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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점입가경 Mar 19. 2020

이름에 대한 고찰

영화 <레이디 버드>를 보고 

영화 <레이디 버드>의 주인공 크리스틴은 자신의 출신과 이름이 마음에 들지 않아 사람들에게 자신을 ‘레이디 버드’라 소개한다. 이름을 지어준 가족들에게도 자신을 그렇게 부르길 요청하고, 뮤지컬 동아리 입단 신청서에도 그 이름을 채워 넣는다. 나는 비슷한 맥락으로 어렸을 때부터 세례명을 가진 친구들을 부러워했다. 스텔라나 로사, 아녜스처럼 부르기 부드러운 이름을 가진 친구들은 버디버디 아이디나 메일 주소를 만드는 일이 나보다는 고민스럽지 않았을 것이었다.


  ‘가경’이라는 이름을 가진 나는 백화점에서 엄마를 잃어버리거나 유치원에서 이름표를 만들 때 이름을 한 자씩 또박또박 말하지 않으면 다른 이름으로 여겨졌기 때문에 늘 이름이 불만스러웠다. 이니셜도 특이해서 KK(하트) J처럼 이니셜을 본뜬 수줍은 낙서도 선뜻하지 못했다. KG라고 적어놓으면 몸무게 같고 GG라고 적어놓으면 스타크래프트 같고 KK라 적어놓으면 백인우월주의 단체 같았다. 그런데도 오빠의 초등학교 졸업식 날 교장 선생님으로부터 우수 상장을 받은 언니가 ‘이가경’으로 호명되는 순간 내 이름이 유일하지 않다는 사실이 서러워 울었다. 참 이상하다.


  살면서 이름을 선택할 기회가 몇 번 있었지만 그럴 때마다 나는 결국 내 이름으로 돌아왔다. 캐나다에서 사용했던 ‘belle’이라는 이름 역시 가운데 자인 ‘아름다울 가’를 본떠 만든 것이었다. 어떤 이름을 붙여도 남의 것을 빌려 쓴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웹상에서만 쓸 닉네임을 새로 정하려고 해도 잘 안 되었다. 왠지 알 없는 안경을 쓰는 기분이었다. 쓴다고 해서 잘 보이는 것도 아니고 코 위는 어색한데 맨얼굴은 조금 심심하니 번거롭더라도 걸쳐 본다. 그럴 거면 벗고 말지. 늘 그런 식이었다.  


  크리스틴은 대학생이 된 이후로 자신을 더는 ‘레이디 버드’라 소개하지 않는다. 일련의 성장을 통해 자신의 이름을 이해하기 시작한 것이다. 나도 이제야 느지막이 이름을 인정하는 단계를 지나오고 있다. 발음하기 편하거나 기억하기 쉬운 이름은 아니더라도 애착이 가는 것, 나를 소개하는 익숙한 대명사는 결국 ‘가경’이라는 이름이다. 이제는 어떤 새로운 이름을 선택할지 고민했던 시간을 할애해 내 이름을 걸고 어떤 일을 할지 고민하고 움직이는 데에 시간을 많이 쓴다. 나와 같은 이름을 지닌 사람 중 몇몇은 부산에서 소설가가 되거나, 육상선수가 되거나, 선생님이 되어 각자의 뜻을 이루며 산다. 나도 나만의 속도대로 뜻을 이루며 살면 될 것이다. 정체성은 이름에 구애받지 않는다. 이제야 좀 알듯 말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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