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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원혁 Feb 07. 2019

개방성과 폐쇄성

내가 애플을 싫어하는 이유

84년 컴퓨터를 처음 접했을 때, 그건 충격이었다. 결국 없는 살림에 부모님을 졸라 30만 원으로 Apple IIe를 샀다. 중고였을 거다. 본체만 달랑. 

흑백 TV에 연결하고 카세트 테이프에 저장했다. 결국 나중에 CP/M 카드도 샀다. 

그렇게 나의 컴퓨터 생활이 시작되었다. 신세계였다. 


85년즘이었던 것 같다. IBM XT라는 게 나왔고, 곧이어 AT라는 게 나왔다. 너무나 저질이었다.

학교에 IBM 5150이라는 고질의 PC가 들어왔다. 5.25 인치 플로피 디스크 두 개가 달린 멋진 컴퓨터. 그러더니 하드 디스크도 달려 들어왔다. 


이젠 저사양이 되어 버린 8비트 Apple IIe는 그렇게 작별했다. 이미 16비트 컴퓨터가 있으니까. 


IBM은 설계도를 세상에 풀었다. 누구든 PC를 만들 수 있었고 봇물 터지듯 다양한 컴퓨터들이 나왔다. IBM은 PC가 돈이 될 거라고 생각 안 했다는 이야기도 있다. 


이미 나올 때 거의 모든 게 다 그 안에 있었던 애플은 뚜껑을 뜯어볼 수 있던 초기 모델에서 아예 아무것도 뜯지 못하는 모델로 발전해 갔다. 


맥과 PC의 차이는 이루 말할 수가 없었다. 맥은 그 자체로 그래픽도 되고, 출판도 되고, 작곡도 되었다. 하지만 PC는 깡통에 가까웠다. 뭐 좀 하려면 그래픽 카드를 바꿔 달아야 했고, 작곡? 출판? 그런 건 꿈도 못 꿨다. 


세월이 지나니 PC에서도 그런 게 가능해졌다. 다양한 사람들의 다양한 삽질의 결과였다. 


그러다 PDA를 접했다! 이거 또 신세계다! 여기다 다양한 방법을 동원해 내게 들어온 HP PDA를 한 2년 혹사시켰다. 주위에서 PDA를 그렇게 심하게 잘 쓰는 사람은 못 봤다고 할 정도였다. 미국 출장에 큰 도움이 되었다. 전에는 Atlas라는 종이 지도를 2년마다 사서 갔는데, 이제는 PDA에 지도를 담아가면 되었다. 여기는 유연함이 있었다. 다양한 사람들의 삽질로 이런저런 실험 앱들이 있었다.


제자 한 명이 너무나 고맙다고 내게 아이패드를 선물해주었다. 다시금 애플을 만났다. 화려함, 세련됨과 완벽함! 그런데 그 놀라운 경험은 오래가지 못했다. 그래도 나 컴퓨터 하는 사람인데 애플에서는 애플 세계 밖으로 뭔가를 빼내는 게 무척 어려웠다. 

PC와 유닉스, PDA에서는 그게 참 쉬운데 말이다. 정해진 길 말고도 조금만 뜯어고치면 다양한 유연성이 가능했다. 그러나 맥은 아예 정해진 길 외에는 어떤 길도 갈 수 없었다. 




하나님과 에덴동산


사용하면서 두 세계를 자꾸 비교하게 되었다. 그리고 내 사이비 결론은 이러하다.


극도의 완벽주의자 스티브 잡스는 자신을 하나님이라고 생각한다. 
자신이 만든 iWorld는 에덴동산이다. 이렇게 완벽한 iWorld 밖으로 나간다는 건 죄악이라고 생각한다. 
정해진 길 외에는 걸어서는 안된다. 그러니 샌드 박스의 완벽한 보안을 위반할 생각은 아예 하지 말아야 한다. 


잡스가 애플에서 쫓겨나고 만든 NeXTSTEP이라는 OS가 있었다. 그걸 보고 잠시 짝사랑에 빠졌다. "제발 네가 OS 세상으로 올라와라!"라고 바랬다. 하지만, 그냥 그렇게 위대한 OS가 죽어버렸다. 


말도 안 되는 미숙아 IBM 호환 PC와 어쭙짢은 DOS라는 운영체제,

그에 반해 완벽한 애플, 그리고 엄청난 NeXT OS! 


하지만, 세상은 미숙한 IBM과 DOS의 후손들이 제패했다. 왜 그랬을까? 나는 그게 열림(Openess)의 힘이라고 생각한다. 




애플이 싫은 이유

1. 폐쇄성

내가 PDA를 한참 사용하고 있는 사이, 세상은 안드로이드와 아이폰이 싸우고 있었다. 나는 아주 뒤늦게 스마트폰의 세상에 들어왔다. 진저브레드 시대에야 내 손에 스마트폰을 만져봤다. 그리고 또 두 진영의 싸움을 봤다. 이번엔 구글과 애플이었다. 구글의 안드로이드는 참 허접하다. 그러나 역시 개방되어 있다. 누구나 그 소스코드를 가지고 뭔가 할 수 있었다. 애플은 이번에도 꽁꽁 가두어 놓았다. 폰도 뜯지 못하게 했고, 운영체제에도 샌드박스를 만들고 앱 등록도 깡패에 가까운 정책을 들이대었다.


당시 애플은 엄청난 앱이 올라와 있었다. 양질의 고급 콘텐츠가 넘쳐났다. 구글 마켓에는 장난 수준의 앱과 게임들이 주로 올라왔다. 주위에서는 "앱 수와 질을 보라! 이건 애플의 자명한 승리다! 아이폰을 사야 한다!" 고 말했었다. 가끔은 아이폰에서만 볼 수 있는 양질의 콘텐츠가 부러웠다.


그러나 얼마 가지 않았다. 그게 개방의 힘이다. 이제는 안드로이드 쪽에도 엄청난 콘텐츠가 있다. 안드로이드에도 양질의 앱들이 어마 어마하게 많다. 게다가 인공지능에 관해서는 구글이 애플보다 아~~ 주 많이 앞선다. 


나는 꽁꽁 막아 놓고 못 나가게 하는 것이 싫다. 앱을 선택할 때 기준 중 하나는 "이 회사 망하면 내 데이터 밖으로 빼낼 수 있는가? 그게 쉬운가?"이다. 구글은 그런 면에서 탁월하다. 서비스 종료 적어도 1년 전부터, "네 데이터 빼내렴. 방법은 이렇게 하면 돼"라고 알려준다. 얼마 전 G+  데이터 백업하라는 메일을 몇 차례 받았다. (그런 면에서 한국의 통신사들은 반성해야 한다. 대체 내 데이터를 빼낼 방법이 막연하다. 못 떠나게 막으려는 꼼수다.)


2. 완벽함? 괴팍함

사소하지만, 애플을 싫어하는 이유가 하나 더 있다. 

스티브 잡스는 위대한 혁신가가 맞다. 그러나 그의 일화들을 접해보면, 같이 일하고 싶지 않은 사람 1위에 들어갈 만큼 싫다. 그런 면에서는 직원을 혹사시키는 아마존, 월마트도 싫다. 

완벽함은 자신에게만 적용하면 된다. 다른 사람에게 그런 완벽함을 요구하는 것은 괴로움이다. 직원에게는 그것을 요구할 수 있다면 할 말 없다. 나라면 월급 덜 받아도 되니까 좀 덜 괴롭히는 회사에서 일하고 싶다. 완벽함이 본질에 대한 완벽함이면 그나마 괜찮다. 본질이 아닌 것에 대해서 완벽함을 추구하면 그게 얼마나 피곤할까? 이 완벽한 모니터 받침대?


나는 최소한의 규제만 있고, 나머지는 자유로운 열린 세상이 좋다. 그게 내가 애플 대신 안드로이드를 사용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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