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콰나족 아기는 태어나자마자 기어 다니기 전까지 계속 하루 종일 엄마 품에 안겨 지낸다. 엄마는 아기에게 특별한 관심을 기울이지 않은 채 그저 품에 끼고 다니면서 물을 긷거나 빨래를 하거나 음식을 만들고 마을 아낙들과 수다를 떨 뿐이지만, 아기는 엄마 품에서 이리저리 흔들리며 엄마의 이동에 따라 빛과 소리와 온도의 변화, 그리고 와 닿는 나뭇잎 같은 촉감을 감지하며 세상을 경험한다.
<잃어버린 육아의 원형을 찾아서>, 진 리들로프
첫 돌을 한 달 앞둔 아이는 요즘 부쩍 업혀있는 걸 좋아합니다.
많은 시간 자신을 돌봐주시는 할머니 등에 기어올라 등에 얼굴을 기대고 무릎을 구부렸다 폈다 하면서 웃습니다. 업어달라고 하는 뜻이죠. 할머니는 포대기로 아이를 업습니다. 아이는 한 번 업히면 꽤나 긴 시간을 그대로 업혀 있는다고 하네요. 한 시도 가만히 못 있는 아이도 할머니 등이 포근하고 편안하긴 한가 봅니다.
친정엄마는 저와 제 동생을 모두 포대기로 업어서 키웠다고 합니다. 엘리베이터도 없는 집에 살았고, 자가용이 아닌 대중교통을 주로 이용했기에 유모차를 가지고 다니기엔 오히려 불편했다고 하네요. 그때는 동네에 지하철도 없어서 버스를 주로 이용했던 시절이었으니 정말 그랬겠다 싶어서 고개가 끄덕여집니다.
연말에 남은 연차를 쓰느라 휴가를 내고 비교적 긴 시간 아이와 함께 보내고 있습니다. 하루 종일 아이와 함께 있으니 정말 한 시도 아이 곁을 떠날 수가 없더군요. 아이는 잘 놀다가도 수시로 안아달라고 다리를 잡고 일어서고, 가슴팍으로 기어오릅니다.
10kg이 훌쩍 넘는 아이를 두 팔로 안는 건 한계가 있어서 육아 최애템 힙시트를 활용해서 아이를 안고 집 안을 이리저리 돌아다닙니다. 코로나로 마땅히 외출할 곳도 없고, 날씨도 춥고, 손바닥 만한 집에서 하릴없이 이리저리 왔다갔다 하네요.
문득, 요즘 포대기에 업혀 있는 걸 좋아한다는 친정엄마의 말씀이 떠올라 아이를 업어보았습니다. 저는 포대기가 없기도 하고, 사용법도 모릅니다. 대신 아이를 안고 다닐 때 사용했던 아기띠로 아이를 업어봅니다. 요즘 아기띠는 대부분 앞으로 안거나 뒤로 업을 때 모두 사용 가능하게 나온다고 해요.
아이를 업으니 안았을 때보다 할 수 있는 일이 더 많아지네요. 아이를 업고 아이가 잠들면 하려고 했던 집안일들을 합니다. 설거지도 하고, 세탁기에 빨래도 집어넣고, 청소기로 바닥의 먼지를 닦아내기도 합니다. 그리고, 아이를 업은 채 노래를 틀어놓고 흔들흔들 춤도 춰봅니다.
아이도 엄마와 비슷한 눈높이에서 엄마가 하는 일들을 어깨 너머로 보는 게 재미있나 봅니다. "어깨 너머로 잘 배워놓고, 얼른 커서 엄마 집안일 좀 도와주거라"라고 등에 업힌 아이에게 이야기도 해봅니다.
도서 <잃어버린 육아의 원형을 찾아서>에서는 남미 밀림에서 선사시대를 유지하며 사는 원시부족 예콰나족으로부터 배운 인간 본성을 기반으로 한 육아 방식을 소개합니다. 예콰나족 엄마들은 아이가 태어나면 늘 아이를 업거나 안고 다니면서 일을 했습니다. 예콰나족 뿐만 아니라 우리나라에서도 아이를 둘러업고 밭에 나가서 일을 하는 엄마들의 모습을 사진이나 영상을 통해 자주 봐왔죠.
그런데 아이들이 엄마의 몸에 둘러매여 있는 그 시간 동안 아이는 엄마와 어디든 따라다니고, 원할 때 편안하게 잠이 들고, 수시로 모유를 먹으며 본성이 기대하는 모든 것을 충족할 수 있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아이는 엄마의 품 안에서 자신이 온전하다는 감정을 느낄 수 있었고요.
제 아이도 엄마 등에 업혀서 엄마의 동선과 몸의 움직임에 따라 함께 움직이며 행복감을 느낄 수 있었을까요?
아이를 업고 있는 시간이 길어지고, 몸을 많이 움직이다 보니 10kg이 넘는 가방을 메고 운동을 하는 기분이 들었습니다. 허리를 구부렸다 펼 때마다 코어 근육에 힘이 들어가고, 앉았다가 일어설 때마다 허벅지가 당기더군요. 시간이 지날수록 움직일때 마다 '아이고' 곡소리가 나도 모르게 나온건 그냥 비밀로 해두고 싶네요. 사실 육체적으로 힘들긴 했습니다.
그런데 아이를 업고 있으면서 제가 더 행복하더군요. 마치 아이가 저를 뒤에서 안아주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아이가 얼굴을 등에 가만히 기대고 있을 때면,
"편안하고 기분이 좋아요."
"엄마가 너무 좋아요"
"엄마 등에 업혀있어서 행복해요."
하고 이야기해주는 것 같았습니다.
이 밤, 허리가 조금 뻐근하긴 하네요. 그래도 안는 것보다 업는 것이 허리 건강에도 더 좋다고 하니 업어줄 수 있을 때, 아이가 업히고 싶어 할 때, 기회가 될 때마다 아이를 충분히 업어줘야겠습니다.
어부바
참 정겨운 단어입니다.
그리고 아이의 백허그, 너무 달콤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