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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obinsoon Sep 05. 2022

INFP가 영화모임을 운영하는 방법

당신이 어렵게 내뱉은 한 마디에 귀를 기울입니다

 모임진행하다 보면 한 번씩 나오는 화제 중 하나가 MBTI입니다. 저는 INFP입니다. 1년 간격으로 두 번 검사해봤는데 두 번 다 INFP였어요. 좋은 소리 듣기는 어려운 유형이죠. '인싸가 되고 싶은 아싸'라는 말도 들었고 MBTI에 많이 몰입한 사람은 제가 INFP라고 말하자마자 표정을 찡그리기도 하니까요. 회사 면접 때는 비밀로 해야 하는 유형이라고도 하더군요. B형이라 혈액형 성격 판별에서도 좋은 소리는 못 들었는데 이래저래 이런 쪽이랑은 잘 안 맞는 것 같습니다. 



 다른 건 잘 몰라도 I와 E를 구분하면 저는 분명 I 가 맞는 것 같습니다. 사람이 많은 곳은 피하며 잘 맞는 사람 외에는 사람 만나는 거 자체에 그리 관심 없었으니까요. 혼밥중딩 때 쯤부터 시작해 20년을 넘긴 것 같아요. 이런 제가 낯선 사람을 집으로 초대하는 영화 모임을 연다는 건 새삼 놀라운 일이쥬. 그렇지만 이런 저이기에 모임 운영하는데 도움 되는 점도 있습니다. 내향적인 성격이 모임을 운영하는데 꼭 나쁜 것만은 아니거든요.


 우선 적은 인원으로 모임을 진행할 때 저와 비슷한 내향적인 사람들을 배려할 수 있습니다. 저는 술자리를 꽤 즐기지만 테이블 하나가 넘어가는 술자리는 지양하는 편입니다. 대화가 정신없고 공통된 화제를 찾기 어렵기 때문이죠. 영화 모임 역시 4-6명의 인원으로 모임을 열고 있어요. 공간상의 제약도 있지만 모임을 운영하는 제가 참석자 분들에게 고루 시선을 돌리면서 누구 한 명 소외하지 않고 진행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좋은 모임은 그 자리에 참석하는 모두가 재미를 느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기 위해선 마이크가 누구 한 명에게 쏠리지 않게 하는 게 중요합니다. 주최자는 자연스럽게 말이 없는 분들께 질문을 하고 대화가 늘어질 때 화제를 전환해야 하죠. 특히나 낯선 사람들 앞에서 자신을 드러내는 어렵지 않은 외향적인 분들과 다르게 내향적인 분들은 말 한마디 꺼내는 타이밍을 고르기 힘듭니다. 제가 그랬 그런 점을 쉽게 공감할 수 있. 외향적인 성격이라면 이런 점을 공감하기 힘들겠죠. 모임을 진행하는 와중에 말이 없으신 분이 있으면 한 번씩 질문을 하는 편이에요. 물론 어떤 분들은 말하는 것보다 듣는 걸 더 좋아하기에 말을 걸었을 때 부담스러워하는 기색을 보이면 굳이 더 말을 걸진 않습니다.


 상대적으로 다른 분들의 말을 귀 기울일 수 있는 점 역시, 내향적인 모임장의 장점입니다. 거실영화관은 한 사람의 영화적 지식을 푸는 강연형이 아니라 여러 분들이 자유롭게 감상을 나누는 론형(혹은 잡담형) 모임입니다. 오시는 분들의 말을 이끌어내는 게 중요합니다. 내향적인 분들은 특히 남들과 다른 점을 표현하는 데 있어 조심스럽기에 영화 감상에 있어서 일반적인 수준에 그칠 때가 많습니다. 그렇지만 설령 남들이 이해 못 하는 부분이라도, 혹은 영화 전체의 맥락과 관련 없어도 본인이 눈여겨본 부분이라면 그것 나름대로 가치 있고 대화에 환기를 불러일으킬 수 있습니다. 말을 곱씹으면서 듣는 편인 저는 일반적인 의견인 듯한 말속에 아주 작은 부분이라도 유니크한 게 있으면 꼬리 질문을 해요. 그  속에   본연의 색깔이 담겨있을 수 있으니까요. 맞고 틀리는 걸 신경 쓸 필요 없습니다. 영화 속에서 본인이 인상 깊게 본 게 있으면 무엇이든 얘깃거리가 될 수 있으니까요. 예를 들면 예전에 본 <우리도 모르는 사이>라는 독립영화에서 사진사인 남자를 짝사랑하는 여자가 그의 사진기를 빌리고 사진을 찍은 뒤 바닥에 던져버리는 씬이 있습니다. 여러 여자에게 추파를 던지는 남자라 그와의 끈을 떼어내고 싶은 행동, 으로 해석하면 일반적일 수 있겠지만 한 분은 바닥에 던져진 카메라를 여자는 어떻게 배상할지 궁금하다는 분이 있었죠. 그 부분을 파고들면 여자는 남자의 카메라를 어떻게 배상했을까가 토론 주제가 될 수도 있습니다. 그렇게 우리는 결말 이후의 이야기를 상상할 수 있습니다. 남자의 카메라를 다시 주워서 수리 후 배상하는 여자, 혹은 여자를 재물손괴죄로 신고하는 남자. 이야기는 수없이 많은 갈래로 퍼져나갈 수 있습니다. 이는 우리의 경험으로 돌아와 과거 친구 혹은 연인의 물건을 파손한 경우 어떻게 했는지에 관한 대화로 넘어갈 수도 있습니다. 말이 없는 분이 던진 작은 파동은 그날 우리에게 흥미진진한 대화 소재가 될 수 있습니다. 내향적인 모임장인 저는 그 파동을 감지하고 멀리 퍼져나가도록 손을 물속에 넣고 바지런히 휘젓는 역할을  수 있답니다.



 내향적인 성격은 뜻밖의 부분에서 모임 운영을 수월하게 합니다. 바로 모임 인원이 부족해서 열리지 않을 시, 기죽지 않고 오히려 기쁨을 느낄 수도 있다는 건데요. 많은 분들이 공감할 텐데 약속을 잡고선 당일에 취소되었을 때, 오히려 자기만을 위한 시간이 생겼음에 묘한 기쁨을 느낄 때가 있잖아요. 그거랑 비슷한 겁니다. 어떤 분이 방문할지 기대하던 동시낯선 사람들을 만난다는 부담감이 스멀스멀 오르기에 취소되었을 때 묘한 안도감을 느끼는 제가 있죠. 모임일 이틀 전까지 최소인원인 4인이 안 모일 시 가차 없이 그날 모임을 취소하는 이유입니다. 물론 모임이 열리지 않아서 실망스러운 부분도 없지 않지만 스케줄에서 모임 일정을 하나 지우면서 혼자서 무얼 할지 생각하면 즐거워집니다. 6개월을 넘기면서 안정적으로 운영하게 된 지금도 세 번 중 한 번은 인원 부족으로 취소하는데요, 대부분은 대중성이 부족한 영화이거나 다소 대담한 기획일 때가 많습니다. 그렇지만 저는 사람들이 볼 만한 영화로 단순히 많이 끌어들이는 것보다는 극장에서 놓친 작품성 있는 영화나 삶을 다른 방향에서 볼 수 있는 기획을 진행하고픈 욕심도 있어서 꾸준히 도전하는 편입니다. 비슷한 이유로 내향적인 성격은 다소 파격적인 기획을 하는데 도움이 됩니다. 실패해도 실망하지 않고 성공하면 짜릿함이 있으니까요.


 내향적인 사람들에게는 성경과도 같은 책, <Quiet>에 이런 내용이 있습니다.

우리는 성격을 개조할 수 있지만, 그것도 어느 정도까지다. 타고난 기질은, 우리가 어떻게 살았든 간에 우리에게 영향을 미친다.
~ 자유의지는 우리를 상당히 멀리 데리고 갈 수는 있어도, 유전적 한계를 넘어서까지 무한대로 멀리 데려가 주지는 못한다.

 격이 외향적이나 내향적이냐는 유전적 요인에 기반하지만 그 안에서도 바꿀 수 있는 부분은 충분하다는 내용입니다. '내향적인 사람은 모임을 운영하기 힘들 것이다'라는 명제는 내향성 안에 있는 다양한 가능성을 보지 못 한 겁니다. INFP들의 희망인 유느님이 타인을 배려할 수 있는 최고의 MC가 된 것처럼 내향성이란 본래의 성정 역시 그 안의 가능성을 활용해 모임을 운영하는 데 도움이 되기도 합니다. 다른 분들 앞에서 말 한마디 못 하는 성격이라 모임에 오기 어렵다고요? <거실영화관>에 오세요. 당신과 같은 걸 고민해왔던 저는 힘겹게 내뱉은 한 마디의 가치를 기에 그 말을 받기 위해 최선을 다할 겁니다. 어쩌면 낯선 사람들 앞에서 이제껏 발견하지 못한 자신의 모습을 찾을 수 있는 계기가 될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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