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udy for 빛 from TATE_ 01. 조셉 라이트 오브 더비
<빛: 영국 테이트미술관 특별전> 관람을 위한 사전 학습 01/43. 조셉 라이트(1734-1797)
우리가 첫 번째로 공부할 화가는 조셉 라이트(1734-1797). 영국 사람이고 잉글랜드 중부의 도시 더비(Derby)에서 태어났기 때문에 Joseph Wright of Derby라고도 불러. 다른 조셉 라이트가 있어서 이름 뒤에 지역 이름을 붙이는 건가 라는 의문이 들지만, 레오나르도 다 빈치 또한 빈치 마을의 레오나르도라는 의미이니 그냥 그런가 보다 하고 넘어가자고.
이 그림은 30대 초반에 그린 자화상인데, 엄지와 검지 사이에 턱을 고이고 있는 모습이 마치 요즘 우리의 셀카 포즈 같아 '훗'하고 웃음이 나왔어. 게다가 입고 있는 옷이나 자신감에 찬 표정을 보니 좀 있는 집 아들 같아 보이지? 맞아, 더비 지역에서 존경받는 변호사 집안의 셋째 아들이었다고 해.
뭐 금수저 까지는 아니어도 은수저는 물고 태어난 조셉 라이트. 17살에 화가가 되기로 결정하고 토마스 허드슨에게 2년간 사사를 받는데, 이 토마스 허드슨이란 사람은 당시에 초상화 분야의 일타강사로 이름을 날리던 대가였고, 조셉 라이트의 재능을 알아본 토마스 허드슨은 사사를 마치고도 15개월 동안 자신의 조수로 발탁. 훌륭한 스승으로부터 배우고, 또 긴밀하게 그의 작업을 도우며 실력을 쌓아간 조셉 라이트는 자신의 고향 더비로 돌아와 정착하게 되지.
아래 그림은 조셉 라이트와 그의 스승 토마스 허드슨의 그림을 비교해본 거야. 왼쪽은 스승님의 그림, 오른쪽은 제자의 그림.
이제 본론으로 들어가자고. 미술사에서 조셉 라이트라는 화가는 어떤 위상을 가진 인물일까?
그의 활동지는 영국, 시대는 1760년대. 바로 떠오르는 것이 있지? 산업혁명!
미술사는 조셉 라이트를 "산업혁명의 정신을 표현한 최초의 화가"라는 상징으로 기록하고 있어.
당시 영국은 프랑스보다 훨씬 일찍 경험한 혁명을 통해(명예혁명, 1688) 이미 민주화가 진행되고 있었고, 그로 인해 개인과 기업의 경제활동이 자유로웠으며 사유재산과 특허권이 보장되었어. 이로 인해 경제가 활성화되고 더 높은 생산성을 위한 기계 발명 붐이 일면서 우리가 알고 있는 산업혁명이 시작되었잖아. 바로 그 시기에 조셉 라이트는 다양한 혁신의 현장을 기록했던 화가로, 특히 그의 이름처럼 라이트(빛)를 활용한 드라마틱한 화면 연출로 눈길을 끌었던 사람이었어. 물론 라이트는 light가 아닌 Wright이지만 뭐 이해를 돕기 위한 아재 개그 같은 거니까 지적질하고 싶어도 좀 참아주라.
그의 작품 중 가장 유명한 세 점의 그림을 보자.
그가 빛을 어떻게 연출했는지 대충 감이 오지? 첫 번째 그림은 공기의 성질과 생명을 유지하는 능력에 대한 초기 실험을 관찰하기 위해 모인 사람들이고, 두 번째 그림은 독일 연금술사 헤닝 브랜트가 원소 '인'을 발견한 순간을 묘사하고 있어. 헤닝 브랜트는 은을 금으로 바꾸는 액체를 만들려고 오줌을 가열하다가 '인'을 발견했다는데, 인이 공기와 접촉하며 빛이 발생하는 순간을 표현한 작품. 그때까지 어두운 곳에서 빛을 발하는 것들을 모두 Phosphorus라고 불렀었는데(phos는 빛, phorus는 운반자라는 의미) 이후 인의 원소명이 Phosphorus가 되었다고 해. 모든 빛나는 것의 원류가 오줌이라니 아이러니하다. 세 번째는 당시 태양 주위의 행성의 움직임을 보여주는 모델 앞에서 강의하고 있는 학자의 모습이 담겨있어.
위 세 작품의 특징처럼 빛과 어두움을 격렬하게 대비시켜 극적인 표현을 만드는 이런 기법을 테네브리즘 이라고 하는데, 이탈리아어 tenebra 즉, 어둠이라는 단어에서 기인했어. 1600년대 카라바조라는 화가의 작품에서부터 시작된 이 기법은 17세기 많은 화가들에게 영향을 주었지. 마치 연극 무대에서 모든 조명이 꺼지고 주인공에게 핀 라이트가 쏘아지는 것과 같은 느낌의 연출은 그 어떤 기법보다 드라마틱하게 그림 속에 서사를 만들어낼 수 있는 것 같아.
아래의 왼쪽 그림은 테네브리즘의 시조 카라바지오의 <성 마태오의 소명>인데, 오른쪽 끝의 어둠 속에서 예수님이 왼쪽 끝에 있는 세리 마태오를 부르고 있는 장면. 오른쪽 그림은 조르주 드 라 투르의 작품 <성 요셉, 목수> 그러니까 예수님의 지구 아버지의 모습이지. 목수일을 하고 있는 요셉 앞에 어린 예수님이 촛불을 들고 있고, 혹여나 바람이 꺼질까 왼손으로 불꽃을 가리고 있는데, 손가락으로 비치는 불빛의 묘사가 탁월하네. 흔치 않은 어린이 시절 예수님의 모습이 참 새롭게 느껴지는 작품이야.
아무튼 오래전부터 종교화에 사용되었던 테네브리즘 기법이 산업혁명이 시작되던 시기, 즉 종교의 힘이 과학적 탐구에 의해 약화되어가던 다양한 이슈들을 연출하는 데 사용되었다는 것이 재미있지. 조셉 라이트의 작품 <공기 펌프 속의 새에 대한 실험>을 조금 더 자세히 볼게
언제부턴가 우리는 융합, 통섭이라는 말을 사용하면서 전혀 다른 분야의 지식과 정보가 상호작용할 때 시너지를 낼 수 있다고 말하잖아. 또한 새로운 기술에 자금력이 뒷받침될 때 세상을 뒤바꿀만한 혁신이 나온다는 것도. 산업혁명이 영국에서 시작되는데 큰 영향을 끼쳤던 조직이 하나 있었는데, 그 조직의 이름은 "루나 소사이어티 (Lunar Society)" 한국식으로 하면 달파, 달빛파? 조직 이름치곤 상당히 엘레강스하지?
암튼 이 조직의 정체는 요즘 말로 하자면 '융합연구모임'이었어. 멤버들도 장난 아니었는데, 자신의 집을 아지트로 제공한 백만장자 매튜 볼턴, 증기기관을 개량한 제임스 와트, 무기 제조업자 사무엘 골턴 주니어(1), 의사이자 발명가인 에라스뮈스 다윈(2), 도자기 산업화의 아버지 조지아 웨지우드(3), 산소 발견자 조지프 프리스틀리 등이었지. 이 양반들이 한 번 모이면 밤이 늦는 줄도 모르고 토론을 했다고 해. 그래서 늦은 밤 귀갓길이 안전하도록 보름달이 뜨는 날에 주로 모였고 그래서 이름을 루나 소사이어티라고 지었다는군. 이 멤버들이 서로 사돈이 되기도 하는데 사무엘 골턴 주니어(1)의 아들과 에라스뮈스 다윈(2)의 딸이 결혼해서 나은 아들이 프랜시스 골턴(우생학으로 알려진 빌런), 에라스뮈스 다윈(2)의 아들과 조지아 웨지우드(3)의 딸이 결혼해서 나은 아들이 찰스 다윈.
아무튼 이 모임이 바로 영국의 산업혁명에 혁혁한 공을 세운 기반이었기에 영국 지폐에도 매튜 볼턴과 제임스 와트의 얼굴이 들어가 있지. 아! 이건 구권 지폐 이야기고, 새로 2021년 새로 발행한 신권에는 수학자이자 논리학자인 앨런 튜링의 얼굴이 들어가 있어. 앨런 튜링에 관한 영화 <이미테이션 게임> 정말 재미있게 봤었는데, 튜링을 연기한 베네딕트 컴버배치는 정말 천의 얼굴을 가진 배우인 것 같아. 지폐 속 얼굴과 어찌 저리도 닮았을까? (아! 미안. 내가 너무 의식의 흐름대로 글이 쓰고 있는 것 같네. 각설하고!)
암튼, 이런 루나 소사이어티와 조셉 라이트가 매우 긴밀한 관계를 유지했었다는 거야. 회원은 아니었으나 기록자로서의 역할을 했었던 거지. 당시 영국 사회에서 돈 좀 있는 사람들의 사교모임이나 친목모임에서 과학계 소식이 늘 화젯거리였대. 19세기 초에는 이런저런 과학실험을 할 수 있게 도와주는 안내서도 출간되고 다양한 실험 도구를 파는 가게도 생겨났지. 자연스럽게 자연철학자들의 대중강연이 엄청난 인기를 끌었고. 울 아들 어렸을 때 가장 좋아하던 월간지가 바로 '내일은 실험왕'이었는데, 책 내용을 직접 시연할 수 있는 킷트가 부록으로 달려 나와 매달 새로운 실험을 할 수 있게 해 주었어. 2000년 초반에도 이런 실험들을 흥미로워하는 아이들이 있었는데 당시엔 어땠겠어?
루나 소사이어티의 회원 중 한 명인 에라스뮈스 다윈이 당시 대중강연으로 유명했던 존 윌타이어를 집으로 초대해 공기펌프에 대한 실험을 한 적이 있다고 하니, 조셉 라이트는 그곳에 초대받았던 경험으로 이 그림을 그렸을 거라고 추측하고 있어.
그림 중앙에 있는 과학자의 왼손에는 유리 반구가 들려있고, 오른손에는 공기 조절 장치가 쥐어져 있어. 진공펌프라 불리는 이 장비는 사실 1659년 로버트 보일에 의해 고안된 것으로 공기의 여부와 생명체의 생존 관계를 실험하는 도구였어. 그러니까 유리 반구 속의 새는 과학자의 오른손에 생명이 달려있는 거지. 물론 조셉 라이트가 이 그림을 그릴 때 즈음엔 이런 무자비한 실험은 거의 사라졌다고 하지만 그는 무엇을 말하고 싶었던 것일까?
그림 속 과학자는 자신이 하는 실험에 관람자인 우리를 끌어들이고 있잖아. 마치 우리를 바라보며 "어떻게 할까요?"라고 묻고 있는 것 같지 않아? 혹시 다가오는 과학의 시대가 가질 수 있는 비인간성에 대한 우려를 말하고 싶었던 것은 아닐까?
여전히 공기와 생명의 상관관계에 대한 궁금증은 풀리지 않고 있다가 바로 루나 소사이어티의 회원 중 한 명인 조지프 프리스틀리에 의해 산소라는 기체를 발견하게 돼. 물론 산소의 정체를 규명하진 못했지만.
아무튼 조셉 라이트는 이렇듯 1760년대 격변하는 영국의 사회상을 산업혁명의 정신으로 기록한 화가고, 더불어 인공적인 혹은 자연의 빛을 평생 연구했던 화가라고 생각하면 될 거야. 이번 <빛> 전에서 관람할 수 있는 그의 작품은 <폭발하는 베수비오 화산과 나폴리만의 섬>과 <등대가 있는 토스카나 해안의 달빛>이라는 작품이야.
조셉 라이트는 이탈리아 베수비오산 기슭에서 소렌토와 카프리 섬을 바라보며 상상력을 동원하여 베수비오 화산이 폭발하는 모습을 극적으로 연출했는데 베수비오 화산이 폭발하는 모습은 오른쪽 바다의 고요함과 대비되어 더욱 극적으로 보이고 그림의 하단 어두운 부분에 희생자를 운반하는 사람들을 그려넣음으로 한없이 거대한 자연에 인간의 하찮음을 더불어 대비시킨 듯 해. 그가 빛에 대한 연구에 얼마나 진심이었는지 알려주는 작품이지.
빛에 대한 연구라면 단연코 달빛을 빼놓을 순 없지. 어두움 속에서 은은히 빛나는 달 빛이야 말로 화가들의 입장에선 정말 표현하고 싶은 대상일 거라고 생각해. 나 역시 화가였다면 가장 그리고 싶은 것이 바로 달 이거든. 아! 이 작품은 정말 감탄이 나올 수 밖에 없어. 마치 세련된 영화의 한 장면을 보는 것 같은 이 그림은 자연의 빛과 등대라는 인공의 빛을 묘하게 대비시키고, 물결에 반사되는 달빛을 한 번 더 표현함으로 보는 이로 하여금 화가의 기술에 경외심을 갖게 만들어.
이렇게 43명의 화가 중 가장 연장자인 조셉 라이트에 대해 알아보았어. 이제 시작했는데, 얼른 가서 직접 작품을 만나고 싶은 마음이 마구 생기지? 그래도 조금만 참아. 전체적으로 쭈욱 한 번 다 공부를 하고, 그다음에 가 보면 더 즐거운 관람이 될 거야.
그럼 다음 편도 기다려줄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