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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세현 Apr 11. 2020

기스

아이폰6를 3년 넘게 사용 중인 것 같다. 할부가 끝난 지도 한참인데 아직 조금 느린 것 말고는 사용할만하고 휴대폰으로 뭔가를 하는 일이 점점 더 줄어들어서 핸드폰을 바꿀 시기를 자꾸 뒤로 미루게 된다. 무엇보다 이제는 약정도 기기 할부도 끝나서 휴대폰 요금이 저렴하다. 그래도 가끔 바꾸는 것도 좋지 않을까 생각하며 휴대폰 케이스를 벗기고 닦다 보면 서랍 속에 들어가기엔 너무나 현역인 것만 같다. 조금 과장하면 새 휴대폰 같다. 휴대폰 케이스를 끼우지 않고 바닥에 떨어트린 일은 지난 3년간 딱 2번뿐이었다. 중고나라에 판다면 자랑해도 괜찮을 정도로 상냥하게 사용했다. 휴대폰도 특별한 고장 없이 잘 버텨주었다. 딱 하나, 배터리가 하루도 가지 못하는 건 있다. 여행을 가거나 모르는 지역에서는 이게 상당히 불안하고 난감해서 얼마 전에 배터리도 직접 교체했다. 지난겨울부터는 차를 몰고 다니기 시작하면서 배터리 걱정은 더 줄어 내 휴대폰은 앞으로도 꽤 오래 나와 함께 할 것 같다.


그런데 얼마 전부터는 사진이 자꾸 뿌옇게 나왔다. 야외에서 사진을 찍는 일이 많았고 그걸 들여다볼 짬이 별로 없었는데, 식목일에 누나랑 조카랑 함께 나무를 심고 기념사진을 찍고 보니 최근 사진이 모두 빛에 바랜 사진처럼 찍혀있었다. 휴대폰을 살펴보니 카메라 렌즈에 뽀얗게 앉은 먼지들을 어렵지 않게 찾았다. 손가락 끝으로 닦으니 금세 괜찮아졌지만 주변으로도 먼지가 많아 면봉으로 닦았다가 생각보다 먼지가 많아서 케이스까지 벗겨 보았다. 휴대폰 케이스와 휴대폰이 닿은 곳에 기스가 꽤 깊고 자글자글하게 많았다. 최근에 밭일을 하면서 흙 묻은 손으로 휴대폰을 만지고,  주머니에 가득했던 흙먼지가 틈새로 끼어들어간 모양이었다. 몇 년을 사용하면서 생긴 흠집보다, 시골에서 몇 달간 생긴 흠집이 훨씬 더 깊고 많았다.


어디에서 무슨 일을 하건 휴대폰을 놓고 다닐 순 없었으니 그럴 만도 하다 생각했다. 장화를 신고 축사에 들어가서 소를 몰거나 잡을 때도, 밭에서 우엉과 마를 캐느라 온통 흙투성이가 되어, 머리를 숙이고 머리카락을 톡톡 치면 끊임없이 모래가 나올 때에도 주머니에는 휴대폰이 있었다. 평소엔 볼일 없었던 휴대폰 뒷면과 새로 생긴 흠집에 다사다난했던 내 지난 몇 달이 비치는 것 같았다. 축구를 그만두고 매끈했던 내 정강이와 무릎에는 크고 작은 멍이 생겼고, 왼손 두 번째 손가락에 박힌 가시는 아직 말끔히 빠져나오지 않고 버티는 중이다. 동남아로 오래 휴가를 갔다 왔을 때만큼 얼굴도 탔고, 왼쪽 엄지발가락은 발톱이 빠지고 새로운 발톱이 나오는 중이라 보기 흉한 상태가 되어버렸다.


그래도 다행히라고도 생각한다. 실수를 잊을 만큼 머리 회전이 느려지지 않았고, 못 걸을 정도로 기진맥진해도 잘 먹고 충분히 휴식하면 금세 괜찮다. 8시만 되면 졸리고 숙면한다. 아침에 알람 소리를 듣고 깰 수 있다면 두어 시간 글을 쓸 수 있고, 내 몸은 사라진 발톱도 새로 처음부터 만들어낼 만큼 재생력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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