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임을 만들고 운영한 지 반년이 넘은 지금까지 30편이 넘는 영화를 관람했고 50명 가까운 분이 찾아와 주셨습니다. 그분들 입장에서는 얼굴도 모르는 낯선 이의 거실에 방문하는 걸 텐데 새삼 감사함을 느끼면서 찾아와 주신 용기에 감탄하기도 합니다.오십 명 중 절반은 한 번만 오고 안 오셨지만 나머지 절반 중에는 스무 번 가까이 방문해 주신 분도 있어요. 누가 몇 번 오셨는지 기록하기 위해 간단한 명부를 작성하고 있는데 스무 번째 방문해주신 분에게는 당일 현관에서 절을 해볼까 합니다. ^.^
모임에서 제일 중요한 건 영화입니다. 아마도 오시는 분들또한 어떤 영화를 보는지를 제일 중요하게 여기시지 않을까 싶습니다. 영화 선정 기준은 한 마디로 말하면 '제 마음'입니다. 그치만 제 취향만 반영해서는 사람들이 오지 않겠죠? 그렇기에세 가지 기준에 따라 영화를 정하고 있어요. 처음부터 기준을 정하고 이에 따른 건 아니고 모임을 열다보니 자연스럽게 생겼어요.
첫 번째 기준은 화제성 혹은 시의성입니다. 주로 극장 개봉작과 연관 지을 때가 많은데요. 시리즈 물인 경우 직전 작품을 봐야 이해되는 장면이 많기 때문이죠. 마블 시리즈가 대표적인 예입니다. 첫 번째 모임인 <스파이더맨: 홈 커밍> 역시 그다음 주에 개봉 예정인 <스파이더맨: 노 웨이 홈> 개봉 이슈에 맞췄죠. 실제로 전작을 봤을 때와 안 봤을 때 느끼는 재미 차이는 크니까요. 비슷한 이유로 <나일 강의 죽음> 전에 <오리엔트 특급열차>, <쥬라기 월드: 도미니언> 전에 <쥬라기 월드>, <스파이더맨: 노 웨이 홈> 역시 <닥터 스트레인지: 대혼돈의 멀티버스> 개봉 전 복습을 위해 5월 3일에 열었답니다. 그 날 모임의 분위기가 좋으면 같은 인원으로 며칠 뒤 극장에서 함께 관람하기도 했어요.
거실영화관 스크린에 가려진 포스터
모임 영화를 고르는 만큼 영화 관람 후 무슨 얘기를 할 수 있는지도 중요한 기준입니다. 토론까지는 아니어도 영화를 본 뒤 각자의 마음 속에 의문점을 남기어 풍부한 이야깃거리가 남아야 하죠. 지난 5월 가정의 달 기획전으로 열었던 <결혼 이야기>와 <레이디 버드>가 그랬어요. 가정의 달이라서 쉽게 떠올릴 수 있는 화목한 가정보다 현대사회에 실제 존재하는 다양한 가족의 모습을 그린 영화를 같이 보고 싶었어요. 그래서 떠올린 기획명이 '가족을 향한 낯선 질문'이었습니다. 우리가 기존에 갖고 있는 가족을 향한 시선에 색다른 자극을 주고 싶었습니다. 현대에 들어서는 가족의 개념이 다양화되기도 했구요.
<결혼 이야기>는 2시간이 넘는 러닝 타임 동안 누구보다 서로를 사랑했던 젊은 부부가 10년의 결혼생활 끝에 이혼을 결심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다루었습니다. 깊게 얽힌 그들의 관계가 이혼 소송이라는 고난한 과정을 거쳐 분리되는 내용을 보고 있으면 둘의 이혼이 이해가면서도 동시에 그들은 여전히 사랑하고 있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 '이혼'이라는 개념을 부정적으로만 그리지 않은 주제 의식에 공감했죠. '이혼을 결혼의 끝으로 봐야 하는가?'라는 질문으로 영화를 본 뒤 깊은 대화를 나눌 수 있었구요. 참고로 이 모임은 예상외로 신청자가 제일 많이 몰렸습니다. 최대 정원인 6명으로 두 번이나 열 수 있을 정도로요. 연령 구성도 두 명씩 열 살씩 차이가 나서 결혼에 대한 다양한 관점을 나눌 수 있었답니다. 이 이야기는 나중에 좀 더 해도 괜찮겠어요.
마지막 기준은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좋은 영화입니다. 제작비는 예술/독립영화에 가깝지만 대중성도 충분히 품고 있는 영화요. '거실영화관 덕분에 이 영화를 볼 수 있었어요'라는 감상평을 듣고 싶다는 제 욕심이 반영되었습니다. 이는 극장에서 일하던 시절부터 제가 꾸준히 생각하던 건데 좋은 메시지와 상업영화만 보는 분도 충분히 공감할 수 있는 접근성이 있는 영화인데 관객수가 적어 어렵게 멀티플렉스 상영관에서 개봉해도 조조나 심야에, 그것도 겨우 하루에 한 번씩 밖에 상영할 수 없는 현실에 안타까움을 느껴서입니다. 멀티플렉스 위주의 극장 산업은 소수의 예술영화관을 빼고(그것도 대부분 서울에 있답니다) 철저하게 수익적 관점에서 영화를 바라보기에 안 팔리는 상품은 뒤로 빼는 거죠. 천안은 독립영화 전용영화관도 하나 있고 또 지방에서는 드물게 천안 CGV에서 아트하우스 관도 운영하기에 나름 예술영화 공급이 있는 편이지만 이마저도 매우 제한적이랍니다.
<드라이브 마이 카>와 <코다>는 이런 생각이 반영된 선정작이었어요. 둘 다 예술영화계에서는 거의 아이돌급 인기였지만 상업영화 위주로 관람하시는 분들에게는 낯선 작품이죠. 아카데미 작품상 후보에 오르면서 그나마 대중에게 알려진 편입니다. <코다>가 특히 반응이 좋았어요. 'Children Of Deaf Adults'라는 말의 약어인 CODA처럼 이 영화는 청각장애인의 삶을 간접 체험할 수 있게 하는 점에서 좋은 메시지를 품고 있고 동시에 미국 어촌의 아름다운 풍경을 담은 영상미, 그리고 무거울 수 있는 주제를 무겁지 않게 다루는 점에서 접근성도 좋은 작품으로 봤습니다. 반응 역시 매우 좋았고 모임 다음 날인 3월 28일, 아카데미 작품상 수상이라는 이변에 가까운 결과를 내어서 매우 놀라웠죠.
모임을 연지 반년이 넘은 현재는 위의 기준 중 두 번째와 세 번째를 중심을 영화를 선정하고 있습니다. 사람들이 곧잘 볼 수 있는 영화보다는 '잘 알려지지는 않았지만 좋은 내용을 품었고 동시에 관람 후 풍부한 이야깃거리를 품은 영화' 말이죠. 어느 정도 모임에 꾸준히 참여해주시는 분들이 있어서 안정적 운영이 가능한 덕분이고 동시에 이 기준에 따라 영화를 고를 때 제가 재미와 보람을 느끼기 때문이기도 하죠. 근래에는 바빠서 1-2주에 한 번 정도밖에 모임을 열 수밖에 없으니 말이죠.
앞으로도 '거실영화관 덕분에볼 수 있어서 좋았다'는 반응을 얻을 수 있는 영화를 고르고 싶어요. 참고로 참여해 주시는 분의 추천도 받고 있으니 언제든 추천해 주세요!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