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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Freedom akin to feral Nov 18. 2023

은사님을 만나지 못한 건 순전히 내가 운이 없어서일까

학창 시절 나에겐

그리 기억에 남는 선생님이 별로 없다.

물론 초중고 도합 12년의 정규 교육 기간 동안

나에게 잘해주신 선생님들도 분명 계셨다.

하지만 다 합쳐 기억나는 선생님들이 세 분도 안 계신 걸 보면

마음이 씁쓸해진다.


나는 기질이 섬세하고 예민했다.

남들이 눈치 못 채는 상황에서

기어코 분위기를 읽어내는 아이였다.

그래서 더욱 상처받는 일이 많았다.


지금이야 많은 부분이 개선되었지만

당시엔 학부모님들이 교무실을 찾는 일들이 많았다.

학부모님들은 빈손으로 오는 일이 없었다.

아주 커다란 샤넬 쇼핑백이나

고급스러운 빨간 봉투에 적힌 까르띠에라는 글씨를

나는 선명히 기억하고 있다.


아무도 없다고 생각한 미술실 문틈으로

나는 어떤 아이가 미술 실기 작품을 바꿔치기하는 장면을 보았다.

평소에도 공부를 잘했고 성적에 목매던 아이였는데

나는 그 아이와 성향도 관심사도 어느 것도 맞지 않아

말을 섞어본 기억이 별로 없는 아이였다.


시험이 끝나고 성적표가 나오기 전에

정정기간에 임시 성적표를 받는다.

같이 답을 확인해 보다가

분명 나와 같은 주관식 오답을 낸 친구가

자기는 그 문제가 맞았다고 되어있다고 했다.


이상하다 생각하여 선생님을 찾아갔다.

돌아오는 대답은 없었고, 선생님은 손짓을 하며 우리들을 내쫓았다.

나중에 그 아이 부모님이 물심양면으로 

학교 선생님들을 대접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단지 그 위력이 오답도 정답으로 바꿔지고도 남았던 것뿐이다.


어렸던 나는 내가 본 것에 대해

어느 누구에게도 이야기하지 않았다.

부모님에게는 당연하고,

친한 친구들에게도 그것을 말하지 않았다.

그저 속으로 조용하게 분노했다.

겉으로는 아이들과 잘 어울려 다녔지만

마음속으로는 내가 속한 집단에 대한 극도의 환멸감을 차곡차곡 쌓았다.


평범하게 살면 바보가 되는 세상이었다.

잘하는 아이를 더 잘 키우기 위해서는

도덕이나 양심 같은 가치는 중요치 않았던 것일까?


내 나이가 되어 동창생들이 뭐하는지 소식을 들었다.

역시 그 경쟁에서 치열했던 아이들 중 다수가 전문직을 하고 있었다.

결과가 좋게 나왔으니 그 부모들이 옳았던 걸까?


어린 날의 내가 안쓰럽다.

몰랐으면 좋았을 것을 너무 많이 알았다.

어른이 되어 학창 시절 친하게 지내던 친구들에게

이런 것에 대해 알고 있었냐고 물었다.

내 친구들은 아무것도 몰랐다.


내가 알았던 몰랐건 간에 벌어질 일들이었는데,

명민하게 주위를 관찰하는 성격은 

스스로를 더 괴롭게 하기만 했던 것이다.


내가 선생님들께 뛰어나게 주목받지 못했고

그저 반에 얌전하게 있는 착한 아이 정도의 포지션으로

다른 일부 아이들에게 선뜻시키지 못할 

자잘한 일들이나 시켜버리면 될 아이 정도가 아니었을까?


내가 더더욱 잘했더라면,

우리 부모님이 더 영향력 있었더라면,

내가 하찮은 꼼수를 넘어설 만큼 뛰어난 아이였더라면,

학교 생활이 나에게 조금은 즐거웠을까?


내가 만난 선생님들로부터 별다른 자극이나 가르침을 받지 못한 것은

단지 내가 운이 없어서 그런 것만은 아니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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