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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Freedom akin to feral Nov 19. 2023

응답하라 시리즈에 공감하지 못하는 동네

신원호 PD의 응답하라 시리즈는

우리나라에서 크게 유행했다.

물론 드라마가 재미있는 것도 있지만

그 시리즈가 그렇게까지 인기가 있었던 것은

그 시절 많은 국민들이 공감할 수 있는 향수를 불러일으켰기 때문이다.


비슷한 시기를 살아간 나의 어린 시절은

응답하라 시리즈와는 거리가 있었다.

오히려 너무나도 비현실적인 드라마였던 

꽃보다 남자에 나오는 학교가 더 비슷했다면

그렇게 얘기할 수 있을 것이다.


나의 상황이 주인공인 금잔디만큼 가난하지는 않았지만,

자기 잘난 맛에 학교 다니는 아이들 틈바구니에서

남들에게 무시당하지 않기 위해 적당히 나를 지키면서,

그러나 일부 아이들의 허세에 속으로 기를 눌러가며,

그렇게 하루하루를 지냈던 것 같다.


아이들이 얼마나 타인에게 잔인할 수 있는지

겪어본 사람들은 알 것이다.

어렸을 적 내가 초라하다는 감정을 알게 된 것도

나의 또래 덕분이었다.


나는 때때로 상처받았지만, 그걸 겉으로 드러내면 

상대가 나를 더욱 만만하게 생각할 걸 알기에

자존감이 낮아져만 가는 상황에서도

자존심을 잃지 않기 위해 필사적이었다.


지금에야 일부 동네에서 아이들이 사는 아파트나

부모가 타는 차 등으로 서로 차별한다는 얘기가 

전국적으로 공론화되는 일들이 있지만,


응답하라 시대에 살던 나에게는

20년 뒤 지금과 비슷한 일들이 일어나곤 했다.


내가 속했던 세상은 대한민국 다른 지역과는

다른 시간대를 지나고 있었던 것 같다.


사춘기가 오면서 아이들은 부에 눈을 떴다.

부모의 직업이 가진 권위 혹은 

그들의 축적된 부가 그 아이들 세계에서도

비슷한 권력을 쥐어주었다.


지금에야 명품이 흔해진 시절이지만

그 당시 한국을 생각하면 전혀 그렇지 않다.

(응답하라 시리즈의 배경이 되었던 부산, 신촌, 쌍문동에서 묘사한

90년대 후반~2000년대 초반을 떠올려 보시라.)


그러나 이미 나의 중학생 동창들은

지금도 이름만 들으면 꽤나 값이 나간다는 명품백을

책가방으로, 지갑으로 들고 다녔다.


방학이 끝나고 학교로 돌아가면 일부 아이들의 대화 주제는

얼마나 비싼 무언가를 했는지에 대해서였고,

관심 없는 아이들도 들릴 정도로 크게 떠들어 댔다.


성인이 되려면 한참 남은 아이들이

"나 엄마 카드로 200만 원짜리 가방 긁었잖아"

"내 티파니 목걸이 좀 봐줘"

등의 대화가 심심치 않게 들려오곤 했다.


그저 악의 없는 자랑에서 그쳤으면 좋았겠지만,

아이들은 성인이 아니기에

더욱더 노골적으로 자신 부모의 부를 드러내고 싶어 했다.

가지고 다니는 학용품이나 옷들이 비싸지 않으면

당연히 무시해도 되는 존재로 같은 반 아이들을 보는 게 만연했다.


엄마가 새로 사준 운동화를 처음 신고 가던 날

나와 한마디도 나눠보지 않은 같은 반 남자 애가 

저 멀리서 "어, 그 신발 뭐야?" 하고 달려왔다.

내가 어떤 대답을 하기도 전에

"아 씨발, 존나 구린 브랜드였네"

하고 다시 뒤돌아 가 버렸다.


가만히 있었던 나는 갑자기 얼굴이 확 달아올랐다.

'이건 신으면 쪽팔리는 신발이었나?'

그전까지 아무 생각이 없던 나는

누가 그 남자애의 말을 들었을까 봐 덜컥 심장이 내려앉았다.


본인이 내 신발을 보고 멀리서 예쁜 것 같아 한걸음에 달려와놓곤,

아무렇지 않게 욕을 해대고 멀어지던 그 남자아이는

지금 만나 물어보면 그런 일이 있었는지 기억조차 못하겠지만,

나는 아직껏 그 일에 대해 이렇게 생생히 기억하고 있다.


학원에 어떤 티셔츠를 입고 갔다.

역시나 엄마가 새로 사주신 거였다.

누군가 나에게 와서 다짜고짜 손을 내밀어

등에 있는 브랜드 택을 보기 위해서

옷깃 뒤를 확 뒤집어 깠다.


그리고 들려오는

"아 뭐야, 별로 비싸지도 않은 거네."


내 허락도 없이 취약한 신체 부위에 손을 댄 것도 모자라서

그렇게 또 말문이 막힐 말을 들어버렸다.

본인이 봤을 때 예쁘니까 궁금해서 왔던 거 아니었나?

그러면 그냥 나에게 물어보면 되는데, 

왜 함부로 상대방 동의 없이 택을 뒤집어봤을까?

이 아이는 나에게 이렇게 대해도 된다고 생각했던 걸까?

그 옷을 앞으로 더 입어도 되는 건지에 대해 나는 자신이 없어졌다.


나는 이런 세상에 대해 너무나도 몰랐기에

그저 옷은 엄마가 사다 주는 것만 입었고,

그런 걸 입으면 아이들에게 무시당한다는 걸 몰랐다.


그때는 부모님도 젊었기에, 아이들 키우고 하느라

모아둔 돈도 얼마 없었을 것이다.

저런 일이 있었어도 나는 엄마에게 내색조차 안 했다.

그저 나는 시간이 갈수록 더 소심하고 말수가 적으며,

단지 사춘기이기에 불만이 있어 보이는 아이가 될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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