 공부가 싫으면 다른 걸 열심히 하면 되잖아. 악기를 배우든지 sns 계정이라도 잘 운영하든지, 운동을 배워서 할 줄 아는게 하나라도 있든지! 없잖아. 뭐든 하겠다고 하고, 전부 한달하다 다 그만뒀잖아. 근데 자퇴를 하고 뭘 하겠다고? 지금도 못하는데 자퇴하고 나면 할 수 있을거라고 생각해?"


최대한 한심해하는 감정을 숨기려고 애썼지만, 잘 되진 않았다. 차라리 책을 읽듯이 무덤덤하게 말하는게 나을 것 같았지만 그마저도 잘 안됐다. 아이의 입장에서 아이의 미래를 같이 상의하는 사람으로 말하고 싶었지만, 실패했다. 소리 안지르고 울지 않으면서 말한 것만으로도 다행이라며 스스로 위안했다. 


서울대를 가라고 한 것도 아니고, 자식 덕 좀 보자며 아이를 채근한 적도 없는데, 그저 학교에 늦지 않게 가는 성실함과 교사와의 약속을 지키는 정도의 신뢰, 자신의 방 안에 있는 쓰레기를 버리는 정도의 청결함을 요구했을 뿐인데. 뭐 대단한 걸 원한 것도 아닌데. 왜 너한테 자퇴라는 말을 내가 들어야 하는지 잘모르겠다는 지극히 내 중심적인 생각으로만 말했다. 


"내가 자퇴를 하지도 않았는데 왜 자퇴하고 집에 있으면 꼭 그렇게 될거라고 생각해? 왜?"


아들은 나에게 이유를 묻는게 아니라 왜 자신을 못 믿어주냐고 원망하는 듯했다. 


"사람은 습관의 동물이니까. 어른들도 습관바꾸기가 힘들어서 돈을 주면서까지 자기 습관 고치려고 해"

"사람은 의지로 되는거 아냐?"

"아니 습관이야. 의지는 가스렌지에 불을 켜는 전기스파크에 불과해. 금새 사라져"


아들은 답이 없었고, 나는 말을 이어나갔다. 


"어떻게든 너가 속한 세상에서 살아남을 생각을 하고 그 과정에서 안되는 건 도와달라고 하고. 너를 챙겨주는 담임샘 말을 듣는 척이라도 해야지. 언제까지 피할건데? 어? 중학교 때는 게임으로 피하더니 고등학교때는 아예 그만두는 걸로 회피해?

니가 원하는 일을 하고 싶댔지? 니가 원하는 일이 그렇게 쉽게 굴러들어오진 않아. 뭐든 3개월이상 꾸준히.. 뭐가 됐든 성실히, 해내고 있어야 기회도 운도 주어지는 거지. 지금처럼 계속 피하기만 했는데 또 피한다고?"


17년 짜리 아이는 처음부터 나와 상의를 하거나 의견을 바꿀 여지가 없었다. 통보였다. 내가 어떤 말을 해도 논리는 없고 감정만 있는 말로 반박했고. 나는 아들의 가늘고 허술한 이쑤시개같은 논리를 꺽어 버렸다. 말을 이어가다가 이건 아니다 싶었다. 


어떤 말을 해도 소용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가장 힘든 건 내가 아니라 아이일거란 생각을 놓치고 있었다. 그저 내 경험으로 아이의 학교생활을 판단하고 있었다. 그 당시 내 감정이 무엇인지도 몰랐다. 속상한 건지 슬픈건지 걱정되는 건지, 자괴감에 빠진 건지. 눈밭에 빠진 차바퀴가 헛돌듯, 제자리를 맴도는 것 같았다. 일단 1차전은 끝내야겠다 싶었다. 


"말하다 보니까 가장 힘든 사람은 너라는 걸 잊고 있었어. 내 경험으로만 판단하듯 말해서 아마 너 입장에선 속상했을 것 같아. 그 점은 미안해. 근데 나 솔직히 자퇴를, 편의점에서 음료수 사듯이 쉽게 허락해줄 수 있는 문제는 아니라고 생각해. 우리 다음에 다시 얘기하자. 오늘 했던 얘기 중에 니 마음에 상처가 된 말이 혹시 있었으면 말해주고"


잠시 기다렸다. 뭐 그렇진 않댄다. 사실 더 심한 말을 들을 줄 알았다면서. 


"진짜 너를 위한 길이 뭔지 나도 지금은 잘 모르겠어. 자퇴를 해도 된다 안된다의 결정은 나중으로 미루고. 일단 나한테도 생각할 시간을 줘. 너나 나나 내일 무슨 일이 생길 지 아무것도 모르는 인간이지만 너가 행복한 길이 무엇인지 진짜 너를 위한 것이 뭔지 고민할 시간을 줘."


알았다는 말을 하고 아이는 자기 방으로 갔고 나는 움직일 수 없었다. 왜 나한테 이런 일이 일어났을까. 요즘 자퇴하는 애들이 있다고는 했는데, 왜 그게 너여야만 하니? 나 부모로서도 열심히 살았는데, 아이에게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했는데 그게 최선이 아니였던 걸까. 남들처럼 대치동으로 목동으로 이사를 하고 그랬어야 했나. 고개를 숙이고 지치고 멍한 눈으로 발 끝을 바라봤다. 엄마 따위는 하고 싶지 않다는 생각으로 가득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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