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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루미악토버 Nov 21. 2021

어느 날의 기록 210322

210322

비슷한 정신장애를 가진 사람들이 모인 카페의 글을 자주 읽고 있다. 겪어보지 않은 사람 입장에서는 이해할 수 없는 게 당연한 터라, 치료 과정에 있는 이들의 이야기를 읽으면 조금 희망이 생긴다고 해야 하나? 그렇다.

공황장애 환우들만 있는 것이 아니라, 환우의 가족들과 가까운 사람들의 글들이 올라오는데 그래서 더 극복하고 싶어 진다. 타인을 힘들게 할 수 있는 질환이라는 것을 알기 때문에, 나 같은 경우는 나를 타인과 분리하는 편이다.

적절할 때에 손을 내밀 줄 알아야 하는 것도 물론 중요하지만, 겁이 많은 사람인지라 피해를 줄까 무서워서 방어적이다.


사실 정신장애라는 것이 완전히 나을 수 있는 질환이 아니며, 언제든 다시 찾아올 수 있는 질환인지라 늘 유의하고 구렁텅이에 빠지지 않게 조심해야 한다.

 개개인이 가진 경험에서 공황을 일으키는 순간이 언제인지 스스로 병에 대해서 잘 파악하고, 이겨내려는 노력 역시 중요할 것이다. ( 너무 심할 때는 이런 생각조차 안 든다. 조증 상태일 때나 무념무상일 때만 가능한 의지 )


내게는 아주 오랜 습관이 있다. 바로 체크리스트.

매일 아침 눈을 뜨고 '오늘의 할 일'을 적는 것이 아니라, 컴퓨터나 종이 메모장에 해야 할 일들을 생각나는 대로 적어놓고 줄을 긋는다. 그곳에서 오는 작은 성취감을 통해 자주 느끼는 좌절감을 지워나간다.

하루를 영위했다는 것만으로 쓸모 있는 사람이 된 것 같은 기분이 든다. 그러다가도 전화 한 통, 기억을 떠올리게 하는 어떤 말과 행동들, 누군가의 고함, 폭력을 보게 되면 다시 원위치가 돼버리지만.


정형돈 씨가 얼마 전 예능에서 이런 말을 했더랬다

'사람이 많은 곳을 잘 가지 못하니 아내도 저처럼 성향이 변하더라고요 '

동생 역시 정신장애가 있기에 그 말이 너무 마음에 맺혀서 숨이 막혔다.

앞으로도 동생은 나를 지키고, 나는 동생을 지켜낼 것이다.


고등학생 시절 들었던 환청, 가면성 우울을 지나 의지할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이었던 엄마의 죽음 후 비로소 우울, 불안장애 진단을 받고 그 후 결국 공황장애를 겪게 되기까지.

어릴 적에는 우리 집을 긴급 탈출 SOS에 제보하고 싶다고 우스갯소리 삼아 이야기하곤 했었는데,

30년이라니 정말 오랜 시간이 지났다.


대부분의 하루는 아주 평범하게 반복되지만, 버튼이 눌리지 않게 조심한다.

웬만한 스트레스와 고통에는 의연하지만 어떨 때는 아주 예민하다.

그래도 스스로의 모습을 직면하고 냉정하게 바라볼 수 있어서 다행이다.


앞으로도 자주 무너지고, 주위 사람들과 나로 인해 다시 일어서고를 쉼 없이 반복하겠지만

훗날에는 그런 날이 있어서 지금의 내가 있다고 말할 수 있었으면 한다.

믿어주는 이들과 하늘에 있는 엄마에게 보답할 수 있는 길은

내가 나로서 무너지지 않고 잘 살아내는 일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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