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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낭만직딩 Dec 15. 2020

미처 글이 되지 못한 글감들

글을 쓰기 시작한 이후로 글감을 모으는 게 하나의 취미가 되었습니다.

늘 같은 일상 속에서도 그냥 스쳐 지나갈 만한 순간들을 건져 올려 하나의 글로 만드는 일이 재미있었죠.


특히 시시콜콜한 글감으로 무용(無用)의 글을 쓸 때면 신이 났습니다. 그런 글은 조회수도 그리 올라가지 않고, 공유도 거의 안됩니다. 그런데 다음 포털 메인에도 올라가고, 많은 사람들이 공유하는 글 보다 더욱 애착이 가는 건 왜일까요?


이런 시시콜콜한 내용의 글들이 참 좋습니다 :)


쌓여가는 글감 위로
쌓이는 먼지들


그런데 미처 글이 되지 못한 글감들이 쌓여가고 있습니다. 묵은지처럼 묵혀두면 더 좋은 글이 될까 싶지만 글감들 위로 뽀얀 먼지만 쌓여가네요.


글감들은 왜 글이 되지 못하고 있는 걸까요?


아이를 키우며 생기는 에피소드, 새롭게 알거나 느끼게 된 것들, 육아 팁 등을 글로 옮겨놓고 싶어서 부지런히 글감을 모았습니다. 리스트를 쭉 적어보니 100개 가까이 되더군요. 그런데 그중 글이 된 글감은 30여 개뿐입니다. 다른 글에서 한 줄 정도로 언급될만한 정도의 폭과 깊이를 갖고 있는 글감들이 대부분이더군요.


직장생활을 하면서도 '와, 이거 글로 쓰면 재미있겠다.' 하는 소재들이 불쑥불쑥 튀어 오릅니다. 그 순간을 최대한 놓치지 않고 메모해두지만, 글이 되기엔 너무 말랐습니다. 나의 경험과 연구자료, 관련 서적 등에서 얻는 지식과 정보로 글감을 살찌워야 글의 구색이라도 갖출 수 있습니다.


그리고 글감을 살 찌우기 위해서는 내 몸의 에너지 관리 또한 철저히 할 필요가 있음을 절실히 느낍니다. 왜 무라카미 하루키가 매일 달리고, 수영을 하는지 알 것 같습니다. 무라카미 하루키는 살아간다는 것은 지겨울 만큼 질질 끄는 장기전이기에 단순히 의지나 영혼만을 강하게 유지한다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고 하더군요. 천재가 아니라면 피지컬 관리에 신경을 써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글감들을 내 삶에 통과시키고, 다른 지식이나 정보와 엮어 나만의 언어로 풀어내어야만 한 편의 글이 완성될 수 있습니다. 가벼운 글감, 좁은 지식, 얕은 사유, 늘 바닥에서 찰랑대는 에너지가 글감이 미처 글이 되지 못하는 이유라고 여겨집니다.


육아의 말들이라는 콘셉트로 육아 에세이를 쓰고 있습니다. 제가 좋아하는 유유출판사의 'OO의 말들' 시리즈에 끼고 싶은 마음으로 매거진 이름도 '육아의 말들'이라고 짓고, 글 쓰는 형식도 따라서 써보고 있죠. 그러나 글을 쓰면서도 OO의 말들 시리즈에 끼지는 못하겠다는 생각이 드네요.


그러나 그 생각 앞에 '당장'이라는 단어 하나, 그 생각 뒤에 '언젠가는', '꼭'이라는 단어 두 개를 덧붙이고 싶습니다.

 

'당장' OO의 말들 시리즈에 끼지는 못하더라도 '언젠가는' '꼭' 육아의 말들이라는 이름으로 당당한 글을 써내고 싶다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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