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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세현 May 13. 2020

회전문과 참신한 오답

회사 입구에는 커다란 자동 회전문이 있다. 이 회전문은 기계의 힘으로 작동하기 때문에 사고를 방지하기 위한 센서가 있다. 이 센서의 원래 목적은 신발이 끼인다거나 하는 사고를 막기 위함이다. 하지만 원래 기계가 보통 그렇듯 이 센서는 신발이 끼이는 것보다 훨씬 자주 멈춰 섰다. 사람으로 치면 아주 예민하고 까탈스러운 성격의 소유자였다. 이런다고 더 안전할까, 자동문이 멈출 때마다 그런 생각이 들었지만, 적어도 이 엘리베이터를 시공한 사람은 안전과 편리 중에 안전을 택했다고 믿을 것 같았다. 나는 하루에도 몇 번씩 그 회전문을 통해 담배를 피우러 다녀왔기 때문에, 예민한 자동 회전문 씨를 멈춰 서게 하는 일이 잘 없었다.


하지만 다른 사람들은 그렇지 않았다. 사람들은 이 '예민한 자동 회전문'씨를 자주 몰라봤다. 그가 선호하는 업무의 속도를 무시하고 손으로 밀려고 한다거나, 서로 충분히 사회적 거리를 두지 않는 우를 범하여 '예민한 자동 회전문 씨'의 심기를 건드렸다. 하지만 추우면 따뜻한 곳으로, 더우면 시원한 곳으로 어서 가고 싶은 마음을 갖는 것은 인지상정이고, 점심시간과 퇴근시간에 어서 회사를 벗어나고 싶은 마음을 갖는 것은 또한 동병상련인데, 이 자동문은 그럴 때마다 까탈스럽게 멈춰 섰다. 그는 그런 것에 휘둘리지 않는 성격이었다. 그렇지만 별 수 없었다. '예민한 자동 회전문 씨'는 건물 내 모든 사람의 퇴근시간과 점시시간의 최종 승인권을 가지고 있었다. '예민한 자동 회전문 씨'가 멈출 때마다, 사람들은 자동 회전문을 보는 대신 약속이나 한 것처럼 뒤를 돌아보았다. 서로의 뒤통수를 보면서 눈으로 '누구야, 누가 '예민한 자동 회전문 씨'를 불편하게 한 거야?' 말하는 중이었다. 그건 동시에 '난 아님'과 '나도 아님'의 의사표현이었다. '나도 아니고 너도 아니면 대체 누구지?'싶을 때 즈음이 되면 '예민한 자동 회전문 씨'는 선심 쓰듯 다시 동작했다. 이번만 봐준다는 뜻이었다.


하지만 이것으로 이 건물 회전문의 성향을 모두 알아챘다고 생각하면 오판이다. 건물 안쪽에는 자동문이 아닌 손으로 움직여야 하는 회전문이 있기 때문이다. 나는 이 회전문을 '여유로운 수동 회전문'씨라고 부른다. 이 '여유로운 수동 회전문'씨는 전혀 까탈스럽지 않고 거의 아무 생각이 없다. 왜냐하면 '여유로운 수동 회전문'씨에게는 아무 센서가 없기 때문이다. 나는 언젠가 이 '여유로운 수동 회전문'씨를 지날 때마다 '예민한 자동 회전문'씨와 무슨 사이인지 궁금했다. 왜 밖은 자동이고 안은 수동일까. 안전과 편의를 두고 끝없는 회의를 거듭한 끝에 결국 이렇게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기로 해버린 걸까. 특별한 이유가 있는지 물어보고 싶었다.


'여유로운 수동 회전문'씨 앞에서 이곳을 처음 온 방문객은 무심코 기다렸다, 기다리면 돌아갈 줄 알고 그러는 것이었다. 하지만 회전문은 잠자코 기다려도 돌 생각이 없다. '혹시 고장?'과 '혹시 수동?'을 고민하는 표정이 되었다가, 살며시 밀어 보고 움직이는 걸 확인하면 표정도 발걸음도 가벼워진다. 여기까지는 사실 그런대로 이해 가능하다.

그런데 얼마 전 내가 목격한 오답은 인상적이었다. 그는 막 '예민한 자동 회전문'씨의 성격을 확인하고 오는 참이었다. 천천히 걸어오던 그는 '여유로운 수동 회전문'씨를 발견하고 자신이 타려던 버스를 발견한 사람처럼 뛰기 시작했다. '여유로운 수동 회전문'씨는 방금 누군가를 보낸 터라 남은 관성으로 천천히 돌아가고 있는 중이었다. 빨리 뛰어온 덕분에 그는 자동문에 미끄러져 들어가는 가는 데는 성공했다. 하지만 '여유로운 수동 회전문'씨의 속도는 0에 수렴하는 중이었다. 그는 '어.... 어....' 하는 표정을 하고 점점 더 느리게 몸을 움직일 뿐 회전문을 손으로 밀고 지나갈 생각을 못하는 것 같았다. 그는 그렇게 아주 느리게, 점점 더 느리게 그러나 돌기는 하고 있는 '여유로운 수동 회전문'씨의 느린 템포의 어쩔 줄을 몰라하면서 조심스럽게 통과했다. 참신한 오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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