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취미는 발레다. 반 직장인, 반 취준생의 신분으로 웬 고상하고 사치스러운 취미냐고 할 수 있지만 여러 가지 현실적인 걱정으로 머리가 복잡할 때는 발레만 한 것이 없다. 쉴 새 없이 떠오르는 생각은 잠깐 OFF 시켜놓고 선생님이 알려주시는 동작을 부지런히 따라하며 내 몸의 근육이 어떻게 움직이고 있는지에만 집중한다. 빠른 시간 안에 동작 순서를 외우고 내 몸을 리듬에 끼워 맞추다보면 어느새 이마와 등에는 송골송골 땀이 맺혀있고 한 시간이 무아지경 상태로 훌쩍 지나가 있다. 집에 와서 샤워하고 최애 옥수수 아이스크림까지 먹어주면 나의 힐링 루틴 완성.
내가 발레에서 제일 어려워하는 동작은 '밸런스'인데, 한 발 끝으로 서서 중심을 잡고 한 동작을 유지하는 것을 말한다. 근육이라곤 1도 없는 말랑한 몸을 가지고 있는 나에게 밸런스를 잡는 건 매우 힘들다. 다리를 힘차게 들어 올리거나 점프를 뛰는 건 내 의지로 시도해볼 수는 있지만 밸런스를 할 때는 내가 아무리 중심을 잡고 있으려고 해도 몸이 자꾸 고꾸라지는 걸 막을 순 없다. 그럴 때마다 선생님이 해주시는 말씀이 있다. 밸런스를 잡을 때는 몸의 중심을 하나로 모으려고 노력하는 게 아니라 머리는 위로 올라갈 것처럼 힘을 주고, 발은 꼿꼿하게 아래로 꽂으려는 힘을, 앞으로 둥그렇게 내민 팔의 팔꿈치는 양 옆을 향해 힘을 주어야 한다고, 그렇게 각각 다른 방향으로 힘을 강하게 주어야 마침내 한 발로도 흔들리지 않고 서있을 수 있다고 하셨다.
인생에서 밸런스를 잡는 것도 이와 마찬가지 아닐까. 내가 중요하게 여기는 다양한 가치들 중 일정 부분을 포기하고 중심에만 집중하는 게 아니라 내가 지키고자 하는 가치를 향해 최선을 다해 힘을 뻗어내야만 나의 밸런스가 완성되는 것이다. 요즘 '워라밸'을 지키고자 하는 MZ세대의 생각이 마치 일에 대한 욕심을 버리고 혼자만의 편안함을 누리려는 것처럼 미디어에 비춰질 때가 있다. 하지만 우리는 무언가를 포기한 것이 아니다. 오히려 일과 삶, 둘 다 포기하고 싶지 않아 있는 힘껏 양쪽으로 손을 뻗고 있다는 걸, 때로는 그게 더 어렵다는 걸 누군가는 알아주었으면 한다.
하고 싶은 것도 많고 이루고 싶은 게 많은 나에게 삶의 밸런스를 맞추는 건 필수적이다. 인생에도 선택과 집중이 필요하다면 나에게 그건 너무 잔인한 일이다. 일도 운동도 공부도 인간관계도 휴식도 포기 못하는 나는 무엇이든 최선을 다해서 손과 발을 뻗어보기로 했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지옥철을 타고 출근을 해서 열심히 일을 하고, 퇴근 후에는 발레 학원도 가고 토익 공부도 한다. 일주일에 한 번 에세이도 쓰고, 한 달에 한두 번은 친구들을 만나 맥주나 막걸리를 곁들이며 수다를 떨며 시간을 보낸다. 주말에는 평일처럼 일찍 일어나 아침을 직접 차려먹고 아이패드로 좋아하는 영화를 보다가 햇살을 온몸으로 받으며 낮잠도 잔다. 아직 마음의 코어가 단단하지 않아 주변 사람들의 말이나 온갖 소문에 휘둘려 이리저리 휘청거리기도 하지만, 근육은 꾸준한 시도를 통해서 생기는 법, 나는 오늘도 까치발을 들고 세상을 향해서 힘을 발산해본다. 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