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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세현 Jun 01. 2020

내 별명이 딩거가 된 후

내 인생 챔프 '하이머딩거'에 관하여 #LOL

요즘엔 인증이 대세라서 인증부터 해보겠다.

내 최근 랭크 전적. 티어는 상상에 맡기도록 하겠다.


(원래 챔피언 이름은 '하이머딩거'이지만, 이하 '딩거')

별명이 '딩거'가 된 이유는 보통 별명이 그러하듯 단순하다. 딩거를 많이 하기 때문이다. 사실 딩거만 해서 딩거 외에 다른 챔피언은 플레이가 많이 서툴다. 당시 친구들은 "딩거만 하면 안 지겨움?" "좋은 챔프 했으면 다이야는 갔겠다"라고 말해서 잠시 다른 챔프에 눈을 돌려본 기억도 있지만, 그것은 언제나 잠시뿐이었고 결국 딩거로 돌아갈 수밖에 없었다. 내겐 누가 머래도 딩거뿐이었다.


친구들의 걱정과는 다르게 나는 딩거만 해도 사실 나는 전혀 지루하지도 질리지도 않았다. 원래 좋아하는 것에는 지루함을 잘 느끼지 않는 타입이기도 했거니와 딩거를 잘하기 위해서는 다른 챔피언에 대한 이해도 필수적이었기에 지루할 틈이 없었다.


게다가 딩거는 딩거만 해도 괜찮을 정도로 딩거는 다재다능한 챔피언이다. 딩거로 미드로 가는 걸 가장 좋아하지만, 탑으로 가도 괜찮았고, 지금은 원딜로도 가고 서폿으로도 간다. 내가 좋아하는 학교 선배는 언젠가 "천하의 이소룡도 천 가지 발차기를 하는 사람보다 한 가지 발차기를 천 번 연습한 사람이 두렵다 하였다"라는 멋진 말로 이십 대 내 마음을 뜨겁게 만들었는데, 그 말을 이때 적용해도 되는 건지는 잘 모르겠지만, 나의 딩거를 생각하면 딱 적당한 말이다. 



아주 명석하지만 괴짜 성향이 다분한 요들 과학자 세실 B. 하이머딩거 교수. 그는 필트오버가 배출한 가장 혁신적인 인재 가운데 한 명으로 모든 이의 존경을 받는 발명가다. 자신의 일에 있어서는 과할 정도로 집요하게 파고드는 탓에 신경증적 강박관념이 있을 정도인 하이머딩거는 좀처럼 이해하기 어려웠던 문제들을 하나둘 풀어내고 있다. 그의 이론은 때로 불분명하고 난해해 보이기도 하지만, 하이머딩거는 필트오버에서 가장 기적적이고 치명적인 여러 기계를 발명했고, 그 효율을 더욱 높이기 위해 꾸준히 연구하고 있다.

_나무 위키 '하이머딩거'편


aka. '위대한 발명가' 딩거는 공부를 많이 해서 그런지 머리만 아주 크고 몸은 부실한데, 그래서 그런지 게임 내에서도 초반에도 후반에도 체력과 방어력은 무척 낮다. 전투력도 마법사 중에 평균 정도로 특별하지 않다. 대신 딩거에게는 미니 포탑이라는 특별 무기가 있다.


큰 순간 대미지는 없지만 지속적이고 꾸준한 대미지와 함께 포탑 주변에서는 딩거의 이동속도가 증가하기 때문에 공격과 동시에 수비에도 도움을 준다. 이게 딩거의 특별함이고, 그렇기 때문에 딩거의 강함은 '설치한 미니 포탑이 있는 상태'라는 조건이 성립했을 때, 딩거의 가능성은 최고로 발휘된다.


그렇기 때문에 딩거를 잘 활용하기 위해서는 빠른 손이나 순간 판단력이 별로 중요하지 않다. 그보다는 언제 어떻게 싸울지 혹은 싸우지 않을지와 같은 운영과 전략이 더 중요하다. 많은 게임이라는 것은 어떻게 얼마나 상대를 많이 때려서 체력이 0이 되게 만드느냐 하는 데에 초점이 되어 있는데, 딩거 역시 그렇긴 하지만, 아무 때나 싸우는 것이 아니라 언제 어떻게 싸우는 것이 중요한 챔프라 다들 싸움에만 집중했을 때 게임의 흐름을 만들어가는 챔프 하나가 있으면 의외로 게임이 순조롭게 승리하는 경우가 많은 것도 딩거만의 장점인 듯하다.


얼마 전 오랜만에 대학 친구의 결혼식에 갔는데, 친구는 자신도 모르게 "딩거어"하고 나를 불렀고 친구 배우자 될 사람은 방금 자신이 뭘 들은 것인지, 사람 이름이 진짜 '딩거'인지 약간 띠용 하는 표정이었다가, 둘은 모르는 재밌는 비밀을 친구끼리만 가지고 있어서 그게 궁금한 표정으로 금세 바뀌었다.

초등학교 때부터 도스가 아닌 윈도 컴퓨터를 접한 나와 친구들은 많은 게임을 하며 놀았다. 게임이라는 거는 어른이 되면 안 하게 될 줄 알았는데, 어쩌면 마흔이 되고 환갑이 되어도 친구들을 만나면 우리는 게임을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게임 대신, 게임 말고, 좀 더 근사한 것이면 더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이런저런 시도를 해봤지만, 결국 게임이었다. 그래도 예전에는 "야 그래도 환갑 돼서 겜방 가는 건 좀 아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었다면, 지금은 "할아버지가 되어서도 게임하는 게 나쁜 걸까?" 하는 생각이다.

그때도 딩거가 있으면 어떤 기분일까, 있으면 좋긴 하겠다 하는 생각도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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